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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어둠 속의 외침(1988) - 딩고 사건, 메릴 스트립 칸 여우주연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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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7 22:13:04

▲ 실존 인물 린디 체임벌린으로 변신한 메릴 스트립 커버스토리 - 1988년 9월호 우먼스 위클리 

 

1988년작 [어둠 속의 외침]은 메릴 스트립의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으로 생명력이 유지되고 있는 작품이다. 메릴 스트립의 화려한 아카데미 경력에서 이 작품의 열연도 오스카 후보로 올랐지만 메릴 스트립의 연기 이력에서나 작품적으로나 많이 묻혔다. 1980년대 호주를 떠들썩하게 한 영아 살해 사건인, 일명 '어둠 속의 외침 사건' 혹은 '딩고 베이비 살인 사건(Dingo's got my baby)'을 영화화하여 그릇된 음모론을 부추기는 미디어 선동성을 비판했다. 


무차별적으로 침입한 미디어의 먹잇감으로 이용되면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무고한 옥살이의 죄명을 벗은 뒤에도 음모론에 짓밟혀 방치된 한 가정의 파괴된 삶을 낱낱이 조명한다. 황색 저널리즘의 선정성과 추악한 여론 몰이의 선동성을 현대판 마녀재판의 광기로 다루면서 언론의 무책임한 재단과 안줏거리 삼아 던지는 남 얘기의 추측과 비난의 확신들이 얼마나 끔찍한 오해와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고발하고 있다. 


옛날 영화지만 미개한 옛날이야기로 치부할 수가 없다. 가차 없이 내모는 미디어 광기의 시대적 관통이 섬뜩한 실화다. 미디어에 완전히 노출되면서 너무 많이 알려졌고 너무 많은 기록이 남은 실화라 그런가 영화는 생략은 했을지언정 사실을 왜곡하진 않았다. 미디어의 전달 방식이 달라졌을 뿐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라 너무 많은 언론과 개인 방송이 난립한 요즘에 보면 의도를 넘어선 극의 예지력에 더 공감이 된다. 메릴 스트립의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정도로 의의를 두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1980년 8월 17일 호주 북부 울루루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태어난 지 9주 된 신생아 살해 사건의 언론 파급이 어찌나 강했던지 실제 사건의 부부가 법적 판결로 누명을 벗기 3년 전에 소설이 나왔고 그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된 미국, 호주 합작의 메릴 스트립 주연 영화는 마이클과 린디 체임벌린(Chamberlain) 부부가 호주 노던 주 법정에 다시 올라 무죄 판결을 받은 지(1988년 9월 15일) 두 달 뒤에 개봉했다.(1988년 11월 3일 호주, 1988년 11월 11일 미국) 영화 제작 당시엔 사건 발생 5년 만에 발견된 아기의 카디건으로 종신형이 선고됐던 린디가 4년 만에 감옥에서 풀려난 정도로 누명이 벗겨졌을 뿐이다. 그때도 집단 광기에 전염돼 린디의 무죄를 안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호주의 야생개 딩고에게 자식을 잃은 참척으로도 모자라 그 아이를 종교적 의식의 재물로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개신교 부부가 사건 발생 직후부터 미디어의 제물이 되어 평생을 시달린 고통과 그에 따른 32년간의 법정 투쟁 과정을 걸쳐 봤을 땐 존 브라이슨 소설이나 메릴 스트립 주연 영화도 다소는 성급한 기획이었다. 소설과 영화도 의도가 어떻건 일부는 이 사건을 둘러싼 미디어 광기에 숟가락을 얹은 셈이다. 

 

▲ 1988년 11월 11일 미국 개봉 포스터 

 

▲ 1988년 11월 3일 호주 개봉 포스터


미국, 호주 합작으로 미국에선 [A Cry In The Dark]로, 호주에선 영화가 기반을 둔 존 브라이슨 소설과 같은 [Evil Angels]로 개봉했다.

 

 

존 브라이슨 소설은 영화의 정식 각색은 아니고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기반한 소설 정도로만 크레딧에 표기됐다. 딩고가 물어간 아자리아의 카디건이 우연히 발견된 건 사건 발생 5년 뒤인 1986년 1월이었고 존 브라이슨이 수사 방식의 허점을 폭로한 소설을 발표한 건 1985년이었다. 린디 체임벌린은 존 브라이슨의 소설이 나왔을 때 종신형으로 수감 중이었다. 린디는 영국인 관광객 실족사 수색 중 아자리아의 카디건이 발견되면서 4년 만에 출소했고 영화는 체임벌린 부부가 모든 혐의에서 법적으로도 무죄 판결을 받은 지 두 달 뒤인 1988년 11월에 개봉했다. 존 브라이슨 소설 전에도 이 사건은 전례가 없는 공개 재판으로 방송 중계되며 호주 전역을 강타했고 국제 사회의 관심을 받아서 영화가 원작으로까지 삼지는 않은 것 같다. 


영화는 출소한 린디가 가정으로 복귀한 모습과 1988년 9월 15일 법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은 후일담까지 자막으로 기록했지만 실제 사건은 그 뒤에도 재수사와 경찰과 언론을 상대로 한 부부의 손해배상 소송이 부부의 이혼 뒤에도 긴 시간 이어지면서 2012년 6월 12일 최종 판결로 32년 만에 종결됐다. 그 사이 부부의 이혼과 재혼이 있었고 사건 종결 5년 뒤엔 마이클이 사망했다. 아자리아의 사망은 딩고의 소행이라는 체임벌린 가족 대 검찰의 최종 공판 이후 2017년 1월 마이클 체임벌린은 급성 백혈병으로 72세에 사망했고 국내에도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 호주 작가 존 브라이슨(John Bryson)이 발표한 [Evil Angels](사악한 천사) 1985년 초판


호주에선 각본이 참고한 존 브라이슨의 1985년 소설 제목을 따랐고 국내는 미국 제목인 [A Cry In The Dark]를 직역한 [어둠 속의 외침]으로 자국 개봉 5년 뒤인 1993년에 조용히 들어왔다. 비디오 단가를 올리기 위한 형식적인 개봉 뒤 소량 제작된 비디오라 출시 직후부터 희귀 타이틀이었다.  


1,500만불 예산의 [어둠 속의 외침]은 제작 당시 할리우드 자본의 힘으로 호주에서 제작된 영화 중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된 작품이었지만 떠들썩했던 실화의 화제성이 무색하게 영화는 실화가 발생한 호주에서건 미국에서건 흥행에 실패했다. 그러다 보니 영화 개봉 이듬해 메릴 스트립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지난 뒤 경쟁부문에 진출한 1989년 제42회 칸영화제에서 메릴 스트립에 수여된 칸 여우주연상이 작품의 간판이 됐다. 이마저도 메릴 스트립의 압도적인 경력과 기록적인 오스카 이력에 가리면서 메릴 스트립의 대표작에서도 숨은 영화로 묻혔다.    

 

 

▲ 1993년 12월 18일자 세경에서 출시된 [어둠 속의 외침] 비디오 

 

▲ dvd로 이어진 [어둠 속의 외침] 국내 2차 시장 수난. 2013년 10월 미디어연가에서 20년 전 비디오 출시처럼 조용히 출시됐는데 dvd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케이블 TV 방영작 심의번호로 무판권 타이틀이다. 그간 메릴 스트립의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의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감안하면 1993년 비디오에서 잘라먹은 31분과 스코프 화면비 복원으로 지금도 절판되지 않은 게 접근성에서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1988년 [어둠 속의 외침]은 1985년 [프렌티]를 작업한 호주 출신 감독 프레드 셰피시와 메릴 스트립, 샘 닐이 다시 한번 팀을 이룬 작품이다.    

 

 

 

1980년 8월 17일 호주 북부의 에어스 록(Ayers Rock)으로 불리는 울루루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영아 살해 사건으로 초기 경찰의 확증편향에 언론과 전문가가 일조하면서 순식간에 황당한 여론 몰이가 형성돼버렸다. 법정의 배심제는 흔들리고 자극적인 보도에 열광한 대중들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얻고 싶은 결과에 모든 것을 짜맞추면서 현대판 마녀재판의 돌팔매질로 부끄러운 과오를 남겼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에 열을 올리는 황색 저널리즘의 천박성, 종교 다양성에 대한 배척성, 인권이 무시된 경찰 수사의 편향성, 주관적인 판단에 기우는 법정 배심제의 취약성 등 사람을 해치는 야생개 딩고의 사냥 본능을 부정하는 과정에서 도미노처럼 무너진 사회 전반의 허점이 딩고의 사냥 본능과 같은 유사 포악성으로 은유된다. 본능에 의해 먹이를 찾는 딩고의 야생성과 다를 바 없는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미디어 광기에 전염된 사회 전역의 문제로 확대하여 진짜로 제물을 만드는 건 편견과 그릇된 가치관에 지배된 사회라는 것을 고발하고 있다. 

 

체임벌린 부부의 누명 사건을 사회 전체 문제로 해석한 영화는 부감으로 잡은 지역 풍경을 수시로 비춘다. 

 

마이클과 린디 체임벌린 부부는 두 아들과 태어난 지 이제 9주 된 신생아 딸을 둔 단란한 가족이다.  

 

 

부부는 이단으로 치부되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의 독실한 신자고 남편은 목사로 재직하고 있다. 당시 호주인들에겐 생소한 개신교라 부부는 자신들의 종교를 굳이 드러내진 않는다. 흔하지 않은 종교의 특성으로 인해 딩고가 물어갔다는 아자리아 살해 사건에서 사람들은 부부의 진술을 토대로 종교와 억지로 결부시켜 이단의 종교 의식을 위한 인신공양으로 쉽게 단정하여 되려 자식을 죽인 부모로 몰아세운다.   

 

 

1980년 8월 17일 가족은 호주 원주민들이 종교 의식으로 섬기는 성지이기도 했던 에어스 록으로 캠핑을 한다.  

 

 

에어스 록은 술에 찌든 가난한 호주 원주민들이 드문드문 거주하는 가운데 많은 여행객들이 들르는 인기 캠핑 지역이다.  

 

개과 동물인 야생개 딩고가 캠핑을 온 관광객 주변을 불길하게 맴돈다. 늑대가 조상인 딩고는 야생화된 호주의 들개로 애완동물로 키우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농장의 가축은 물론이고 사람을 해친 일도 수차례 보고됐지만 1980년 아자리아 살해 사건 때는 동물보호가들까지 나서서 사람도 해치는 딩고의 늑대 습성을 부정했다.       

 


늑대의 거칠고 공격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어 훈련을 시켜도 애완견 수준으로 사람을 따르지는 않는다고 알려진 중형견 크기의 딩고는 사나운 성격과 달리 외모는 가축처럼 친근해서 캠핑 관광객들이 야생개의 위험성을 쉽게 잊게 한다. 마이클이 캠핑 관광객들 주변을 얼쩡거리는 딩고에게 먹을 것을 던지자 린디는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한다.   

 

체임벌린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지 9주 된 신생아 아자리아 체임벌린(1980년 6월 11일~8월 17일) 

 

계속해서 관광객 주위를 얼쩡대는 딩고. 갑자기 나타나 설치류를 잡아먹는 행동으로 사람들을 놀래킨다.  

 

마이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경고를 쉽게 무시하며 딩고에게 먹을 것을 던져 아자리아 살해 사건의 비극을 초래한다.    

 

아자리아를 텐트에 재워놓고 나온 린디 

 

짧게 끊어진 어둠 속의 외침에 린디는 아자리아가 잠든 텐트를 가다가 기겁한다. 그녀가 본 것은 딩고가 아자리아를 물고 가는 듯한 모습이다.  


아기가 사라진 요람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다급히 딩고를 쫓는 린디 

 

아자리아가 사라진 텐트에 남은 혈흔 

 

캠핑 관광객들이 힘을 모아 아자리아를 물고 간 딩고 추격을 돕는다.  

 

야생개에게 물려간 9주 된 신생아의 실종에 망연자실한 린디 

 

 

아자리아의 흔적만 남은 젖병과 빈 요람만 남았다.  

 

날이 밝고 수색하지만 아자리아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태어난 지 9주 밖에 안 된 신생아의 사망 진단서에 서명을 하게 된다. 아기는 부부의 부모들도 보지 못한 상태였다.  

 

딩고에게 아이를 잃은 부부의 사연이 언론을 탄다. 목사 부부는 아이를 잃은 슬픔을 그들의 종교로 달래며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언론을 상대하는데  

 

 

 

 

이 모습이 언론의 오해와 경찰의 의심을 사게 만든다. 아이를 잃은 부모, 특히 엄마의 모습이 너무 침착하다며 그들의 종교와 결부해 말 하나하나를 곡해하고 원주민들의 종교 성지이기도 했던 에어스 록에 인신공양을 했다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여파처럼 부모를 범인으로 모는 해괴한 추측과 가설이 동원되며 부부를 압박한다. 


딩고 정도의 중형견이 4kg 정도 되는 아기를 물고 도망칠 수 있냐며 비웃는 사람들 

 

 

 

딩고의 사람 공격에 인근 원주민들이 기르는 개들을 안락사시키러 온 관계자들. 린디는 아자리아를 물고 간 딩고는 이런 잡종견이 아니라고 말한다.  

 

 

계속된 언론의 추가 보도 

 

 

아자리아의 카디건이 벗겨진 옷이 발견되면서 


옷만 가지고 장례식을 치르는 부부. 카디건이 사라진 것에서도 부부는 의심을 받는다. 사람들은 그래봤자 야생개인 딩고가 어떻게 아기의 카디건을 멀쩡한 상태로 벗길 수 있냐고 반문한다.  

 

 

린디는 아자리아의 죽음이 자꾸 부부의 종교 의식으로 이상하게 불린 상황에 사실을 바로잡고자 인터뷰를 하지만 오해만 더 불러일으킨다.   

 

그러다 보니 야생 동물에 의한 인명 피해로 종결될 수도 있었던 비극이 언론의 각종 실험과 가설로 엉뚱하게 가열된다.  

 

 

 

 

점점 더 몰려드는 취재진의 과열 경쟁에 시달리는 체임벌린 부부는 딩고 살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1차 재판을 받게 된다.  

 

 

아이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부부는 차 공판에선 무죄 판결을 받는다. 


무죄 판결 과정도 언론에 낱낱이 까발려진다. 


그러다 보니 무죄 판결 이후에도 음모론에 갇힌 관계자들에 의해 재수사가 시작되고 수사가 진행될수록 언론의 과열 경쟁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부부의 삶을 망가뜨린다. 

 

 

 

 

 

언론의 취재 경쟁에 헬기까지 동원된다. 부부의 인권은 보호되지 못한다.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헬기 취재에 공포에 빠진 체임벌린 부부.   

 

위기의 가정과 아자리아를 잃은 슬픔을 달래고자 린디는 마이클에게 넷째 아이를 갖자고 제안한다.  

 

 

 

배가 불러오는 과정에서 2차 재판을 받게 되는 부부. 7주 동안 지속된 2차 재판은 호주 전역에 생중계된 최초의 공개 재판으로 사람들에게 시리즈 드라마의 재미를 안긴다. 생중계된 재판이 끝나면 체임벌린 부부는 인권이 완전히 무시된 상태에서 재판장 밖에 잔뜩 몰린 언론의 공격에 매번 시달려야 했다. 

 

부부를 살해범으로 지목하는 법정의 위협적인 태도로 부부 사이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딩고가 물어간 아자리아의 상황을 각종 시범들로 보여주면서 아이를 잃은 부모가 느낄 고통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마이클은 재판이 괴로워 머리를 긁다가 피가 나기도 하고 도중에 퇴장하기도 한다.  

 

마녀재판의 희생자로 몰린 부부는 일상에서도 사람들의 공격에 노출된다.  

 

부부를 범인으로 몰고 가는 언론과 관계자들의 태도에 판단력을 상실한 배심원들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검찰의 강압적인 유도질문과 고압적인 태도가 견디기 힘들었던 마이클은 심신미약 상태가 되어 증언대에서 버벅대고 

 

 

반대로 린디는 공격적으로 돌변한다.  

 

 

마이클과 린디의 법정 증언 이후 누명 쓴 상황은 더 불리해진다.    

 

언론과 관계자들의 태도에 세뇌된 배심원들은 체임벌린 부부를 불분명한 이유를 들면서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 결과 사건은 무죄 판결에서 종신형 선고로 뒤집어진다. 1982년 10월 29일 만삭의 린디에게 종신형이 언도된다. 재판 결과에 오열하는 마이클. 2차 공판 과정과 판결 이후 계단참에서 휘청거리며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샘 닐의 열연도 굉장하다. 

 

이튿날 마이클에게도 형이 가해진다. 마이클에겐 아이 살해의 방조죄로 징역 18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언도되지만 린디가 감옥에서 출산할 아이까지 세 자녀의 양육 문제가 고려돼 보석금 신청이 허용된다. 

 

감옥에서 딸을 낳은 린디. 죄수 입장이라 출산 후 1시간만 아이를 안을 수 있다. 

 

 

 

그 뒤 린디의 끝나지 않을 수감 생활이 보도되지만 사람들은 이미 이 사건에 흥미를 잃었다.  

 

 

 

세 아이를 기르며 아내의 옥바라지를 하는 마이클  

 

그렇게 무고한 옥살이가 4년째가 되던 1986년 1월, 영국인 관광객 데이비드 브렛이 에어스 록 등반 도중 실족사한 사건이 발생한다. 시신을 찾는 수색 과정에서 데이비드의 시체와 함께 아자리아가 입었던 카디건이 발견된다. 카디건만 따로 발견되면서 딩고가 카디건을 쉽게 벗길 수 있는 모습도 동물 실험으로 밝혀진다. 사건 당시 이 같은 실험을 할 수 있었음에도 결과에 맞춘 수사와 판결로 몰아가면서 무고한 희생을 낳게 한 것이다.   

 

 

 

무죄의 결정적 증거가 발견되면서 린디는 석방되고  

 

 

가정으로 복귀한다. 감옥에서 낳고 돌려보내야 했던 어린 딸과의 만남에서 린디는 모녀의 서먹한 관계는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며 어린 딸과 자신을 안심시킨다. 


영화에선 누명을 벗은 린디를 환영하는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모습으로 단순하게 가지만 실제론 린디의 석방 때도 음모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부부는 석방 뒤 1980년대 후반부터 사이가 나빠져 1991년에 이혼했지만 자신들을 범인으로 몰아세운 경찰과 언론을 상대로 수백만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하였고 각각 90만 달러와 40만 달러의 배상을 받았다.   

 

교회에서 가족 상봉을 축하받는 체임벌린 가족 

 

 

석방 뒤에도 체임벌린 부부는 언론에 시달린다. 손해배상 청구를 시작한 마이클에게 교회 밖에서 대기하던 기자들이 이유를 묻자 마이클은 ""무고한 사람만이 그 무고함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안다"라고 답한다.  

 

 

1988년 9월 15일 3차 공판에서 체임벌린 부부는 무죄 판결을 받는다. 이후 손해배상 소송이 이어졌고 사인 규명과 진상 조사가 진행된 끝에 2012년 6월 12일 아자리아 살해 사건은 야생개 딩고의 짓이라는 최종 보고서가 작성되면서 마이클과 린디 체임벌린의 결백이 완전하게 증명됐다. 


아자리아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못했고 마이클은 2012년 1월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어둠 속의 외침]에서 마이클 역을 맡은 샘 닐은 마이클의 부고 소식에 SNS로 "체임벌린 부부는 지독하고 잔혹하게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그러나 마이클 체임벌린은 침착하면서도 겸손하게 품위를 유지했다. 인상 깊은 사람"이라고 애도했다. 


생전 마이클은 사건 발생 당시 호주에선 생소했던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에 대한 종교적 편견이 부부를 위기에 몰아넣은 거라고 토로했다. 마이클은 종교 문제가 결정적인 오해를 일으킨 사건 여파로 목사 자리도 잃었다. 마이클과 린디는 아자리아 살해 사건을 기록한 수기를 각각 발간하기도 했다. 

 

▲ 1989년 5월 13일 제42회 칸영화제 [어둠 속의 외침] 레드카펫. 미국 개봉 이듬해 칸영화제에 진출하여 메릴 스트립이 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메릴 스트립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1989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뒤의 수상이다.  

 

 

 

 

▲ 손도장도 찍고 [어둠 속의 외침]으로 여우주연상도 수상한 1989년 칸영화제에서 메릴 스트립. 마흔 살이 되던 해였다.(1949년 6월 22일생)

 

 

 

 

 

 

▲ [어둠 속의 외침]이 똑같이 재현한 실제 체임벌린 부부 모습들 

 

▲ 1980년 8월 17일 사건이 발생한 호주 에어스 록 관광지에서 생후 9주 된 아자리아와 함께한 린디 체임벌린의 실제 모습과 이를 재현한 메릴 스트립 비교 

 

▲ 린디 체임벌린과 함께 한(우측) 메릴 스트립과 샘 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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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4-03-28 00:40:40

그렇다면 최종판결이 있기도 전에 무죄를 확신하며 촬영을 마쳤다는 거네요.

WR
Updated at 2024-03-28 00:48:22

그렇죠. 영화가 3차 공판 두 달 뒤 개봉했으니까요. 

근데 무죄 판결 결과는 크레딧의 자막으로만 보여주기 때문에 후반 작업 때 공판 결과 보고 추가된걸겁니다. 영화에선 출소하고 가족들이 교회간 모습에서 끝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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