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M] [이야기] 평범한 샐러리맨은 어떻게 911의 오너가 되었는가...
사무실에서 늦은 약속을 기다리는 동안 끄적여봅니다.
포르쉐(꼭 포르쉐가 아니어도 드림카)를 좋아하고 원하는 분들에게
평범한 사회인인 제가 어떻게 911의 오너가 되었는지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독일 3사의 엔트리급이나 중형 세단 정도는
조금 급여가 높은 샐러리맨이라면 가능권 안에 있는 차들이지요.
하지만 포르쉐, 페라리, 람보르기니는 좀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포르쉐를 타고 있으면 대개 사람들이 굉장히 부잣집 아들이거나 ^^;;
아니면 어마어마하게 성공한 경우로 생각하는 게 대부분이더군요.
그러나 저처럼 지극히 평범한 사회인도 있습니다.
저는 지방국립대를 나왔어요.
선지원 후시험 제도가 처음 도입된 87년말 대입학력고사 세대입니다.
당시 성적은 연고대 갈 정도였고 서울대는 좀 무리...
저희집이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던지라
부모님께서는 서울로 유학보내는 것은 엄두를 못 내셨어요.
그래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집 근처에 있는 지방대로 갔습니다.
94년말 LG에 합격해서 처음 서울로 올라왔어요.
어머님이 쥐어주신 20만 원이 전 재산이었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오셔서 서울에서 사회생활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돈 모으기가 참 어렵습니다. (특히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면... ^^)
하루하루 밥먹고 살아가는 모든 게 돈이 듭니다.
서울에 본터를 둔 사람들과는 애초에 출발선이 다른 거죠.
그 와중에 IMF가 터졌을 때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
그 여파로 저의 생활 역시 엄청나게 어려워졌습니다.
제가 살아오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어요.
원래도 넉넉하게 살아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늘 긍정적으로 지내왔는데
이 때는 정말 답답하고 화가 나더군요.
왜 이렇게 어려울까... 내가 잘못한 건도 아닌데 왜 나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여차저차 해서 10년 정도 샐러리맨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이때까지 저는 뚜벅이였어요. 그러다 2001년 결혼을 하게 됩니다.
다행히 아내도 함께 직장을 다녀서 맞벌이라 조금씩 나아지더군요.
첫차로 SM5도 사게 되고, 작은 집이나마 처음으로 '내집'도 가졌습니다.
그러다 2005년말, 샐러리맨 생활을 그만두고
예전에 함께 일했던 후배의 제안으로 회사를 차리게 되었어요.
그때 렉서스 IS250이 막 출시되었을 때인데
회사에서 비용처리해야 할 부분도 있고 해서
처음으로 수입차(& 그때까지 저의 드림카)를 사게 됩니다.
다행히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회사가 그럭저럭 잘되어서
2년 후 포르쉐 카이맨S로 덜컥!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리스가 좋은 점이 타고 있던 차의 보증금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조금만 보태면 다시 차를 바꿀 수가 있어요.
처음 차를 살 때는 좀 부담스럽지만 두번째 세번째는 상대적으로 쉬운 편...
그리고 다시 2년 후 911 카레라S와 만나게 됐습니다.
두번째 포르쉐였지만 오히려 감동은 더욱 크더군요.
911이라는 헤리티지가 주는 것이었겠지요.
함께 회사를 꾸려온 후배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도 했습니다.
좋은 파트너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런 일도 있을 리 없었겠죠.
지금은 그 회사에서 나와서(지분은 후배에게 넘겨주고)
다시 월급쟁이가 되었어요. 장단점이 있지만 마음은 편합니다.
월급날 되면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긴 하니까요. ^^
제 흰둥이를 볼 때마다 늘 감사하다 생각하고 살아가요.
제가 가진 재산이라고 해봤자 흰둥이와 재건축 중인 아파트가 전부입니다.
그것도 강남 한복판도 아니고 서울 끝자락에 위치한...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아무런 욕심이 없어요.
원래 뭘 갖고 싶어하거나 패션에 관심이 있거나 비싼 취미가 있거나
귀한 음식을 먹거나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라이프 스타일이다보니
특별히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습니다.
그냥 삼시세끼 평범하게 챙겨먹고 집사람과 쌍둥이 공주님들과
오붓하게 살아갈 정도의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자동차 동호회 게시판 등에서 흔히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차를 유지하는 데 연봉의 얼마를 쓰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죠.
20%, 30%, 50%... 의견도 다양합니다.
저의 경우를 보면 제 흰둥이가 전 재산의 1/3 정도예요.
제 연봉보다도 비싼 차고요.
일반적인 통념으로 보면 엄청나게 사치를 부리고 있는 거죠.
그러나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포르쉐를 가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그것을 가짐으로 인해
인생이 더 행복해지고, 더 겸손해지고,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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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저도 어서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