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꼬박 하루 손탁의 시선으로 벤야민을 쫒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이어폰을 귀에 꼽았습니다. 유튭 홈화면에 뜬 월말 김어준 발터 벤야민 편을 틀었습니다. 박구용 교수와 김어준의 껄껄합창이 중독성이 강합니다. 김어준의 방해에 불구하고 그 사이를 비집고 박구용 교수님의 워딩들은 꽤 응축된 것이 많습니다.
방송에서 거론된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는 예전에 구해 놓은 게 있었고 미뤄놓고 읽지 않았었는데요. 찾아보니 책(영문 1979년판) 서두에 소개글을 수잔 손탁이 썼습니다. 방송 듣고 자극받아 읽기 시작했는데 방금 들은 박구용 교수님의 워딩 하나하나가 거의 그대로 수잔 손탁의 글에서 나옵니다. 재미있어서 (소개글만) 단번에 읽어버렸습니다.
국내 번역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같은 해(2007)에 나온 두개의 판본이 있었지만 둘 다 수잔 손탁의 서두 소개글은 없었습니다. 영어 여러 판본 중에서 극히 일부만 손탁의 소개글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23페이지나 되는 긴 글이고 벤야민의 일생을 관조한 좋은 글이기에 아마도 다른 책에 포함됐다 생각했고 찾아보니 우울한 열정(2005)이라는 제목으로(원제 : Under the Sign of Saturn) 벤야민의 책 보다 먼저 국내에 번역된 수잔 손탁 에세이집에 실려 있었습니다. 다른 챕터들도 흥미롭지만 지금은 벤야민이 우선입니다.
벤야민 책 서두에 실린 것은 1979년이고 손탁의 책이 나온 것은 1980이었으며 국내에 손탁의 책이 2005년에 나왔고 벤야민의 해당 책이 2007년에 나왔으므로 전후사정이 짐작이 됩니다.
손탁의 책 '우울한 열정'의 목차를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풀 굿맨에 대하여
매혹적인 파시즘
토성의 영향 아래
지버베르크의 히틀러
바르트를 추억하며
열정의 정신
아르토에 다가가기
'토성의 영향 아래'가 원제가 Under the Sign of Saturn이고 손탁 책 '우울한 열정'의 원제목도 이와 같습니다. 사인오브새턴하면 영어에서 느껴지는 문화적 어감(새턴이 우울 등의 뜻 포함)이 있는데 토성의 영향 해버리니 대륙을 건너버려 낯선, 전혀 다른 느낌이 되어버리죠. 유감인 것은 우울한 열정이라고 제목을 '박아버리니' 손탁의 명문인 저 에세이를 그 제목 아래 가둬버리는 결과가 있다는 느낌적 느낌입니다. 박구용 교수의 워딩과 손탁의 분석과 턱 괴고 내리깔은 눈의 벤야민 모습(역시 손탁이 묘사했던 것과 일치하는)이 한번에 겹칩니다.
어쨌든, 아무튼, 손탁의 책 여러 권을 능력이 되면 읽으려고 모아 둔 덕에 이 책 또한 가지고 있더군요. 서두 소개글이자 손탁의 에세이 한편을 읽어버렸으나 손탁의 책 또한 시작한 셈이고 손탁과 벤야민을 한번에 초대한 셈이 됐습니다. 양손에 떡들고 어쩌지 못하는 놀부의 심정입니다.
https://youtu.be/kKsS4lpYfUo?si=Mk408XRfBLuf_lqc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62547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17966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95246
검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손탁의 벤야민 소개글이 벤야민에 대한 글들에서 많이 인용된다는 것입니다. 정통한 측근 정도랄까요, 그래서 박구용 교수님 또한 그랬겠다는 생각입니다.
일례로 리처드 스키너(작가)가 수잔 손탁의 소개글을 요약한 페이지(영문)입니다.
https://richardskinner.weebly.com/blogposts/susan-sontag-on-walter-benjamins-one-way-street
검색으로 발견한 390페이지 짜리 발터벤야민의 '일방통행로' 영문 pdf (수잔 손탁의 23페이지 소개글 포함)입니다.
https://monoskop.org/images/d/d7/Benjamin_Walter_One-Way_Street_and_Other_Writings.pdf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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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발터벤야민이라는 떡을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하는 제게 수잔 손탁이라는 떡까지 쥐어주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