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한 명 한 명이 플랫폼인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410선거에 즈음해 한국에는 두 가지 기적 같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조국혁신당의 정치계 전면 부상이고 또 하나는 다모앙이라는 사이트의 전격적인 탄생입니다.
전자는 그리 놀랄 것 없는, 개연성 꽉 찬 스트라이크 성 현상이었습니다. 더 말할 것 없는 가슴 벅찬 일이었습니다.
저는 후자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자 합니다. 클리앙 사이트는 정치게시판이 분리되지 않은 '모공'에서 메모와 공감 시스템으로 가짜뉴스나 선동이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 시금석 같은 사이트였습니다. 제 주관적 판단이지만 아마 이에 동의하시는 많은 분이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운영자와 회원 간의 불화 끝에 회원들이 게시글을 지우고 탈퇴하는 사태가 일어났고 도처로 흩어진 회원들이 신생 커뮤니티에 모여 순식간에 1만에서 2만으로, 2만에서 3만으로 회원이 운집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실험실에서 재현하기 힘든 일입니다. 클리앙 사이트에서 있었던 사건의 진위나 시비는 이 글에서 따질 가치가 없기 때문에 넘어갑니다.
이전에 피난사이트 생성은 많이 목격했습니다. 오유나 스르륵 사례가 있었고 레딧의 모공 피난처는 꽤 오래됐습니다. 그러나 이번 다모앙 현상은 독보적이며 시대 반영적인 역사적 사건이며 그 배경을 잘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게시판이 글로 이루어진 세상이면 게시판 운영자가 설정한 운영규칙은 게시판이라는 우주의 거스를 수 없는 이치입니다. 운영자의 의지에 따라 많은 사이트의 성격이 형성되고 형성된 이미지로 새로운 회원이 모이고 게시글이 쌓여 그 이미지를 확대합니다.
저는 한 커뮤니티에서 조용한 입틀막을 경험했습니다. 아닐 수도 있기에 어디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밝히지 않을 것이고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우주에 거스르기도 싫었고 세상(게시판)에 호소하기도 싫었습니다. 조용히 적응했습니다. 예전처럼 불타오르기에는 나이를 먹었습니다. 와중에 지우고 떠나는 사람도 있고 글 놔두고 조용히 탈퇴한 분들도 봤습니다.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다모앙이라는 경천동지를 실시간으로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회원이 운영자를 파면하다니!
회원 하나하나가 잠재적 운영자일 수 있었던 것도 있지만 급조된 커뮤니티의 운영자를 도운 집단지성의 민첩함은 그들의 적극성 말고는 이해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은 한국 인터넷 게시판 역사의 큰 전환점입니다. 운영자와 회원이 직접 소통하고 정의로운 담론과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쉼터로의 역할이 건강하게 공존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거짓말 같은 현장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또한 같은 과정이 언제든 가능한 일이라고 전망할 수 있는 사례가 되었고 그 사례는 세상과 우주에 많은 용기를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론장의 내적 식민지화가 잠식해 온 지난 인터넷 게시판 역사의 흐름 속에서 회원이 주체가 되어 변질된 공론장을 버리고 새로운 공론장을 건설한 사건이라고 규정합니다. 하버마스의 말을 월말 김어준 박구용 교수에게서 얻어듣고 무릎을 쳤던 게 고작 1년도 되지 않았고 그 걱정으로 노파심을 키웠었는데 깨어있는 앙님들이 그 어려운 말의 음습한 의도와 저열한 잠식의 결과를 통쾌하게 걷어찼습니다.
특정 사이트 홍보나 찬양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닙니다. 이 글을 다모앙 자게/클리앙 모공/디피 시정에 동시 게시합니다. 앞으로 어느 게시판에 글을 계속 게시할 것인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게시판 테라포밍하고 깃발 꽂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언제든지 건강한 공론장은 만들어질 수 있고 불공정한 우주는 사라질 것입니다. 지금 이 글 읽고 있는 한 분 한 분 모두 1인 플랫폼이고 게시판이며 세상의 주축입니다.
감사합니다.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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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봤더니 게시판메뉴가 오른 쪽에 있는 아직 광고 안 붙은 DP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