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VER HEALTH CHECK: OK
자동
ID/PW 찾기 회원가입

[책]  쿤데라에게 바치는 책장 한 칸.

 
35
  2161
Updated at 2023-07-16 20:23:44

 

 

 저는 쿤데라의 가장 잘 알려진 소설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특별히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그 소설이 훌륭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20세기 중엽 이후에 활동했던 전 세계의 모든 소설가를 통틀어도 그 소설만큼의 지적 깊이와 재미를 가진 소설을 쓸 수 있는 소설가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일 것입니다. 제가 그 소설을 각별하게 생각하지 않은 이유는 콘데라의 다른 소설들 중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보다 더 뛰어난 소설들이 꽤 많았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소설 문학, 혹은 소설 문학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훌륭한 작품 중 하나일 것이 분명한  『불멸』이라든가, 쿤데라가 만년에 쓰기 시작했던 노벨라들 중 제가 각별하게 좋아했던 『정체성』, 중기 쿤데라 작품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웃음과 망각의 책』,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떻게 이것이 한 작가의 장편 데뷔작일 수 있는가 하는 탄식을 나오게 만든 『농담』 등등,  제게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보다 애정을 더 기울일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이 작품의 작가가 쿤데라라서 가능한 것입니다. 아마 쿤데라가 세상에 없었고, 다른 누군가가 이 소설 비슷한 소설을 썼더라면 아마도 저는 그 작가를 가장 사랑했을 것이고, 이 작품을 가장 추앙하는 작품으로 삼았겠죠. 

 

 저는 쿤데라를 안 다음부터 쿤데라를 넘어서는 현대 작가들을 발견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음에도, 쿤데라처럼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보다 훨씬 더 도저한 깊이를 가진 숨은 보석들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음에도 한 번도 그런 작가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제가 찾았던 동시대 작가들 중에 그런 작가들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면 노벨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이라든지, 아니면 토머스 핀천이라든지, 혹은 좀 뒷세대이긴 하지만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라든지. (안타까운 것은  제가 쿤데라만큼 즐겨 읽었지만 안타깝게도 한 번도 쿤데라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었던 포스트모던 소설의 모범생 줄리언 반스를 이 명단에 넣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파묵은 때때로 쿤데라를 넘어섰고 쿤데라만큼 지적이었고, 더 감수성이 예민했습니다. 한때는 파묵이야말로 현대 최고의 작가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파묵의 개인적 정서를 세심하게 드러내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가 제 취향에 조금 더 맞았던 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잠시 하면서도 한 번도 파묵이 쿤데라를 넘어서는 작가라고 진심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누가 쿤데라만큼 예술 전반에 대해 전문가적인 식견이 있을 수 있고, 자신만의 독찬적인 미학, 소설, 예술 이론을 가질 수 있겠으며, 중부유럽의 문화적 유산의 가치를 그렇게 명료하게 사람들에게 설득시킬 수 있었을까요? 쿤데라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지구의 다른 문화권 사람들은 마땅하게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체코를 향해서 절을 해야 합니다. 베를린필의 전임 음악감독이었던 사이먼 레틀이 했던 말 처럼요. "우리 영국인 들은 음악에 관해서라면 (엘가와 기븐스가 있었음에도!) 그냥 입을 다물고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 

 

 쿤데라는 68의 적자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입니다. 68의 영향은 서구에게만 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68에 대한 가치 평가를 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자 각각의 가치관에 따라 이 운동은 인류가 그동안 쌓아왔던 유산의 가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반달리즘일 수도 있고, 해방의 가능성과 영감을 불러일으킨 이상추구를 실천했던 운동일 수도 있습니다. (저 나름대로도 간단할 수 없는 가치판단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기회에 하도록 하죠.) 68의 기원 중 하나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고,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나, 거기서 유래한 교조적이고 반지성적인 68의 조류는 비판받아야 마땅한 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서구사회에서 있었던 68광풍에 대한 가치판단은 미뤄두더라도,, 당시 공산권 유럽에서 일어난 학생운동이나 시민 저항운동의 가치에 대해서 서구에 있었던 운동과 동일한 잣대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스탈린 이후, 당과 비밀경찰이 행정권력을 동원해서 사회구성원 대다수의 자유를 억압하고 내밀한 공간을 박탈 했던 것에 대해, 그래서 인간의 본성에서 기인한 가장 원초적 삶의 조건을 파괴하려 했던 것에 대해 저항하고 해방을 염원했던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1926년 생이었던 쿤데라는 젊었을 때, 열렬한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당시 서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인권과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인텔리들에게 당연한 사상이었으며, 실제로 성공적이기도 했습니다. 북유럽의 사민주의의 근간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전통적 서구적 가치 위에 사회주의적 이론과 의제들을 잘 이식시킨 좋은 모델이었고, 어떻게 보면 서유럽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에 의해 개혁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문제는 사회적 성숙이 충분하지 못했던 러시아와 동유럽, 그리고 제 3세계의 상황이었습니다. 사회주의적 가치를 신봉하는 정치그룹들이 급속하게 힘을 얻는 상황에서 미성숙한 시민사회와 견제수단이 없었던 사회주의 권력은 거의 파시스트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권리를 파괴하고 권력집단의 아이콘들을 우상화하면서 오히려 철저한 폭압적 계급사회로 이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쿤데라는 자신의 조국인 체코에서 급격하게 사상적 전향을 통해 프라하의 봄을 주도하는 학생운동 세력의 핵심인사 중 한 명이 되었고, 결국 계속된 비밀경찰의 감시와 압력에 시달리다가, 1970년 공산당적을 박탈당하고 1975년에는 추방되어 프랑스에 정착합니다. 

 

 쿤데라의 이러한 경험은 작품이나 여타 비평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쿤데라는 자신이 신봉했던 공산주의 혁명이 결국 인민을 배신하는 과정을 보면서,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건드리는 정치공작이 이성과 판단력을 마비시켜 사회를 파멸로 이끌며, 이러한 현상은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국한 한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의 근본적인 한계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자신이 시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정시의 한계에 대해 깊이 고민했으며, 감정을 격동시키는 모든 종류의 낭만주의적 예술형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때문에 음악에서도 차리리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들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남겼을지언정, 하이든 이후의 독일 표준 레퍼토리의 위험성과 우스꽝스러움을노출시키는데 그의 재기넘치는 글솜씨를 많이 이용하기도 했죠. 

 

 이런 비이성적인 정서적 힘에 대한 우려와 함께, 그가 가장 혐오했던 것은 개인의 사밀한 공간을 없에고 남김없이 노출시키는, 감시가 일상화된 사회였습니다. 그는 체코판 68인 '프라하의 봄'에 참여할 당시, 비밀경찰로부터 수시로 도청을 포함한 감시를 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인간의 내면을 얼마나 파괴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가는 인간 대중의 내면이 얼마나 부박한지를 뼈저리게 깨닳았습니다. 이러한 경험과 혐호는 그의 소설과 비평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데, 일례로 그는 카프카에 대한 비평에서 카프카의 작품을 제외한 편지와 일기를 토대로한 작가주의적 비평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합니다. 그러한 까발림으로 실제로 우리가 작가의 작품에 더 깊이있게 다가갈 수도 없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내팽게친 관음증적 태도에 다름아니라고요. 마찬가지로 그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 대해서도, 허구의 현실화에 대해서도 독자가 충분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것을 요구하며 작품에서도 이러한 방법론들을 메타소설적 기법을 통해 비판합니다. 이러한 창작방법론 때문에 그는 앞에서 말한 일군의 작가들과 함께 포스트모던의 기수로 자리메김했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평가일 뿐, 그의 취향은 일관되게 17세기 말~20세기 초의 각 예술 사조의 급격한 발달사였습니다. 쿤데라는 바로크 이후부터, 낭만주의를 제외한 고전주의에서 모더니즘에 이르는 모든 사조에 대해 호의적이었지만 그가 언급하고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작품들을 볼 때, 특히 모더니즘에 대해 높이 평가했던 것 같습니다. 애초에 문학을 제외한 다른 모든 예술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현재의 평가는 경박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반예술이라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광풍일 불었던 90년대 초를 생각하면 상전벽해죠. 물론 이미 그 때 즈음에 학계나 예술계의 용감한 이론가들은 비판작업들을 시작하고 있었지만요.  

 

   이런 측면에서 재미있는 것이 그의 음악에 대한 태도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쿤데라는 감정을 지나치게 자극하면서 이성적 판단 가능성을 마비시켜버리는 낭만주의 사조들을 혐오했습니다. 그것은 대중음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쿤데라가 듣기에 6~90년대의 대표적인 대중음악이었던 rock은 쿤데라가 반지성주의적 예술의 특징으로 지적한 모든 특징들을 다 담고 있었습니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리듬으로 대중을 일체화시키면서 전체적 합일감을 이끌어내고, 귀기울여 분석할만한 지적인 악구들을 찾아볼 수 없는 저급한 음악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쿤데라 말고도 이러한 예술관을 표출했던 또 다른 음악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인물이 있죠. 바로 아도르노였습니다. 그러나 쿤데라는 자기보다 한 세대 위의 선배인 아도르노에 맞서 재즈와 스트라빈스키 등의 민속음악의 가치에 대해서 결연하게 옹호했습니다. 아도르노는 제2 빈악파에 의해 추동된 음열주의 음악을 현대 미악의 모범으로 보고 재즈나 국민악하, 혹은 민속악파의 음악들을 쿤데라가 말했던 이유와 마찬가지로 대중적 예술형식으로 파악하고 그 위험성을 비판했던 것입니다.쿤데라가 미국의 재즈를 접하던 시기에는 비밥혁명이 일어난 이후였습니다. 지적인 세례를 듬뿍받은 비밥, 하드밥, 선법 같은 장르들이 더이상 깊이있는 분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아도르노의 평가를 넘어섰기 때문이겠죠. 이런 변화 때문에 사실 재즈와 민속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고전음악들도 사실 대중적인 관심에서 멀어지기는 했죠. 아마 쿤데라가 핑크 플로이드나 초기 제네시스, 혹은 이탈리안 프로그레시브의 태동을 관심있게 지켜봤더라면 또 어땠을지 모릅니다. 역사학자 홉스봄은 각기 재즈와 록에 대해서 아도르노와 쿤데라에 맞서 가치를 옹호하는 책을 내기도 했죠. (그러나 아마 쿤데라든 아도르노든, 그들이 가치를 인정한 것은 사유의 가능성이지, 감상자를 유혹하는 기술적 완성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걸, 보이 밴드같은 현재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꽃인 산업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을 겁니다. 이들이 옳다기 보다, 그냥 이들이 어떤 문화적 유산 아래서 자양분을 섭취하고 가치를 내면화시켰는지를 이해하는데 방점을 찍어야 할 문제겠죠.)

 

 여태까지 말했던 것 처럼, 쿤데라의 작품과 세계관, 태도에는 전체주의적, 반이성주의적 태도에 대한 경멸감이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저는 쿤데라를 접하기 전까지, 낭만주의나 자기세계에 틀어박힌 젊은이의 감수성의 위험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베토벤과 슈베르트, 쇼팽의 음악을 즐겨 듣고, 그 전에는 애절한 사랑의 아픔을 노래하는 팝발라드나 록음악을 들으며 감정에 취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콘서트에서  다른 관중들고 함께 자기를 읻고 하나가 되는 체험도 많이 해봤습니다. 하루키를 위시한 일군의 작가들이 노출하는 달콤 쌉사름한 고독과 부르주아적 퇴폐미를 풍기는 세련됨을 흉내내려고 신경 안쓰는 척 신경쓰는 평범한 젊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쿤데라의 농담에서 시작해서 그의 전 작품을 모두 몇 번 씩(저는 쿤데라의 모든 작품을 읽었는데 한 번 만 읽은 책은 하나도 없습니다. 최소한 모두 3번 이상은 읽은 것 같네요.)읽으면서, 저는 그 자아도취의 껍질을 비로소 깨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위험성을 인식할 수도 있었고요. 

 

 제가 쿤데라에게서 아쉬움을 느꼈던 단 하나의 단점은 그가 너무 일직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한 20년 정도만 늦게 태어났어도 아마 쿤데라는 훨씬 더 현대적인 세계관을 장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생의 만년까지도 포기하지 않았던 정신분석학은 항상 저에게는 깨름직한 오점이었습니다. 그가 정신분석학적인 프레임으로 현기증에 대해 그렇게 기지 넘치고 아름다운 비평을-그러나 말도 안되는 엉터리 비평을-쓸 때, 이러한 아쉬움은 더욱 배가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늦게 태어났더라면, 이러한 경이감은 상당 부분 줄어들었을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는 그 시절에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너무 선구적이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경탄을 이끌어낼 수 있는 흔치 않은 소설을 쓴 작가였습니다. 특히 다른 누구도 쿤데라만큼의 신랄할 위트와 유머감각을 발휘할 수 있는 작가는 없었습니다. 보통 눙치는 유머감각은 마크트웨인의 유산을 물려받은 미국 작가들의 장기인데, 트웨인의 적자라고 할 수 있는 보니것 마저도 쿤데라와 비교하기는 힘들 지경입니다. 쿤데라는 플로베르로 시작된 근대 브루주아 서사문학 양식이었던 nevel의 진정한 완성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한 비평에서, 소설이 의미가 있었던 시대의 마지막 적자로 스스로를  자리메김할 정도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신감이 오만함이 아니라 그저 정확한 자기평가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저의 가장 위대한 영웅 한 명을 보냅니다.  

19
Comments
1
2023-07-12 23:58:17

위대한 문학가의 죽음에 이런 소회를 남길수 있는 rockid님의 인문학적 성찰에 감탄하고 갑니다. 소싯적 저에게 쿤데라는 '프라하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던 야한 영화의 원작자일 뿐이었습니다. 지금도 그의 문학적 성취는 저에게는 높은 벽일 뿐이군요

WR
Updated at 2023-07-13 02:47:30

저는 프라하의 봄을 원작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본 다음에야 접했습니다. 원작의 자취를 따라가느라 그랬는지 그다지 야하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쿤데라의 작품은 생각보다 허들이 높지 않습니다. 적어도 농담처럼 선형적인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는 초기작이나 단편들은 쉽게 읽혀요. 

1
2023-07-12 23:59:14

쿤데라 형님은 제 마음속에 가장 웃기는 소설가아닐까합니다 홍상수작품에서 그위 체취를 많이 느끼곤합니다

WR
2023-07-13 01:01:02

저도 홍상수와 쿤데라에게서 비슷한 감정을 많이 느껴요. 특히 인물의 케리커처화라는 측면에서요. 그 둘 모두 인간의 한 단면적 특징을 간명하게 드러내서 묘사하는데 일가견이 있죠.

1
Updated at 2023-07-13 00:38:06

핑크 플로이드가 대중음악계 일각에선 '클래식에 대한 열등감과 미련을 못 버린 음악'이라고 비판받았던 걸 생각하면 정신분석학을 고수한 밀란 쿤데라가 핑크 플로이드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에 대해선 또 다른 상상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요즘에 와선 그런 비판 또한 근본주의적 고루함이 담겨 있다고 비판받겠지만 말입니다. 물론 저는 핑크 플로이드와 밀란 쿤데라를 모두 좋아합니다.

WR
1
Updated at 2023-07-13 01:18:12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쿤데라가 긴 침묵을 깨고 마지막 작품을 낸 것이 2014년이니 그가 마음막 먹었으면 얼마든지 후기 락음악을 들어볼기회는 있어을 거에요. 하지만 위에 중립적으로 적었던 것과 다르게 사실은 쿤데라가 아예 그 장르에 가진 선입견을 바꾸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저는 쿤데라의 그러한 반지성주의나 낭만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매우 의미있다고는 생각해요. 그러나 그것은 쿤데라 개인의 혹독한 경험 때문에 가중치가 더해진 것이고, 저는 늘 조심하면서 즐겨야한다는 조건하에서 베토벤, 브루크너, 바그너 같은 후기 낭만주의까지의 음악도 좋아합니다. 차라리 우리는 감정의 격동에 왜 이렇게 사로잡히는가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고 느껴요.  아마 쿤데라가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들었다면 몇몇 지적인 가사와 악구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을 겁니다. 또 더 월에서 그런 집단주의적 감성의 표출의 위험성에 대해 핑크플로이드가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한 것을 보고 기특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요. 그러나 쿤데라가 주목한 락음악의 핵심적 특질은 감정의 분출이 불러오는 순간이었을 겁니다. 락 콘서트나 정치집회에서 보여지는 그 집단적인 지성의 정지. 예전에 드림씨어터가 자신들의 음악은 스텐딩으로 같이 뛰면서 감상하는 것이 아니고 앉아서 감상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콘서트장에 의자를 놓겠다고 했다가 팬들의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죠. 쿤데라가 싫어했던 것이 그런 것이라, 락의 테두리 안에서 그러한 것을 비판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보이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시겠지만 사실 쿤데라는 지나치게 엘리트주의적인 측면이 있죠. 아마 락음악이란 장르가 이미 그렇게 구제불능인데 거기서 뭐라도 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았을 겁니다. 그건 쿤데라의 한계지만, 위에서 말한 여러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쿤데라보다 더 위대한 20세기 중후반의 소설가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1
2023-07-13 08:00:14

저는 rockid님때문에 몇몇 작가는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자 신문 한켠(아니 크게)에 부고기사로 실려도 될 글이라고 봅니다.

WR
2023-07-13 12:00:12

저 때문에 쿤데라를 다시 읽어보실 생각이 드셨다니 기쁩니다. 저는 쿤데라는 평생을 두고 흥미진진하게 읽으면서 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독장적인 작법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라는 측면에서 그와 비견될만한 소설가를 찾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1
2023-07-13 08:20:10

솔직히 이름만 알지 읽어보지는 못 했는데, rockid님의 글을 읽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WR
1
Updated at 2023-07-13 12:15:02

그러시다니 저도 보람이 많이 느껴집니다. 처음에 적응기간이 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익숙해지고나면 그 어떤 작가보다도 큰 즐거움을 주는 작가라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입문작으로 농담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1
2023-07-13 09:13:02

쿤데라는 이름만 들어봤지 전 잘모르지만
글을보니 흥미롭네요~
중간에 얘기하신 쿤데라의ㅡ사회주의에 대한 절망감을 읽어보니 켄로치의 랜드앤프리덤에서
이안하트의 여친이 살해당할때 느꼈던 것하고
비슷한 궤적도 느껴지고
이는 결국 조지오웰이 카탈로니아찬가에서 말하고 싶었던 지점이자‘
당대 지식인들의 딜레마와 결을 같이 하는건가 싶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나중에 한번 더 읽어봐야겠네요~

WR
2023-07-13 12:04:11

그렇습니다. 사실 오웰과 마찬가지로 쿤데라가 사회주의의 이념이나 목적성 자체에 대해서 절망했던 것은 아니에요. 그 과정속에서 발생했던 전체주의와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철저하게 파괴되는 모습에 절망했던 것이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2023-07-13 09:38:51

저도 참을수없는 보다 불멸이나 농담을 더 좋아해요.

밑에도 썼지만 상이 다는 아니지만 노벨문학상은 왜 쿤데라를 외면했는지 좀 아쉬워요.

좀 대중적이여서 그랬을까요..

WR
1
Updated at 2023-07-13 18:58:17

대중성은 노벨상에서 결격사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노벨상에서 작품의 깊이를 제외하고 가장 신경을 쓰는 측면은 정치적 성향이라고 생각해요. 보르헤스가 노벨상을 못받았던 것도 그가 남미의 독재자들에게 유화적인 분위기를 보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거의 정설이죠. 쿤데라의 작품세계는 인간의 미래에 대해 대놓고 비관적인 전망을 담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아는 인간은 위에서 말한 사고의 부재와 구성원들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전체주의적 분위기의 확산으로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죠. 노벨 문학상은 국제적인 권위를 가지지만 실제로 수여할 권한이 있는 스웨덴 한림원의 정치적 성향을 많이 반영합니다. 쿤데라의 귀족적, 엘리트주의적, 구 유럽 문화에 대한 향수가 간혹 비치는 성향은 그의 소설이 아무리 재미있고 깊이가 있더라도 노벨상의 입맛에는 너무 자극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작들, 특히 8~90년대 이후의 경향을 보면 정치적 올바름, 미래에 대한 노력, 제3세계에 대한 배려와 같은 진보적 입장들이 강세라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1
2023-07-13 12:35:04

아 댓글 2번 읽어보니 좀 수긍이 가네요.

정치적인 의도보다는 쿤데라는 개인적인 영역에 더 관심을 가진것도 같구요..

그런데 쿤데라가 의외로 장수를 했는데 그의 젋었을때의 삶을 보면 참 스트레스 많이 받고 그리 살았던거 같은데, 그리고 담배도 폈던거 같고..

그냥 장수 유전자를 타고 났는지 스트레스를 덜 받는 성향의 분이신지  궁금하네유 ㅋ

WR
1
2023-07-13 12:54:09

저도 쿤데라의 장수에 대해서 신기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쿤데라가 향수를 썼을 때가 아마 97년 즈음인가 그랬을 겁니다. 70세 이전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14년, 85세의 나이로 무의미의 축제를 썼을 때 퍽 놀랐습니다. 그런 고령의 나이에도 필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아서요. 그래서 저는 아 그냥 인간 자체가 강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ㅎㅎ

1
2023-07-13 12:58:57

무의미의 축제를 쓰고 그 이후의 삶이 좀 궁금해지긴 하네용 ㅎ

1
2023-07-13 12:14:36

글 잘 읽었습니다...ㅎ 오랜만에 책 다시 꺼내봐야겠습니다.

WR
2023-07-13 12:15:22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쓰기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