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까마득한 기억이지만
다른 글에 댓글 쓰다가 생각난 까마득한 국딩시절 이야기입니다.
4학년 때였던가 국민교육헌장을 10번 써가는 방학숙제가 있었습니다. 외우기가 포함됐는지 확실하지 않은데 다 외웠었습니다. 이런 걸 왜 시키는 걸까 어린 마음에도 고민했었는데요. 박정희가 쓴 글이라고 하지만,
(잠시 검색 좀~)
국민교육헌장(國民敎育憲章, 영어: National Chart of Education)은 박종홍·안호상·이인기·유형진 등 기초위원 26명과 심사위원 48명이 초안을 작성하고 1968년 11월 26일 국회 만장일치의 동의에 따라 박정희 전 대한민국 대통령이 12월 5일 발표한, 당대 대한민국 교육의 지표를 담은 헌장이다. 이후 각 학교 교과서의 첫머리에 인쇄되는 등 새마을 운동과 함께 20여 년간 적극적으로 보급되었으나, 1994년에 사실상 폐기되었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5%AD%EB%AF%BC%EA%B5%90%EC%9C%A1%ED%97%8C%EC%9E%A5
역시 집단지성의 협업의 결과였네요. 취지와 제목부터 상명하달식 군사정권의 화약냄새가 진동하지만 당시 체제 내에서 국민학생이 외우라면 외워야죠.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던 직접적인 효과는 못외우고 50센티 자로 손바닥을 맞는 사태를 모면했다는 것이었고 나중에 체험한 효과는 국민교육헌장의 문장과 유사한 문장들, 특히 뻔한 신문기사 내 프로파간다나 FILLER를 이해, 간파하는 능력이 탑재됐다는 겁니다. 국교 졸업 후 조금 나중에 한자단어의 함축성과 함께 어려운 단어가 조사로 연결되면서 의미가 역동적으로 꿈틀거리는 문장이 되는 놀라운 발견을 자각하면서 그런 문장과의 첫 조우가 국민교육헌장이었음을 느꼈었고요.
당시 군사정권이 국민을 교육시켜야한다는 일념은 당초 국가기틀을 다지는 국민 전반의 이념포맷을 원했지만 좀 비약해서 생각한다면 많은 386(80년 당시)을 양성하게 된, 지금 생각하면 고마운, 실책에 가까운 악수였다고 생각하는 일인입니다.( 그냥 폐지 말고 새로운 헌장을 만들지 않은 이유가.....)
또 하나는 연구수업인데요. 당시 연구수업은 장학사가 교실 뒤에서 참관하고 학생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배우기 보다는 '전시'행정에 동원됐다는 게 실체인데 그 또한 학창시절에 통과했던 많은 시간들 중 하나였네요. 정말 그때 왜 그런 것을 하는지 도통 이해 못했지만 군대 가서 배수로작업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생각합니다. 많은 선생님들의 노고를 생각하면서요.(이는 당시 만연한 교실 폭력이나 촌지문화와는 별도입니다)
'우리나라의 명절'(확실하지 않음)이라는 책자를 2학년 때였나 배부받았었습니다. 따로 수업을 하지는 않고 받아서 집에서 많이 반복해서 읽었었는데요. 오늘 문득 그런 책을 나눠주는 것은 어떤 행정단계에서 발의되고 실행되었는가 상상하면서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든 좋은 취지와 좋은 결과를 견인하는 조직 속의 훌륭한 분들이 계시게 마련이겠죠. 요즘 좀 긍정적인 생각이 필요합니다.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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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사 이야기 들으니 폐지가져가기, 왁스짜서 걸래로 나무바닥 문지르다가 손에 까시박히기, 아침에 석탄 받아오기, 성금내기, 조그만 봉투에 대변 넣어 가져가기, 전염병 주사맞기, 알약 한꺼번에 넘기다 못넘기고 뱉어서 교실 바닥에서 찾아 다시 주워 먹어야 했던 기억 등등이 갑자기 떠오르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