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미안해할 줄 알아야 사람이다.
측은지심은 평소에도 많이 생각하고 많이 들어서 잘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요.
어떤 측면에서 경사진 곳의 위에서 느끼는 것이 측은지심이면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인과, 책임 등을 어떻게 봐야하는가 생각하다가
서른, 아홉 드라마의 8회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대립하고 아버지의 사과가 없는 상태에서는 부자관계가 틀어지게 되는 상황이 나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권위적인 아버지의 곤혹스런 표정이 클로즈업되면서 넘어갔는데요.
저는 드라마를 멈추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가진 것 많고 자식을 성공적으로 키워냈어도 스스로가 미안하다고 인정하지 못하면 아버지로 인정 못 받는 처지가 되었구나. 사람이 되려면 미안하다고 하면 그만인데 그것은 성공과 권위 자체가 그 자신이라 동일 시하는 사람인 경우 그 쉬운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겠구나.
사람다움의 기본인 수오지심이 생각났습니다.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 수오지심이라면
미안해하는 것은 수오지심에서 출발해야 하고
자신의 과오에 대한 인식을 하는 순간
그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하고
타인에게도 인정했음을 인지시켜야 하는(사과의 행동)
사람되는 과정이라는 것은
모두가 의롭게 선하게 되돌아가는 과정임을요.
미안해할 줄 모르고 사과를 거부하는 것이
불의한 것들을 지키기 위함이라면
사람이 되기가 어려운 것이지요.
사람 되기가 쉬운 것은 착한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넓은 길이고
악한 사람들에게는 절벽 같이 보이겠지요.
그러니 절대 사과 같은 것은
하지 않겠지요. 모든 것을 잃는다는 관점일테니.
누가 가르쳐서 아는 것이 아니기에 본성 차원의 개념이라 하고
강요해서 배울 것도 아니기에
그런 것을 가지지 못한 마음이 가난한 (짐승 같은 것이겠죠) 사람은
역시 피해야겠습니다.
맹자의 말 대로라면 사단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니까요.
스스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에게 말해줄 필요가 있을까요?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짐승의 논리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명이라면요.
드라마의 무서움은 불과 몇 초를 봤을 뿐인데 저 짐승의 본을 따르면 안되겠구나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단(四端) 유학(儒學)에서 인간의 본성(이성, 덕)을 가리키는 말이다. 맹자는 인간이 본래부터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성선설을 내세우며 이것을 사단(선을 싹틔우는 4개의 단서, 실마리)인 측은지심(惻隱之心) · 수오지심(羞惡之心) · 사양지심(辭讓之心) ·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나누었다.
사단은 각각 인(仁) · 의(義) · 예(禮) · 지(智)의 사덕으로 발전한다.
측은지심(惻隱之心) :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을 뜻한다.
수오지심(羞惡之心) :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 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사양지심(辭讓之心) : 겸손하여 남에게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을 뜻한다.
시비지심(是非之心) :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을 뜻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B%8B%A8_(%EC%B2%A0%ED%95%99)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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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번달을 계기로 '측은지심'은 버렸습니다. 아마 디피의 많은 분들이 그랬을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