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대니얼 데닛의 "의식이라는 꿈" 재번역판 출간
1년 쯤 전에 대니얼 데닛의 책 "의식이라는 꿈"과 이 책의 주제인 심리철학에 대해 프차에 간단하게 소개를 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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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철학은 현대의 심리학 주제들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주관성과 관련이 있는 철학입니다. 우리가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의식이 어떻게 가능하고 그 실체가 무엇인지에 관한 탐구입니다. 이 주제가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인간과 동물, 또는 인간과 인공지능 등의 차이와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윤리적 문제와도 결부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만약 데카르트가 생각했던 것처럼 동물이 그저 살아있는 기계장치에 불과하다면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가 그다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없겠죠. 또 하나는 실용적으로는 덜 중요하지만 의식 문제가 그 자체로 인간에게는 해결할 가능성이 없는 가장 심오한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물리학과 생물학에서 노벨상을 받거나 그에 준하는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이 이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인생 최후의 주제로 상정하고 뛰어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수리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와 DNA구조의 발견자인 프랜시스 크릭이 있죠.
사실 의식에 관한 탐구는 심리학이 막 발전할 초창기에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그러나 의식에 대한 탐구가 근본적으로 주관적 경험자의 보고에 의존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빠르게 심리학의 분야에서 배재되어왔죠.
그리고 이 문제는 철학에서도 꽤 오랜 전통을 가진 문제였습니다. 고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대한 탐구로부터 근대의 인식론, 현대의 현상학과 분석철학의 하위분야인 심리철학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철학의 중심에서 밀려나 본적이 없는 주제입니다. 특히 의식 경험자의 주관적 보고의 위상에 대한 이견이 후설과 이후 실존철학자들을 주축으로 한 현상학과, 주로 영미권에서 발전한 분석철학자들을 갈라놨습니다.
대니얼 데닛은 현상학의 주관성에 대한 독단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는 분석철학자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현상학적 시각을 비판하는 분석철학의 최선두 주자입니다. 현상학자들은 의식 속으로 들어온 주관적 감각경험의 대상인 감각질(qualia)이 실제로 주관적 의식과 별개로 존재하고 우리의 의식은 그렇게 우리의 감각을 통해 재구성된 감각질을 경험하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대닛은 그런 감각질이란 존재하지 않고, 감각질의 존재와 감각질을 포함한 의식경험 모형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주관적 의식경험을 대상화화는대서 오는 오류라고 비판합니다. 여기서 더 자세하게 다루기는 힘들지만 대닛은 비트겐슈타인의 경험모델을 계승한 것으로 보입니다. 비트겐슈타인도 논리-철학론과 다른 심리철학에 대한 글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세계 자체이지, 나 자신의 마음을 포함하는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여러 번 피력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유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흄이 데카르트의 "나"에 대한 비판과, 흄에게 영향을 끼친것으로 추측되는 티벳불교의 의식이론까지 가 닿게 됩니다.
2년 쯤 전 이 문제를 가장 컴펙트하게 다룬 데닛의 역작 "의식이라는 꿈"이 거의 20년 만에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제가 느끼기로는 꽤 좋은 번역이었고 저 또한 많은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주제가 주제인만큼, 또 대닛이 영어권에서도 글을 미묘하고 현란하게 쓰는 최고급 글솜씨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만큼, 책을 어렵게 느낀 독자들이 많았나봅니다. 그래서 역자였던 문규민이 글을 더 쉽게 풀어서 재번역을 시도해 책이 다시 나왔습니다. 사실 이전 번역도 뜻의 명료함을 위해, 데닛의 복잡하고 현란한 문체를 많이 희생했다고 역자가 밝힌 바라, 아마 이 번역에서는 대닛의 문체 보다는 대닛을 해설하는 학자이자 해설가로서의 문규현의 역할이 더 증대된 듯합니다. 이는 번역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닛의 글은 영어로 읽어도 어렵고, 많은 영어권 학자들도 대닛을 적잖게 오해하니까요.
아무튼 이 좋은 책이 왜 이리 빨리 절판이 되었는지 궁금하고 아쉽던 차에 재출간 소식을 들으니 반갑습니다. 저는 이미 구번역판을 충분히 읽고 잘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호기심 때문에 조만간 다시 재번역판도 읽어보게 될 것 같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지르세요!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258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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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된 판본(2021년?)이 국회도서관에는 있더군요.
요즘 국회도서관 애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