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반세기 전의 '대중' 소설들 (이외수 外)
본작품집, 『우리들의 카니발』은 70~80년대에 활약한 소설가 12명의 작품 선집입니다. 소설가 한 명이 한 두 편 씩, 소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인데, 70년대 초반에 나온 작품부터 80년대 초반에 나온 작품들까지 시간적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어, 책 출간을 목적으로 소설들이 집필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 당해년도의 좋은 소설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추린 것도 아니구요. 제가 당시 출판계의 관행을 잘 몰라서 추측하기 힘들지만, 아마도 기왕에 수록된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적당히 모아 돈이나 벌어볼까 하는 생각에 간행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목적이 있었다면 책 서두에 발간사 같은 것이 있을텐데, 이 소설집은 권두언도, 후기도, 해설도 없이 단편소설 15편만 덩그라니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긴, 쓸데 없는 주례사 비평이나 번잡한 권두언따위 없이 오로지 작품만 실린 책을 저는 더 좋아합니다.(물론 동시대의 작품이 아니라면 전문가의 깊이있는 해설이 있는 편을 선호합니다. 국내에서 발간된 고전에 대해서 국내 연구자들에 의해 작성된 그런 해석이나 해설을 보기는 매우 드문 일이지만요. 대체로 해설의 깊이가 얕습니다.) 어쩌면 출간 목적이 그다지 진지하거나 아름답지 않아서 책의 구성이 더욱 깔끔해지는 아이러니가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이 눈에 들어온 이후, 몇 해 지나지 않아 이 책의 일부를 읽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아마 고등학교 1~2학년 무렵이었을텐데, 심심하던 차에 소설집을 펼쳐보는데 이외수의 이름이 눈에 띄더군요. 당시 이외수의 장편들인 『꿈꾸는 식물』과 『들개』를 읽고 이외수의 스토리텔링에 푹빠졌기 때문에, 이 이름을 발견하고 보물을 찾은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사지도 않은 책에서 읽고 싶었던 작가의 작품을 발견하는 것은 책읽기의 소소한 기쁨이라 할만 하죠. 이 책에 수록된 이외수의 작품은 「고수」라는 단편이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고 가벼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외수는 나중에 『칼』이나 『벽오금학도』 같은 소설들로 비평계에서 인심을 잃고 베스트셀러 대중 소설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꿈꾸는 식물』이나 『들개』를 쓸 때만해도, 그의 문학성은 많은 비평가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아직 『칼』이나 『벽오금학도』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이외수를 매우 진지한 작가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수」라는 작품은 이른바 순수문학이나 본격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들과 뭔가 달랐습니다. 그렇다고해서 이 소설의 질이 통속소설이라고 할 만큼 문장력이 떨어지거나 뻔한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을 한 번 보시죠.
바다는 짙은 소청색이었다. 하늘이 회색으로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소청색 바다가 허연 거품을 게우며 기절하고 있었다. 눈이 올 것 같았다. (p246)
멀리 해안선을 따라 검고 기다란 뱀 한 마리가 느릿느릿 이 도시를 향해 기어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중략)... 열차는 이제 두 어번 길게 동물적인 괴성을 발한 다음 도시의 사타구니 속에다 대가리를 쑤셔박고 있었다. 꼬리가 다 먹혀들어간 다음에도 잠시 열차의 헐떡거리는 소리는 계속되었다. (pp. 249~250)
「고수」는 도박에 중독된 꾼들의 이야기입니다. 소제가 매우 통속적이죠. 그런데 문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의인법, 은유법 등 비유가 정말 능숙하면서도 생생한 이미지를 제공해주지 않습니까? 거기다 하드보일드한 장면묘사와 플롯, 메마른 작중화자의 태도 등등, 피카레스크 소설의 정수를 보여주는 테크닉을 구사합니다. 비록 내용은 리얼리즘보다는 이외수 특유의 미스테리한 분위기가 있었지만요. 그러나 그정도의 괴력난신은 작품의 질을 평가하는데 큰 흠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수준의 작품에서 현실적이지 않은 서술이나 묘사는 심층적 의미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죠. 소설은 지나치게 모호하지도, 그렇다고 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관심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이외수야 원래 문학성을 담보한 작가였으니 그렇다 쳐도, 김홍신, 박범신 최인호, 박양호, 김성동 등등, 다른 작가들은 당시에 잘 모르거나 통속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어서 (소설이나 영화를 접하지 못했다고 해도 『영자의 전성시대』(조선작)라는 제목은 모를 수가 없죠.) 그다지 책 전체를 다 읽을 마음이 동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고등학생 때, 저는 꽤 시건방진 교양속물이었기 때문입니다.ㅎㅎ
30대 중반의 이외수
이 책에서 이외수의 「고수」만을 쏙 뽑아 읽은 후 책은 다시 잊혀졌고, 10년이 넘게 지나도록 한 번도 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불어난 책들 때문에 책장에서도 밀려나 박스에 담겨 방치되었습니다. 그러다 책장을 정리하느라 보지 않을 책들을 선별해서 털어버리는 시기가 왔는데, 언제나 그렇지만 버려야 할 책들이 가장 아깝게 느껴집니다. 이 책은 제 다른 책들과 다르게 깨끗하게 보존되지도 않았고, 80년대 특유의 좋지 못한 종이 질 때문에 변색이 되어 책배의 색갈이 거의 초컬릿 색처럼 진하게 변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활자조판도 선명한 편이 아니었고요. 평소라면 당연히 버려야 할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버리려니 뭔가 애석함이 느껴지더군요. 이 소설을 버리고나면, 제가 제돈을 주고 김홍신이나 박범신의 책을 구입할 일은 전혀 없고, 그렇다고 도서관에서 그들의 책을 빌려 읽을 일도 없을 것 같았기에, 최소한 이름을 들어본 이 작가들을 나름대로 예우하는 차원에서 단편 한 편 정도 씩은 읽어봐야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책은 다시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이 책의 존재를 처음 인식하고도 20년 쯤 지난 어느 날, 또 책장을 정리하다가 이번에는 반드시 읽어야지, 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320여 페이지의 책은 거의 한나절만에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쉽게 읽혀도 책이 스스로 흥미를 끌지 못하면 읽다 집어치우거나 늘어지기 마련이죠. 아마 이 책이 한 작가의 단독 작품집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겁니다. 연속해서 두 편의 소설이 실망스러우면, 그만 읽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맨 처음 두 편은 최고의 소설을 배치하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이 소설집은 12명의 작가들의 선집이었고, 한 작가가 실망스럽다고 해서 나머지도 실망스러우리라는 법은 없으니 끝까지 읽어볼 도리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먼저 읽었던 이외수의 작품은 무척 훌륭했거든요. 그리고 책을 버리지 않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김성동의 첫 작품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은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만다라』의 작가가 이렇게 수준 이하의 작품을 쓰다니. 그것도 김동규의 동명 시를 차용해서 말이죠. (이런 비극은 나중에 이문열이 자신의 장편소설 『아가』에 똑같은 부제를 붙임으로서 다시 한 번 되풀이 됩니다. 이 두 소설가는 마땅히 자신들이 낭비한 제목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나 소설의 소제와 주제의 통속성과 저열함(곧 30을 목전에 둔 실업자가 잠깐 동안 인연을 맺은 재수생을 사칭하는 어느어린 여자를 그리워한다는 내용입니다. 소설 속의 소소한 사건들 정도로 어떻게 이런 제목과 분위기를 만들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가더군요. 굉장히 남성중심적인 세계관을 가진 작가로구나 하고 느꼈습니다.)에도 불구하고, 김성동의 문장도 꽤나 공을 들인 흔적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소설의 첫단락을 한 번 보시죠.
빌딩을 나서면 언제나 밤이었다.
청사초롱 휘황한 밤저자의 큰 길에는 멋지게 성공한 신사숙녀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며 우아하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기름진 말쪼가리들, 그리고 그들의 굽 높은 구두의 뒷축이 아스팔트를 때리는 경쾌한 마찰음이 삼현육각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p.15)
훌륭하지 않나요? '행복한 웃음소리'와 '우아하게 낮은 목소리'라는 형식의 내용은 뜻밖에도 '기름진 말쪼가리들' 입니다. 첫 문장에서 이 소설이 휘황한 겉모습과 속빈 공허의 대립을 다룰 것이라는 것을 우아한 문장으로 암시합니다.(오히려 이렇게 멋진 제목과 첫 문장이 불러일으킨 기대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망했습니다.) 말의 운율도 아름답습니다. 읽어보면 입에 착 달라붙습니다.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
그 뒤를 잇는 김이연의 소설 「미완의 설계」도 문장과 감정표현, 주제가 모두 훌륭했습니다. 비록 두 연인의 원치않는 임신과 사산이라는 소제는 퍽 통속적이었지만 말이죠. 『객주』의 작가 김주영(아마도 김이연, 김지연, 이경자 등 여성 소설가들과 함께, 이 소설집에 포함 도니 작가들 중, 통속혐의가 가장 옅은 작가일 것입니다)의 소설 「집으로 오세요」도 준수했습니다. 고혈압으로 몸이 망가진 20년차 기능공의 직장조퇴 이야기를 정말 현실감있게 그려냈습니다. 이 소설집에서 최고의 작품은 김홍신과 조선작의 것들이었습니다. 김홍신의 「기찻길 옆 오막살이」는 찢어지게 가난한 불구자 집안의 비극과 인간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약간은 현실성이 없는 플롯에도 불구하고 정말 흡입력있게 그려냈습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세우는 계획이나 실행이 약간은 현실성이 없게 느껴진다는 것(멍석을 철로에 깔아 기차를 탈선시키고 강도를 저지르려고 합니다.)이 작품에 대한 평가에 약간 흠이되긴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훌륭한 단편입니다. 조선작의 「고압선」은 빠듯한 살림살이에 6명 대가족의 집을 구하려는 도시민의 애환을 실감나게 그렸고요.(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이 단편집에서 최고였습니다.)
물론 실망스러운 작품도 더 있었습니다. 박범신의 소설은 잘 읽힘에도, 소제나 대화지문의 문체가 조세희를 모방한 티가 난다는 점에서 좋게 평가하기 힘들었고, 박양호나 백시종의 경우는 햔재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성윤리 관점 때문에 기함을 했습니다. 소설 자체의 힘도 별로였고요. 외도한 남편의 편을 들어, 남편의 부도덕성을 성토하러 온 상간녀(남자가 결혼한 줄 몰랐음)를 물리치는 이야기를 가족애의 관점에서 그린다든지, 유부녀의 일탈을 정말 통속적으로 그린 작품들은 자극적이지도, 리얼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그냥 어느 정도 문장을 쓸 수 있고 관점이나 플롯을 제대로 만들 줄 모르는 작가들도 소설을 쓴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의 편차에도 불구하고, 이 선집에 수록된 작품들의 공통점을 뽑으라면, 대부분의 작가들이 문장력이 훌륭하고, 또 공들여서 문장을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작가들의 문장이 딱히 나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성의가 없고 글자 수만 늘려놨다는 인상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4~50년 전 작가들의 문장은 정보를 농축시키고 문장의 리듬을 살리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위 '대중소설'을 쓴다고 하는 작가들에게서도 말이죠.
또 전반적으로 소설집에 포함된 작품들이 도시와 농촌의 최하층 빈민의 삶을 핍진하게 묘사하고, 그들의 삶에 깊은 관심과 동정을 표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폭력과 성애를 노골적이거나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었고요. 이렇게 보니 사실 7~80년대의 소위 통속소설들도,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품위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아니면 상업적 목적을 위해 소설을 쓰는 작가들도 (돈이 되지 않는) 이런 단편들에서는 문학의 가치를 추구할 능력이 충분히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어쩌면 그 때는 통속과 순수의 격차가 생각보다 훨씬 좁았던 시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작가들의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는 문장이나 플롯을 보면, 당시의 독자들의 감식안이나 독서열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는지도 모르겠고요. 하긴 그 당시는 지금보다 즐길 거리가 더 적었겠죠.
확실히 이 소설집은 당시의 삶을 핍진하게 묘사함으로써 후대의 독자들에게도 당시의 시대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 문학의 한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미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저는 이후에도 김홍신이나 박범신, 최인호의 소설을 일부러 찾아 읽은적은 없지만(우연히 박범신의 2천년대 이후 장편소설 <<소금>>을 읽은 적은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실망했습니다. 이후 박범신의 성추행 폭로 사건도 있었고, 앞으로 그의 소설을 생전에 다시 읽을 일은 없겠죠.) 그 당시의 소위 상업소설 작가들의 실력과 위상을 재평가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소설집이엇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느라 소설 몇 편을 다시 읽어봤는데, 여전히 생명력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에필로그
1. 이 소설집이 나오고 불과 6~7년 후에 한국에 하루키의 소설들이 번역되어 나오고 소위 하루키 열풍이 불었습니다. 이인화, 박일문 등 젊은 작가들이 노골적으로 하루키를 베끼거나 스타일을 모방했고, 그러한 현상은 90년대 중반이 될 때까지 길게 이어졌습니다. 도시 빈민과 소시민의 삶을 이야기하던 시대에서 불과 10년 남짓 지나고 후기 자본주의 소비사회가 한국 문학의 중심 주제로 떠올랐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급작스러운 시대의 변화인가요.
2. 80년대 초 출간된 서적답게, 선명하지 못한 활판인쇄, 사진의 조악한 선명도, 좋지 못한 지질로 인한 변색 등이 눈에 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의 사진에서 지금은 노인이 되어버렸거나 세상을 떠난 작가들의 아름다운 시절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용모는 수려하기까지 합니다. 젊음은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또 발간된지 40년이 넘어가니, 지금은 책이 꽤 고풍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3. 9명의 남성 소설가들의 작품들은 수준의 편차가 어느 정도 있어서, 훌륭한 소설들과 한 번 읽고 잊을 글뭉치가 공존하고 있었지만, 3명의 여성 작가들의 소설들은 모두 일정 수준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물론 90년대 최고 수준을 보여주었던 여성 소설가들(예를 들면, 최윤, 공선옥, 윤영수 등등)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만, 가능성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평범 이하의 작품들을 써내고 곧 잊힌 작가들이 굉장히 많았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오히려 7~80년 대에 어느 정도 문명을 떨쳤던 여성 작가들은 당시의 남녀 차별적 선입견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 때문에 남성들보다 더 높은 기준점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이 소설집 한 권으로는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없겠지만요.
위로부터 김주영, 이경자, 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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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고수는 기억이 나네요.
오징어 질겅질겅 씹어먹는 여자 꼬마애가 타짜로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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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고등학교때 독서실에서 이외수씨의 꿈꾸는 식물을 읽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