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기] 반복되는 일상의 축복 '사랑의 블랙홀'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1993)'은 아주 오래전에 TV 혹은 비디오로 감상한 적이 있었지만 그리 재미있었던 영화로 기억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빌 머레이' 특유의 악동 이미지나 영화의 답답한 잿빛 컬러가 당시 제 취향에 맞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의 블랙홀'(원제 'Groundhog Day'는 '성촉절'을 의미)이라는 제목도 다소 유치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 후 30년 가까이 지나서 최근 발매된 정발판 4K 블루레이를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감상해보니 완전히 새로운 영화로 느껴졌습니다.
과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충분한 작품이었습니다.
철없던 20대 초반의 첫 감상 후, 그동안 쌓여진 세상경험이 비로소 이 영화의 가치를 발견하게 해준 것 같습니다.
'빌 머레이'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4K 블루레이로서 화질은 그럭저럭 무난한 편이고 돌비 애트모스가 적용된 음질은 배경음악에서 조금 과하게 우렁차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2D 블루레이 부가영상에는 그대로 본편에 있어도 좋았을 것 같은 재미있는 삭제장면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펜실베니아 시골마을을 취재차 방문한 시니컬하고 건방진 스타일의 기상앵커 '필(빌 머레이)'이 매일 똑같은 날짜를 반복하게 되면서 조금씩 인격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필'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똑같은 날짜를 맞이하는지 영화에서 알려주지는 않지만 대략 몇 년 ~ 몇 십년의 기간으로 추측됩니다.
그는 그 긴 세월(?)동안 탈선과 방황도 저지르지만 오랜 경험 뒤에 종국에는 선(善)을 향한 행보를 걷게 됩니다.
아마 타인을 사랑하고 돕는 이타적인 행위가 인생의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첩경임을 발견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만일 내가 '필'처럼 날짜가 반복되는 삶을 살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상상을 하게 만듭니다.
'필'은 긴 시간에 걸쳐서 피아노, 얼음조각, 볼링, 당구 등을 익혀서 각 분야의 고수가 됩니다.
저 역시 무한한 시간을 가지게된다면 음악, 수영 등 평소에 서툰 영역을 배워서 능숙해지고 싶다는 행복한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관객들을 가르치려고 하거나 억지 교훈을 강요하지 않고 관객들이 자연스레 그들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미덕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감상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탄 영화인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패밀리맨 (The Family Man. 2000)'과 상통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겨울 로맨스 영화로서의 측면에서 보면 다소 관성적인 스토리로 흘러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사랑의 블랙홀'은 '앤디 맥도웰(Andie MacDowell)'이 가장 아름답게 등장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앤디 맥도웰'은 영화 '그린카드(Green Card, 1991)'의 새침한 여주인공으로 처음 접했었는데 특유의 지성미가 느껴지는 우아한 미모가 참 매력적입니다. 국내에는 과거 '전인화'라는 탤런트가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주었던 것 같습니다(개인적으로 좋아했던 탤런트였습니다.^^)
'사랑의 블랙홀'의 감독은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Ghostbusters, 1984)'에서 '빌 머레이'의 동료 '이곤 스펜글러'로 출연한 고 '해롤드 래미스(Harold Ramis)' 입니다.
블루레이 부가영상의 인터뷰 내내 순진한 표정으로 밝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이 작품의 성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직 '사랑의 블랙홀'을 감상하지 못하셨다면 잔잔한 인생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이 작품을 블루레이가 아니더라도 DVD나 OTT 등을 통해 꼭 감상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혹시 중년 이상의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더욱 즐거운 감상이 될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한명쯤 곁에 두고 싶은 유쾌한 친구. '스티븐 토볼로스키(Stephen Tobolowsky)'는 '필'의 예전 동창 '네드'로 나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같은 날이 반복되는 상황이 온다면 무엇을 하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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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상영 예정작이네요.^^
아마 거의 비슷한 감흥을 느낄 것 같습니다.
앤디 맥도웰이 참 이쁘게 나오는데 세월이 세월인지라
이제 많이 자란 딸래미한테 자리를 내줘야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