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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차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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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억의 책] 커트 보니것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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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2-10-01 18:19:27

 

 

 

 보네거트, 보니거트, 보니것. 

 

지금은 여러 출판사에서 '보니것'으로 통일해서 표기하지만, 불과 십 수년 전 까지도 미국 작가 Kurt Vonnegut의 한글 표기명은 재각각이었습니다. 심지어 같은 출판사에서 1~2년의 격차를 두고 출간된 작품들에서도 이름이 서로 달랐죠. 그 만큼 커트 '보니것'은 친숙하면서도 낯이 선 작가였습니다. 영미문학이나 환상문학, 포스트 모더니즘에 익숙한 독자들은 보니것의 따뜻하면서도 연민에 가득찬 유머감각과 문명비판에 열광했지만, 교묘하고도 튼튼한 플롯과 명확한 스토리가 중시될 수 밖에 없는 일반 대중 소설 시장에서는 외면받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르면 70년 대후반 ~80년대 초반부터 저작권 없이 번역되던 그의 작품들은 여간해서 재판을 찍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같은 작품들이 중소 출판사에서 제목을 바꿔 출판하면서도 잘 팔리지 않아 정작 서점에서 잘 볼 수가 없고, 중고 서점에서나 운 좋게 득템할 수 있는 품목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전설처럼 애호가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신비스러운 비밀 암호같은 분위기를 풍겼죠. 

 

 이후 국제 저작권을 준수하게 된 한국 출판시장에서 90년대 초중반에 『제일버드』와 『마더 나이트』, 『갈라파고스』가 번역되고, 또 한참 소식이 없다가 드디어 21세기 벽두부터 보니것의 대표작들이 차례로 번역되기 시작합니다. '도서출판 금문'과 '이이필드'란 출판사를 통해서였는데요. 그중 아이필드에서는 보니거트의 명실상부한 대표작 『제5도살장』과 『고양이요람』, 『타임퀘이크』 등이 출간되어 애호가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훌륭한 디자인과 번역, 저렴한 가격으로 애호가들의 칭찬을 많이 받고 또 오랫동안 팔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더 조금 일찍 '금문'이라는 출판사에서 이전에 한 번도 소개된 적이 없는 보니것 최조의 장편소설 『자동피아노』를 필두로, 비교적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동피아노』는 보니것의 이후 스타일과 전혀 다른, 진지하고 어두운 스타일의 현대 기술문명과 사회비판적 요소가 강한 미래소설이었고, 그 다음으로 소개된 『챔피온들의 아침식사』는 현존했던 괴짜 SF 작가 시어도어 스터전의 독특함에서 착안된 킬고어 트라우트가 등장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이후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로 제작된 적도 있죠. 이 소설들이 처음 나올 무렵, 마침 저는 친구가 빌려줬던 『제일버드』를 읽고 보니것의 작품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때였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이 책들을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그때까지 이런 풍자적이면서도 슬프고, 또 미국식 포스트모던 작품을 별로 접해보지 못하고 막 흥미를 느끼던 시점이기 때문에(이전에는 기껏해야 폴 오스터의 작품들이 미국 포스트모던 작품 경험의 전부였습니다.) (폴 오스터보다 한층 더 세련되고 포스트모던 하면서도 유럽적인 스타일과 다르게 대중적 감각을 잃지 않는, 그러면서도 유럽 소설 전통에 대한 선망이 없어보이는 보니것의 작품들은 정말 신선한 독서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2~3년이 지난 이후부터 아이필드에서 보니거트의 대표작들이 출간되었죠. 물론 이 작품들도 모두 구입해 읽었고, 아이필드에서 나온 작품들은 상업적으로도 성공적이었습니다. 어찌나 많이 팔렸는지 절판된지 10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중고책 매물이 많아 아주 싼 가격에 팔리고 있죠. 

 

 그러나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받은 금문 출판사의 출간작들은 곧 잊혀졌습니다. 심지어 저는 『타이탄의 마녀』가 출간된지도 몰랐습니다.  한참 후에 이 책이 재가 환승하던 지하철 구내 서점에서 가판매대에서 반 값 할인을 하는 걸 보고 출간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나온지 한 2~3년이 지난 후였죠. 저는 냉큼 두 권을 사서 한 권은 제가 갖고, 한 권은 제게 『제일버드』를 빌려줬던 친구에게 선물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미 그 당시에도 인터넷 서점에서 품절이 된 상태였습니다. 『타이탄의 미녀』 정도면 이전에도 해적판으로 출간된 적이 있는, 꽤 유명한 작품이었는데도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중고책 덤핑 세일로 직행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읽고 싶었던 책을 싸게 사서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이 정도의 소설도 제대로 판로를 찾기 힘든 한국 출판 시장의 열악함에 기분이 씁쓸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책들은 지금 모두 절판되어 중고는 2~3배에 달하는 웃돈을 줘야 구할 수 있습니다. 

 

 『제일버드』의 스타일이, 그 책을 일본어로 번역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장편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거의 표절이라고 해도 무방할만한 영향을 끼친 것처럼, 금문에서 나온 『챔피온들의 아침식사』도 한국의 소설가 천명관의 『고래』에 분명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작가가 직접 그린 선 굵은 캐리커쳐를 소설 중간중간에 끼어넣어 소설 진행에 필수적인 요소로 만든 수법은 『고래』에 그대로 차용되었습니다. 어찌보면 천명관의 『고래』는 정말 역설적인 작품입니다. 세계 각국 유명 소설가의 스타일과 수법을 페스티쉬해서 만든 그야말로 포스트모던한 작품이면서, 정작 소설의 플롯은 아주 전통적이고 대중적인 스타일이었으니 말입니다. 저는 그 작품에서 소설이란 장르에 대한 작가의 주장을 발견해보려 꼼꼼하게 읽어봤지만 결국 그런 표식을 찾을 길이 없어, 『고래』의 형식적 차용들이 내용과 아무런 상관 없는 것이라 결론짓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가의 스타일을 차용하면서 그 차용의 무게에 값하는 독창성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죠. 만약 천명관이 보니것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흔적이 보였다면 정말로 즐거운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보니것이 생 떽쥐베리의 기법을 모방하면서 그림체와 선을 자기 식으로 변형시키고, 환상과 꿈을 현실에 대한 독한 풍자로 전환시켰듯이요. 하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보니것의 이 작품은 더 애뜻하게 가슴에 남게되었습니다.

 

 언젠가 제가 "보니것의 풍자는 그토록 슬프고 끔찍한 이야기들을 복잡한 미소를 짓고 받아들이도록 만든다."라고 이야기하자, 제 친구가, "그것은 보니것이 세상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지고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답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에 깊이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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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2-08-12 22:35:37

추천드립니다.
마지막 문장에 친구분의 통찰력에 감탄했습니다.
주말에 보니것 한편 꺼내 읽어야겠네요

WR
2022-08-13 07:57:36

어던 작품을 읽으실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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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5 00:41:42

오 이제사 이글을 읽게 되었네요.

보니것의 작품은 제5 도살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억되네요. 포스트모더니즘이 뜰 떼 이 텍스트도

냉소와 아이러니의 글쓰기 전략과 고도의 풍자성으로 

그런 조류로 분류됐던 듯싶습니다.

낭중에 영화버전도 접했는데 별로였구여.

마지막에서 위로 두째 단락에 특히

구미가 땡기는 내용이 많은데... 배포가 크고 담대하게

능청맞은 천작가의 책을 집어딘가에서 먼저 찾아야

겠네요....

 

WR
2022-08-15 09:57:43

그러셨군요. 하지만 조지 로이 힐의 영화 제 5도살장도 꽤 할이야기가 많은 영화입니다. 저는 정말 인상깊게 보기도 했고요. 조지 로이 힐은 스팅니나 내일을 향해 쏴라를 연출하기도 한 감독이죠. 그가 캐나다 감독이었던 이유로 같은 캐나다의 수퍼스타였던 글렌 굴드가 바로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했습니다. 이 OST는 굴드의 디스코 그래피에 당당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록 새로 녹음한 것은 없는 편집음반이긴 하지만요. 게오르그 솔티가 음악을 담당했던 불멸의 연인과 함께 제가 가장 아끼는 OST이기도 합니다. 영원과 숙명을 표현하기에 굴드가 연주하거나 선택한 바흐보다 나은 것을 찾기는 힘들테니까요. 언젠가 제 5도살장의 소설, 영화 음악에 대한 긴 글을 써보고 싶은데, 밀린 일들이 많아 게을러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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