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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별들의 고향 OST - 강근식, 이장희, 구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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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9-20 00:44:40

 

이장호 감독 장편 데뷔작인 <별들의 고향>은 조선일보에서 1년간 연재되며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최인호 작가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8년동안 신상옥의 조감독이었던 이장호는 막막한 현실을 보내던 차에 친구 최인호의 히트작이 영화데뷔를 도울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스승인 신상옥을 비롯해 당대 유명감독들이 탐내던 원작소설의 판권을 갖고자 동생 이영호 배우의 대학등록금을 빌려 다짜고짜 최인호의 집에 갖다놓는 식으로 쟁취한다. 어느 날은 자신의 신춘문예 시나리오 당선작 <사람을 찾습니다>를 줄 테니 <별들의 고향> 연출자리를 넘기라던 선배 H감독(이라고 이장호는 언급했지만 이 사람 홍파 감독이다.) 의 제안, 혹은 압력에 <아수라> 마냥 유리컵을 이빨로 우적우적 씹으면서 그를 겁먹게 만들어 기선제압을 하기도 했다. 이런 절박함이 당대 충무로에서는 전례 없던 일. 그러니까 아무리 이장호 감독이 조감독 8년을 거쳤다지만 엄격한 도제 시스템 때문에 그 기간 좆뺑이 쳐도 위에 데뷔할 사람이 줄을 서 있으니 데뷔까지 기약이 없었는데, 서른 되기 전에 인기소설의 영화화를 차지하고는 자기 스타일대로 만드는 선례를 만들지 않았을까.

 

 

사실 최인호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소설이 한창 연재 중일 당시 일찍부터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지원했던 문예지 문학과 지성의 김현 문학평론가로부터 부름을 받았는데, 좋은 작가인 네가 <별들의 고향>으로 대중작가가 되려 하니 업계 입장이 난처해 졌다는 것이다. 순문학과 대중문학 중 택일하라는 김현의 요청에 최인호는 그렇게 곤란하다면 자기 이름을 빼라고 했다. 문학계와 영화계, 두 영역에서 당대 어마어마한 센세이션을 형성했던 이 걸작이 튀어나온데는 어찌 보면 두 사람이 본인들 앞에 놓인 관습적이지만 안정적일 수도 있는 길을 포기하는 과감한 선택에서 비롯된 부분이 있다. 

 

 

<별들의 고향>은 당대 의식있는 척 하던 작품들보다 훨씬 사실적으로 사람들이 사는 시공간을 포착하며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등장인물들이 있었다. 감독 스스로는 작품 제작과정을 즉흥성으로 설명했고 실제로 그렇게 반영된 것도 맞지만 장석준 촬영감독이 찍은 감각적인 구도의 영상미의 향연, 이를 파편화시켜 주인공의 과거를 불규칙하게 배치하는 편집은 우연과 즉흥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세련됐다. 그 결과물이 멜로 드라마냐는 반문이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주인공 경아의 수난과 죽음이 성녀의 희생이 아니라 꽤나 비정하게 그려진다는 점에서 결코 낭만적이거나 아름답지 않다. 멜로의 탈을 썼지만 실은 비정하고 잔인한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내포시킨 텍스트로 읽히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조간 신문 소설로 실을건데 뭔 제목이 그러냐며 강제로 바꾸는 바람에 <별들의 고향>이 됐지만, 작품의 원래 제목은 <별들의 무덤> 이었음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별들의 고향> OST는 싱어송라이터 이장희와 그의 음악에 함께 했던 스튜디오 록 밴드 동방의 빛을 이끌던 강근식, 두 사람이 소속되어 있던 오리엔트 프로덕션의 음반 제작자 구자영이 맡았다. 최인호 작가의 동생 최영호의 친구였던 이장희는 <별들의 고향> 영화화 소식을 듣자 음악을 자청했고 강근식도 빠질 수 없었다. 당시 한국영화음악은 본편을 본 작곡가가 녹음 스튜디오를 대관하고는, 그 시간 안에 영상과 대충 맞아 떨어지게 음악을 후딱 작곡해서 삽입하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별들의 고향> 은 이장희와 강근식이 스튜디오를 오랫동안 여유롭게 쓸 수 있었던 상황이었고, 이장호 감독 역시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예 음악이 없으면 살아나지 않는 시퀀스까지 만들 정도였고, 이로서 음악을 담당한 사람들 역시 긴 시간동안 여러 실험을 시도했다. 특히 이장희가 오직 소설만 읽고 바로 작업에 돌입한 점이 어찌보면 영화에 무조건 종속되지 않고 그 나름의 힘을 발휘하는 음악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는지도 모른다. 어째서인지 OST를 거론하면 항상 강근식과 이장희만 언급되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주제곡들을 제외한 스코어 같은 경우에는 모두 구자영이 썼다. 작품을 위해 그가 쓴 경음악 트랙들 (별들의 고향 A, B, C, D) 에서 동방의 빛 멤버들이 들려주는 사이키델릭한 록 음악 연주 역시 백미다. 

 

 

내가 가진 LP는 개봉 40주년을 맞은 2014년에 종로좌판뮤직 측에서 직접 나서서 복각한 판본이다. 심의에 걸려 바뀌었던 원래 앨범 초반 커버를 복각했으며 (개인적으로 초반 커버 디자인은 별로다. 메인 커버 사진이 덮치는 하용수와 비명지르는 안인숙...), 종로좌판뮤직 대표가 제작을 위해 OST 마스터 테이프까지 찾았지만 상태가 별로였는지 그가 소장한 미개봉 초반 LP에서 대부분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복각 음질은 탁월하다. 참고로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DP회원 아이린♥ 님이 쓰신 글에 따르면 종로좌판뮤직 대표가 소장하고 있었다는 미개봉 초반 LP는 <별들의 고향> 개봉 첫 날에 첫 회로 관람한 후 바로 레코드점에서 OST 앨범을 두 장을 사고 소장용 한 장을 여지껏 미개봉했던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두 장을 샀다지만 나 같으면 남은 미개봉도 뜯고 싶었을텐데 그걸 어떻게 40년동안 참으면서 놔두셨을까. 그저 경악과 감탄만 나올 뿐이다. 당시 22세였던 가수 윤시내가 부른 버전의 '나는 열아홉살이에요' 가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내가 2년 전에 이거 살 때는 500장 한정이랬는데 아직도 판매 중이다. 아무래도 그 500장이 다 소진되지 않았나보다. 이 얼마나 처참한 현실인가. 이 놈의 나라 정말...

  

 

p.s.) 개인적으로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는 장사익의 커버 버전을 더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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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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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2 23:47:14

사람들이 이 음반의 존재를 잘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소장가치도 없고 제작의 성의가 없는 음반들도 귀해지는 것 보면 말입니다 ^^;

저도 한장 가지고 있습니다 ㅎㅎ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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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3 00:00:13

코난장인 님도 갖고 계시는군요! 사실 이런 제품들이 꾸준히 팔려서 꾸준히 생산되는 그런게 참 좋은 세상 아닌가 생각하는데, 어째서인지 저는 빨리 완판돼서 품절되길 바라고 있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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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3 17:43:55

글을 읽고 저에게 추석 선물 했습니다~~

얼마전에 이장희 2LP도 구입했는데~~

1달에 LP 1장이었는데~~ 특별히~~~~

WR
2021-10-02 23:47:46

오. 제가 끄적인 글이 구매에 일조돼서 기분이 좋습니다. 이렇게 어딘가에 쓸모가 있는 글을 써야.. 좋게 듣고 계셨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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