처음에는 지루한 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건 중국이 잘 하는구나 하는 감탄도 들었습니다. 국내에선 SF영상물이 성공하기가 힘들죠. 최동훈 감독도 외계+인으로 재미를 못 봤죠. 봉준호 감독이 꾸준히 성과를 내지만, SF가 아닌 다른 장르의 작품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입니다. 이번 미키7은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중국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30부작 SF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텐궁을 완성하며 우주공정을 하는 시기에 나온 드라마이니 총력을 다했겠지요. 중국이 잘 하는건 VR게임씬일 겁니다. 일정한 수준의 게임을 뚝딱 잘 찍어내니 VR게임씬도 그럴 듯하게 해냈습니다. 중드판에서는 외계 기술의 신기함보다는 어려운 개념을 게이미피케이션으로 설명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원작의 취지가 그런 건데 넷플판은 좀 애매합니다.

넷플판에서는 한 명, 한 명이 VR기기를 돌려쓰며 우와 외계 기술 신기해 놀라는 것을 반복합니다. 마침 애플이 VR기기를 내놓을 때, 어떤 브랜드가 떠오르는 하이얀 케이스에 담겨 오는 매끈한 기기라. 아이폰 클로즈업이 자주 나왔으니 맨입으로 한 건 아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신기하고 멋져서 까암짝 놀라는 모습이 보여져야 했을 겁니다. 반면 VR게임 자체는 특이한 것이 없었습니다.

중드판은 원작에 충실하려 애씁니다. 해결되지 않은 수학적 문제를 영상으로 표현해야하니 쉽지 않겠지요. 그걸 꾸역꾸역 그럴싸하게 드라마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관련 뉴스가 더 흥미롭더군요.

중국 유주 게임즈에서 삼체IP로 영화와 모바일 게임을 개발한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유주 게임즈는 시가총액이 3조에 달하는 회사인데요. 삼체IP 개발 과정에서 대표가 독살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수은, 테트로도톡신 등 최소 다섯 가지 독극물을 석달 동안 조금씩 먹여 중독으로 몰았다고 합니다.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5463923

범인 쉬야오는 삼체 IP를 만드는 자회사 CEO입니다. 한참 잘 나갈 만도 하지만 사형수가 되어 엊그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간만에 세계적인 IP가 나왔는데, 그게 왜 살인의 계기가 되었을까요. 현실이 삼체보다 더 혼란스럽습니다.

중국이 SF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실력은 칭찬합니다만 한계는 명확합니다. K드라마였으면 분명 대박쳤을 겁니다. 중국이 잘 할 만한 것도 있지만, 중국이 못하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근현대사의 쓰라린 모습을 핍진하게 묘사하며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건 K국의 장점이죠.

원작에서도 정치적인 부분은 잘 풀어가지 못했습니다. 작가의 능력보다는 시대적인 한계겠지요. 문화혁명은 낡은 사상, 풍속을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를 열자는 명분만은 좋은 기치 아래 벌어진 반달리즘이었습니다. 문화혁명의 피해자 예원제는 삼체의 홍위병이 되어 같은 일을 반복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원작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스을쩍 지나갑니다. 중드에서는 문혁의 조리돌림 장면을 아예 빼버립니다. 그러니 문명의 충돌에서 벌어지는 입체적인 인간의 면모가 싹 빠지죠.

소설, 오디오북, 중드, 넷플릭스로 삼체를 접했습니다. 이중 가장 나은 경험은 오디오북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조용한 산길을 걸으며 들으면 아주 재미있습니다. 조깅 코스에 방파제가 있는데, 거기 걸터앉아 바다를 보며 들으면 그게 또 재미있습니다. 새벽에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배를 보며 한참을 들었습니다. 그게 이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넷플릭스 작가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유난히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씬이 많았습니다. 중드는 베이징 거리를 벗어나질 않습니다. 오디오북은 welaaa에서 서비스합니다. 여기서 만든 오디오북중에 삼체와 토지가 가장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