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안노 히데아키’의 이 말 한마디와 함께 시작된 것이 바로 90년대 최고의 히트작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리뉴얼 작업이다. 최신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서 안노 히데아키는 아마 자신이 원했던 색감과 음향이 완벽하게 실현되지 못했던 에반게리온에 상당한 미련이 남아있었을 것이고 그것을 이번에 실현하게 된 것이라 하겠다.

기존에 발매된 에반게리온의 DVD(코드2)를 보면 일단 화면을 가득 덮고 있는 노이즈와 바랜 듯한 색감 그리고 사정없이 흔들리는 화면을 그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거기에 녹음상태 또한 좋지 못하여 소리가 명료하지 못하고 소위 말해 붕붕 뜨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렇게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DVD로 출시가 되었으니 실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그 명성이 걸맞지 않은 퀄리티를 자랑하는 최악의 DVD 중의 하나로 꼽히는 상황이었다.

또한, 제작사인 GAINAX가 자신들의 작품 마스터를 모두 LD(Laser Disc)로 보관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악한 환경을 가진 회사로 인식되고 있었으며 그동안 발매된 가이낙스 계열의 DVD의 퀄리티로 볼 때 이것은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는지 가이낙스는 에반게리온의 리뉴얼을 단행하게 되고 그것은 지난 2월 10일 발매된 일본판 New Type 3월호에서 그 결과물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게 되었다. 필자는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이 기대하고 있는 이 작품의 기존판과 현재 공개된 리뉴얼판의 영상과 음향을 나름대로 분석하여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다.

영상은 이렇게 바뀌었다

우선, 고화질 창출을 위한 첫 번째 단계로 필름을 비디오로 옮기는 작업 즉, 텔레시네를 새로 받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문제는 원본 네가 필름들이 한곳에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각지에 흩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안노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은 최우선적으로 필름 회수 작업에 매달렸고 이렇게 모아진 필름을 일본에서도 극히 일부 시설에서만 가능한 텔레시네 방식을 채용하여 뽑았다. 그 과정에서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와 부감독인 ‘마사유키’, ‘츠루마키 카즈야’가 직접 참여하여 컬러 체킹 및 1 커트씩 뜯어보며 당시 셀의 느낌에 가장 가까운 컬러를 재현하기 위해 힘썼다.

리뉴얼판

기존판

이번 리뉴얼 영상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색감이다. 안노 감독이 가장 바랬다고 하던 ‘선명한 붉은 색과 샤프한 검은 색’이 오프닝에 등장하는 에바 초호기의 실루엣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에바에서 붉은 색은 ‘피’를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리뉴얼판의 붉은 색은 말 그대로 핏빛에 가까운 섬뜩함을 가장 잘 보여준다.

리뉴얼판

기존판

또한, 가장 향상된 부분은 바로 암부 표현력이다. 기존판의 경우 각화의 서브타이블이 뜰 때 글자와 검은 바탕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떠 보이는 느낌이 강했으나 이번 리뉴얼판에서는 확실한 검은 바탕에 하얀 글자가 멋들어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다시 미사토와 신지가 네르프 본부에 들어가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붉은 조명 신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존판에서는 노이즈와 함께 배경의 샤프니스가 무너져 있었지만 리뉴얼판에서는 검은 색이 확실히 잡히면서 또렷한 영상을 제공한다.

리뉴얼판과 기존판의 비교 화면

그리고 필자를 가장 놀라게 한 부분은 바로 N2 지뢰의 폭발장면이다. 강한 폭발과 함께 번쩍거리는 효과가 최대한 살아야할 부분에서 기존판은 어두운 화면을 제공했으나 리뉴얼판에서는 확실한 번쩍임을 잘 보여주며 감독이 의도한 강렬한 투과광 효과를 잘 보여준다.

그 외의 장면에서도 제작 당시의 셀 효과를 최대한 되살린 색감을 보여줬으며 강렬한 원색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다. 거기에 셀 애니메이션의 작업 공정상 다소간의 화면 흔들림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정도를 넘어 멀미를 일으킬 소지가 있었던 에반게리온이 리뉴얼을 거치면서 흔들림 없는 안정된 영상을 보여줬다는 점은 높은 점수를 받을 만 했다.

다만, 아날로그 작품이었던 에반게리온이 디지털 색보정을 거치면서 셀 특유의 투명하고 깨끗한 느낌이 사라졌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런 이유로 밝은 장면이나 신지의 하얀색 교복이 크게 보이는 장면에서는 디지털 특유의 번들거림이 눈에 띄었다. 기존의 산뜻한 느낌은 사라졌지만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가져온 이번 에바 리뉴얼 작업은 그동안 불만이 많았던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크게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음향은 이렇게 바뀌었다

이번 에바 리뉴얼판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돌비 디지털 5.1채널의 채용에 있다. 가이낙스의 이 작업을 위해서 과거에 사용했던 ME(Music and Effect)의 오리지널 음원테이프를 확보하고 성우들의 음성 또한 과거의 그대로 사용하여 5.1 작업을 시작했다. 이것은 안노 감독의 오리지널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이었고 엔지니어들은 이 오리지널에 플러스 알파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안노 감독은 5.1 효과를 최대한 발휘하기 위하여 네르프 본부 중앙통제소 부분의 추가 더빙을 하게 되는데 기존판에 없었던 오퍼레이터들의 음성을 리어 스피커쪽에 추가로 넣게 된다. 이 추가된 오퍼레이터들 중에는 안노 감독이 직접 한 명을 맡아 자신의 목소리를 추가하기도 했다.

다른 추가녹음은 신지가 에바 초호기와 대면 후 사도의 공격으로 격납고 천장에 달려있던 조명기구들이 추락, 신지를 덮치려는 것을 에바 초호기가 오른손으로 이것을 막은 후에 나오는 격납고 스태프들의 목소리이다. 큰 소리로 나오지는 않지만 기존판에서 리츠코와 미사토의 목소리만 들렸던 것에 비해 리뉴얼판에서는 리어에서 흘러나오는 스태프들의 긴박한 목소리가 사실감을 증폭시켜준다.

이 추가더빙을 위해 안노 감독은 직접 A4용지 3장에 달하는 대본을 작성했으며 기존 성우 중에서는 ‘하야시바라 메구미’만이 네르프 메인 컴퓨터인 MAGI의 목소리를 연기하기 위해 참가했다.

이렇게 리뉴얼판은 단순한 5.1채널을 위한 추가 더빙만이 아니라 효과음에 있어서도 새로 믹싱을 하여 기존판의 밋밋한 효과음을 박진감 넘친 사운드로 재현했다. 예를 들면, 기존판에서는 신지가 에바 초호기와 대면 후 아버지인 이카리 겐도가 에바에 탈 것을 강요하자 자기는 할 수 없다고 맞서고 미사토와 리츠코가 다시 설득을 하지만 소용이 없자 에바 초호기의 시스템을 레이에 맞도록 전환토록 명령하는 부분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리뉴얼판에서는 에바 초호기의 눈이 효과음과 함께 꺼졌다가 천장에서 떨어지는 조명기구로부터 신지를 구한 후 다시 눈이 켜진다. 또, 1화 마지막 부분의 에바 초호기 발진신에서 새로 믹싱된 효과음과 음악은 보는 이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전해줄 것으로 생각된다.

리뉴얼판

기존판

■ 총평

에반게리온이 일본에서 기획된지 10년이 다 된 올해, 당시 스태프들의 노력과 집념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리뉴얼 DVD-BOX(코드2)의 발매가 6월 25일로 다가왔다. 기존판에 만족하고 계신 팬들도 많겠지만 감독이 의도한 영상을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리뉴얼판도 상당한 가치를 지닐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박스판에는 그동안 공개된 적이 없는 수많은 영상들이 특전 디스크에 수록되어 공개된다고 하니 그 기대 또한 크다. 또한, 오래된 작품이라도 지금의 발달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면 원본에 가까운 뛰어난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촉진제 역할을 했으면 한다.

더불어 기존판 코드3 발매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대원의 뉴타입DVD 측이 리뉴얼판의 발매에도 한번 눈을 돌려 국내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도 좋은 퀄리티의 DVD를 소장할 기회를 줬으면 한다.

본 글에 대한 저작권은 박창선님과 dvdprime.com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