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성숙한 부모와 그렇지 못한 부모
이건 제가 우연한 기회의 연속으로 인해, 아주 일찍부터 깨닫게 된 인생의 진리 중 하나입니다.
그것은 성숙한 부모란 자신의 아이가 넓은 의미에서 평범하다고 믿고, 또 그렇게 대접하는 부모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렴풋이 느낀 것은 고등학생 시절 학교와 독서실에서였습니다. 저하고 같은 특별활동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저와 그다지 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나쁘지도 않은 사이였습니다. 공부도 곧잘 하고 운동도 곧잘 했지만, 안타갑게도 그 특별활동에 있어서는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평범한 재능이었고, 어린 나이에도 노력으로 극복이 안되는 어떤 한계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작품이 왜 더 나은 재능을 가진 친구들에 비해 뒤떨어지는지, 남들은 왜 자신과 다르게 자기의 작품을 평가하는지에 대해 이해를 잘 못했습니다. 그리고 끊임 없이 자신의 성과가 아니라 자신의 말로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기를 바라서 나중에는 슬슬 짜증이 났습니다. 나중에 고3이 되었을 때, 저와 좀 친하게 지내는 다른 친구가 그 친구랑 같은 반이 되었는데, 진학지도 시즌에 그 친구의 부모가 학교에 와서 아주 진상을 부리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담임 선생님과 의견차이로 시간을 질질 끈 것도 모자라서, 마침 그 때 교무실에 용무가 있어 들렀다가 담임의 심부름을 하게 된 학생들에게까지 아주 안하무인 처럼 굴었다는 겁니다. 그 친구들은 문제의 학생과 부모를 위해 서류를 대신 학교 행정실에 제출해주도록 담임의 부탁을 받았는데, 하도 어이가 없어서 전달하러 가는 도중 일부러 바닥에 흘리고 한 두번 신발로 밟는 소심한 엿을 먹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결국 그 학생은 담임의 주장대로 대학을 하향지원했음에도 거기도 합격하지 못해서 재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또 하나는 사설 독서실에 다니다 총무실에 들린 어느 선배 여학생의 어머니였습니다. 그 부모는 한참 자랑 조로 자신의 딸이 공부를 잘하고 지난 번 낙방은 단순히 스트레스와 운이 없어서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최소한 이대는 붙을 것이고, SKY도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연히 독서실 총무는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비위를 잘 맞춰주었습니다. 그 때 저는 직감적으로 그 자랑에서 뭔가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뭔가 이유는 모르지만, '이번에도 잘 안되겠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전해 들은 바로는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고, 결국 서울에 있는 중위권 여대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좀 안타까웠습니다. 그 선배 누나는 몇 마디 말을 나눠보진 못했지만, 조용하고 착한 학생이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친척집을 방문했을 때, 그 친척의 어린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혼자 책을 보며 놀고 있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그 나이(약 만 3~4세) 수준에 맞는 책도 아닐 뿐 더러, 그 책에 대해 어린 아이가 보이는 집중력은 그냥 지켜만 봐도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온 몸에 열기가 이글이글 하는 느낌이었고 자세히 웅얼웅얼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책을 보면서 거의 외우다 시피 읽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걸 조금 지켜보다가 아이가 책읽기를 마치자 저는 방을 나와 그 부모에게 달려가, "쟤 미친거 아니냐고, 잠깐 지켜보니 그 긴 책을 그냥 외우는 수준으로 끝까지 읽고 마쳐버리는데요, 나중에 쟤는 뭐가 되도 되겠다고" 흥분해서 말했습니다. 돌아온 반응은 호들갑 떨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애들은 다들 저 정도는 하고 특별한거 아니다 지가 그냥 좋아하니까 잘 하는 것 '처럼' 보이는 것 뿐이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갑자기 우리 때랑 요즘 애들 수준이 이렇게 좌절감을 느낄 정도로 벌어진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그 또래의 애들이 어떻게 노는지 지켜볼 기회가 가끔 있었는데, 그렇게 사람을 거의 소름이 돋게 만드는 광경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친척 동생은 정말 부모의 평범한 사랑 속에서 컸고, 나중에 중학생 때부터 미국에 교환 학생을 다녀오더니, 대학은 어디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좌우간 최고 수준의 석박사 통합 단축과정에 있습니다. 참고로 이 친구는 그 흔한 과외 한 번 받아 본적이 없다고 합니다. (물론 그 부모가 고등학교 교과 과정정도는 가볍게 자기들이 봐줄 수준이 되긴 하지만 아마도 안봐줬을 것 같습니다. 본인들도 바쁘니까요.)
이 에피소드들은 전부 제가 성인이 되기 전에 경험한 것들입니다. 제가 이런 에피소드들을 겪으면서 느낀 것은, 보통 자기 입으로 자신이나 가족에 대해 자랑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말하는 것에 비해 실상이 허름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랑의 분위기에서 미묘한 긴장의 느낌이 있다는 것도요. 그것이 정말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알고도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무의식 차원에서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반면에 정말 탁월한 사람들은 태도가 대체로 태평하다는 것입니다. 그 친척 여동생은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 만날 때 마다 태평하고 어딘가 느슨한 느낌이 었었습니다. 주변머리 없는 오빠가 혼자 밥먹는 거 같으면 와서 말동무를 해주고, 자신의 연구분야에서 일어나는 최신 경향에 대해 정말 일반인도 너무 알기 쉽게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렇다고 내용 자체가 쉬운 내용도 아니었는데요.(예를 들면 면역 반응이 없었던 것으로 알았던 단세포 생물의 유사면역 반응 체계의 발견 같은 주제. 이 친구는 운동도 잘해서 여자치고 엄청난 근육량에 크로스핏을 오래 했습니다. 제가 처음 케틀벨을 할 때 16kg로 한다고 했더니 남자가 그게 뭐냐고 비웃에서 황급히 24kg로 증량하고 나중에 32kg가 된 다음 역으로 놀렸던 기억이 있습니다..ㅎㅎ) 여튼 이 친구나 자기 부모나 자기 분야에서 재능이 특출나고 (부모는 자기 분야에서 유명합니다. 교과서도 여뤄 권 집필해서 돈도 많이 벌었고요.) 성과도 적지 않지만 그것을 자기 입으로 이야기하는 법이 없다는 겁니다. 이 친척이 그렇게 실력있고 유명한 사람인지는 제 동생이 사귄 선배가 이 친척의 제자였기 때문에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성숙한 태도는 성숙한 부모의 교육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알던 분 중에 정말 성품이 비단결 같고 외모도 뛰어난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간혹 외모 칭찬이라도 받을라 치면 그렇게 어색하게 적극적으로 손사래를 칠 수가 없었습니다. 변명은 한결같이, 요즘 시대를 잘만나서 그렇지 어렸을 때는 이상하게 생겼다고 애들한테 놀림 많이 받았다고, 자기는 키만 크지 볼륨이 전혀 없다고 묻지도 않은 정보를 바보같이 노출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완전히 정확한 정보도 아니고, 그분은 늘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나중에 개인적으로 상당히 친해지고 난 다음에 이 분의 가정 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 분의 어머니는 제개는 물론이고, 자식인 그분에게도 납득이 안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세하게 이야기 하기는 그렇고, 몇몇 에피소드들만 들어도 정말 번번하고 무식하고 민폐 끼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유아적인 욕망의 화신이었습니다. 단 한가지 장점은 아이들에게 비정상적인 기대를 하고 압박을 하는 중에도 사랑은 넘쳤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그런 자신의 어머니를 어린 아이를 이해하는 어른 처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저도 모르게 먹먹한 느낌이 들었고, 충분히 인격적인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부모가 되면, 평범한 자식은 컴플렉스에 가득찬 어른이 되고, 성품과 자질을 타고난 아이들은 너무 일찍 어른이, 그것도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진 어른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그 집은 나중에 경제적으로 좀 풀렸지만, 그러기 전에 어머니가 사고치고 다닐 때, 이 분이 그걸 메꾸기 위해 이런 저런 일을 한 이야기를 들으면 혈압이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그런 제 반응을 불편해 했습니다.
오프에서나 온라인에서나 공익을 핑계로 지나치게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이나, 아니면 하는 이야기가 자기 자랑밖에 없는 사람, 뭔가 바닥이 뻔히 보이는데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 자신의 실수나 논쟁의 패배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저는 늘 이 에피소드들이 떠오릅니다.
혹시 저 사람의 성장 배경에는 어떤 비극들이 있었을까? 어떤 스트레스가 있었고 그것을 내면화했을까? 특히 사람을 학벌과 돈으로 자동적으로 치환해 평가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집에 서린 어두운 가풍을 상상하게 됩니다.
몰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겠죠. 그 와중에서도 위의 예처럼 타고난 자질로 그런 환경을 극복한 사람도 있을테고, 어디서 저런 자식이 태어났을까 싶은 별종들도 있을 겁니다. 한가지 확실한 점은, 그 사람이 허세를 부리고 있을 때, 아무리 냉정하고 침착한 척을 해도, 열 일곱 먹은 아이들도 그 불안감을 느낀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대꾸를 안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엮이기가 싫어서일 수도 있고, 혹은 불쌍해서, 훅은 이런 일에 끼어드는 것 자체가 너무 민망해서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런 불만들은 곰팡이와 비슷해서, 한 두 명이 그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하면,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자기만 모르는 척한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자신의 가족이나 자신이 그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면,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고, 대접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상상을 상상조차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즉 "내가 여기서는 제일 잘난 놈이지", "내가 여기서 눈 속임을 하고 아는 척을 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겠지"하는 오만한 생각이 들면, 이미 그 사람은 망신을 당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정말 민망한 일입니다. 나이가 중년이 되어서도 타인으로 하여금 자기 부모를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든 간에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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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삶은 가진자들만이 누를 수 있습니다.
내뜻대로 가진것이 없을 수는 있지만 마음만은 가질수 있는데
다른 것 다 가지고도 마음을 못 가진 사람들이 많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