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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기시다바리 사년지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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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3-03-23 11:12:13


기시다바리 게이오대학 매국노육성

명성황후가 시해되던 해, 고종은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조선에 대학을 만들려고 했는데 일본이 이걸 알고 못하게 만듬.

그때 일본이 조선 청년 300명을 일본 게이오대학에 유학 보내서 첫 번째 친일파로 육성함.

한일회담
윤석열이 그 게이오대에서 강연하고 한국 대학생을 게이오대로 유학 보낸다고 함


님의 서명
십리 호수에 서리는 하늘을 덮고
푸른 귀밑 머리에는 젊은 날의 근심이 어리네
외로운 달은 서로를 지키기를 원하니
원앙은 부러우나 신선은 부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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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3-03-23 11:04:53

하ㅡㅡ
말을 말자ㅡ
속이 탄다 아무일도 하기 싫다

Updated at 2023-03-23 11:11:26

닛뽕시다바리양성지대계

Updated at 2023-03-23 12:16:19

 

본국을 숭상하는 토왜가 매국 왜놈짓거리 하려고 게이오게이가 되는게 당연지사! 

2023-03-23 11:33:08

일본 간첩이 확실하네요
간첩죄로 엄히 다스려야죠

2023-03-23 12:43:08

일본은 장학금 뽕 뽑네요.

WR
Updated at 2023-03-23 12:47:46

오카쿠라 텐신을 기시다바리가 알리는 없지만 써준대로 읽는 넘이 더 문제겠죠.

2023-03-23 13:56:37

요즘 매국친일 선출직 공무원과 게시판 바퀴벌레들 때문에 밥맛없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지만

후쿠자와 유키치 관련하여, 그래도 앞 뒤 컨텍스트는 아셨으면 해서 간만에 로그인합니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저런 이야기를 한 것은 사실이고, 남의 나라를 참 수준낮게 표현한 오지랍도 맞지만

그 배경에는 당시 조선 갑신정변 실패 후, 서재필/박영효/김옥균 등 개화파들에 대한 혹독한 처벌과

그 가족들까지도 처형/투옥시킨 비인간적인 연좌제에 대한 분노가 있습니다.  

(이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사실상 멘토처럼 지원했던 게 후쿠자와 유키치였습니다.)

실제로 서재필의 예를 들면, 역적으로 몰리면서 부모·형·아내는 자살하고, 동생은 참형되었으며, 

아들은 굶어 죽는 등 가문이 완전히 박살났으니까요.  


아시겠지만 서재필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했는데, 

이를 적극 지원한 인사가 또 후쿠자와 유키치입니다.

혹 “일본의 지원을 받았다니, 서재필도 친일파였어?”라고 무작정 생각하실 분도 있으실까봐 첨언하자면…

이 모든 사건들은 1880년대 말에 있었던 일이고, 후쿠자와 유키치는 1901년 사망합니다. 

한일합병은 1910년의 일이구요. 

서재필은 이후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전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자기 지인들에 대한 조선의 비인간적인 처사에 분노하여 한 말이라고는 하나…. 

말이 몽키재팬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과격했고 오지랍이었죠. 

덕분에 실제로 지금까지 저렇게 악용(?)되고 있기도 하고요. 

그의 탈아이론 역시, 의도와는 다르게 일본을 제국주의로 치닫게 하여 

결국 패망으로 이끌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습니다만.

최소한 저 표현이, 일베류나 혐한류의 무지성 비판은 아니었다-정도는 알아 주셨으면 해서 적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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