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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완)클라라와 태양, 이시구로가 착안한 특이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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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4-04-24 01:31:59

13.

문장해석은 따로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내용이 아니고 잡다하긴 하지만 스포를 우려한다면 건너뛰시기 바랍니다.

 

the AFs outside did all they could to take any route other than one that would bring them past our store, because the last thing they wanted was for their children to see us and come to the window.

모시는 주인이 신모델 에이에프에 대한 관심 생길 것을 방지하기 위해 회피기동하는 것을 설명한 문장인데 에이에프의 자유의지가 인간의 수준과 비슷한 것에 독자가 익숙해지기 시작한 문장입니다.

 

I nodded, putting on a sad face, though I was careful to show I wasn’t serious, and that I hadn’t been upset.

기다렸냐는 조시의 질문에 감정을 담은 표정을 지을 수 있고 그 수위를 조절하여 상대를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세밀한 감정조절 능력이 있는 것을 시사합니다.

 

people telling you how perfect things will be and they’re not being straight.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로봇에게 이야기해주고 로봇은 그 어려운 개념을 납득합니다.

 

at that moment containing aspects of Manager in the act of turning towards us.

매장 매니저를 관찰하면서 얼굴표정을 세밀하게 인식하고 감정까지 판단해내는 것을 묘사한 부분입니다. 전후 내용에서 매니저의 눈과 입이 다른 감정을 동시에 띠고 있는 것을 알아챕니다. 이런 묘사들이 거듭되면서 에이에프의 식별기능이 인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느끼게 되고 나중에는 기계적인 절차를 생략하고 에이에프의 생각을 나열하게 됩니다. 독자는 인간의식을 탐구하는 듯한 일종의 최면상태 비슷하게 되죠.

 

14.

(램프의 불을 켜자), brightly illuminating the entire corner, but creating new shadows.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잠시 멈추고 숨을 내쉬었습니다. 빛과 명암을 한 문장에 짧지만 동적으로 썼습니다, 단순한데 아름답고 미풍이 얼굴에 부딪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떤 지식을 더 알아가면 더 나아지는 것일까요? 많이 안다면, 많이 알았다고 의식하게 된다면, 상대적으로 지식이 더 많거나 높다고 생각한다면 뭐가 달라질까요? 마음 속 서가에 불이 켜져 밝아졌다면 서가 옆의 그림자는 더 어두워지겠죠. 지식의 총합이 그 사람이 아니며 그 사람은 생활과 관계의 결합으로 완성되며 나이 들면 앉는 자세 하나에 아쉬워하는 구차한 시간을 감내하게 되는데요.

 

불을 켜면 어딘가 어두워질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저는 이책에서 이 문장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15.

기적은 동시성, 연관성을 느낀 인간의 인식 속에만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기다리거나 목격했거나 인정했던 기적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 기억을 간직한 인간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기적은 있습니다. 인간이 없어도 기적은 매일 일어납니다.  우주 자체가, 그것은 바라보는 내가, 지금이 기적입니다. 심해나 오지에서 발견한 희귀한 동식물에 대한 소식을 보더라도 놀라지 않는 것은 그런 기적을 체험하고 있으면서 무뎌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마이클 베이의 영화에서 폭발 장면이 계속되는 것을 보며 무감각해지듯이요.

 

해변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는 것도 산꼭대기에 서서 바람을 정면으로 맞서는 것도 책을 읽다가 문득 양볼에 미풍이 스치는 것을 느끼는 것도 모두가 기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클라라와 태양의 마지막 장면은 클라라의 생각과 독자의 생각이 괴리가 있는데 이시구로는 독자에게 클라라의 마음이 되어보라고, 그렇게 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의 말을 들어보라고 이 책을 쓴 듯합니다.

 

‘I’m sure that’s right, Klara. It’s what I always want to hear when I come across my AFs again. That you’re glad about how it all went. That you have no regrets.

이시구로가 깨달았고 클라라의 마음을 확인하는 등장인물을 통해 한 말이지만 클라라의 여정을 지켜본 독자는 이 말에 이입하게 됩니다. 후회없이 삽시다.

 

감사합니다.

님의 서명
인생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하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시를 써야 하고, 고통 받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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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4-04-24 06:59:47

연재를 완성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에 남겨주신 말씀으로 오래된 경구 carpe diem을 곱씹어보게 되네요^^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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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4-04-24 07:10:42

알려진 것과 달리 반종교적 분석도 가능한데요, 그런 연유로 굉장히 종교적이라고 느끼면서도 균형을 유지했다는 것, 이시구로의 탁월한 능력 같습니다.
전혀 다른 배경과 접근이지만 엔도 슈사쿠의 사일런스도 많이 연상됐습니다.
부산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백년의 고독(마르께스)을 읽으려다가 금각사(Ivan Morris)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2
Updated at 2024-04-24 08:41:42

설국의 번역본 snow country를 읽었는데 영 원작과는 뉘앙스나 에스쁘리가 달라지더군요, 웃긴 생각이긴 하지만 그래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상을 받았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ㅎㅎ 미시마 유키오의 원작이 워낙 일본어 특유의 유미한 문장들이라서 한국어 번역도 100% 만족스럽지는 않았는데 영어 번역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선입견입니다만 지드도 그랬듯이 이성애자와는 다른 시각, 감각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좌절이 동성애 예술가들에게는 있지 않나 싶습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치기어린 우국이야 오스카 와일드처럼 삶이 예술을 모방하기 바랬던 해프닝 정도로 이해하려 합니다^^;; 창작자들에게 과잉된 자아는 피해갈 수 없는 것일 테니까요 (얼치기 politician이나 데마고그도 그런 성향을 보이기는 하죠 ㅎㅎ 속칭 중2병^^) 재일작가 류미리가 그녀의 책 자살에서 아마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자살했고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을 너무 혐오해서 자살했다고요. 꼴통 우파로 퍼포먼스를 했던 미시마 유키오와 반대로 다자이 오사무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진성 사회주의자가 되지 못하는 자신을 두고 괴로워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각각 다른 여자와 세번의 情死 시도로 결국 마지막엔 성공하죠, 다자이 오사무도 자신의 인생이 예술이 되길 바라지 않았을까 싶네요.

말이 길어졌네요^^;; 부디 유미주의의 관점에서 재밌게 너그럽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少年時代から、人に理解されぬということが唯一の矜《ほこ》りになっており、ものごとを理解させようとする表現の衝動に見舞われなかったのは、前にも述べたとおりだ。私は何ら斟《しん》酌《しゃく》なく自分を明晰《めいせき》たらしめようとしていたが、それが自己を理解したいという衝動から来ていたかどうか疑わしい。そういう衝動は人間の本性に従って、おのずから他人との間にかける橋ともなるからだ。


소년시절부터, 나를 이해시킬 수 없다는 것이 유일한 자랑이 되었고, 모든 것을 이해시키려고 하는 표현의 충동이 닥쳐오지 않았던 것은, 전에도 설명한 바 있다. 나는 어떠한 거리낌 없이 자신을 명석하게 하려고 했으나, 그것이 자신을 이해하고 싶다라는 충동에서 온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이러한 충동은 인간의 본성에 따라서, 그것으로부터 타인과의 사이를 연결해주는 다리(橋)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WR
1
2024-04-24 09:01:57

스테판 츠바이크의 동반자살이 연상되네요. 다자이 오사무도 살펴보겠습니다. 편견없이, 유미적관점으로요^^

금각사 영역은 매우 훌륭합니다. 더 읽고 말씀드리겠습니다.

1
2024-04-24 11:16:21

한국계 미국 작가인 이창래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두 사람 모두 영어가 mother tongue은 아니었을텐데, 그래도 일찍 정착한 이시구로가 좀 나은 문장력이지 않을까 싶네요. 예전에 이창래 작품을 읽으면서 어휘력은 탁월하지만, composition은 본토 작가에 비해 s급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WR
1
Updated at 2024-04-24 13:45:42

완독한 것은 클라라와 태양 밖에 없으니 비교할 주제가 못 됩니다만, 남아 있는 나날이나 네버렛미고 등 영화화될 정도이고 노벨상을 탈 정도니 내용 또한 거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블라인드테스트라 치고 클라라와 태양만 본다면 지난 글에 썻듯 간결하지만 함축되고 여백과 행간을 이용한 서사가 노련한 수준입니다. 하이쿠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었고요.

 

보르헤스(영역이지만)식의 희귀한 단어는 거의 없는데 그게 추구하는 스타일일 수도 있고 로봇의 사고를 표현하는데 문장에 기교를 건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설정한계까지 생각하고 보면 이렇게 써낸 것도 이시구로의 능력으로 봐야 합니다.

 

이창래는 딱 말씀하신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안 읽었기 때문에 사진 올리신 두 권의 첫 페이지를 읽었는데(이전에 디피에 회자될 때 했던 일을 다시 했습니다^^) 두번째 인상임에도 역시 끌리지 않습니다. 작품 전체 평이야 읽어봐야 하는 것이지만 일단, 끌리지 않는 문장입니다. 산만하고 주절거립니다. 의도된 문체일 수도 있겠고, 제 짧은 편견일 수도 있지만 시간은 없고 인생은 짧은데 끌리는 책부터 봐야지요.

 

(Aloft)

FROM UP HERE, a half mile above the Earth, everything looks perfect to me.

I am in my nifty little Skyhawk, banking her back into the sun, having nearly completed my usual fair-weather loop. 

 

(A Gesture Life)

PEOPLE KNOW ME HERE. It wasn’t always so. But living thirty-odd years in the same place begins to show on a man. In the course of such time, without even realizing it, one takes 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locality, the color and stamp of the prevailing dress and gait and even speech—those gentle bells of the sidewalk passersby, their How are yous and Good days and Hellos.

 

윗 댓글에 보시면 백년의 고독 읽으려다 금각사로 빠진 것을 아시겠지요?

백년의 고독(스페인어에서 영역)은 이름 빼고 영역이 복잡하진 않아도 로봇의식흐름보다는 문학적 문체이고 보르헤스 보다는 쉬워 보입니다. 그래도 몇 페이지 차이나지 않는 금각사를 먼저 읽기로 한 것은 잠시 경중을 재 보겠다는 것이 빨려 들어가서입니다.

 

일단 금각사의 영역이 번역이 아닌 것 같이 매끄럽고 속도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원작자 미시마 유키오의 문재가 정말 뛰어남을 알겠습니다. 더 이상은 따로 리뷰할 때를 위해 아끼겠습니다^^

 

이시구로=마르께스=유키오..... 창래 리???

 

우열을 따지기보다 각기 문체는 다르지만 '죽기 전에 읽어야 겠다 또는 확 빨려들어가서' 수준의 영어문장과 두 번이나 외부 자극으로 살펴 보고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면 작가에게 미안하지만 제게는 B급이죠.

 

노벨상에 빛나는 이시구로도 제 편견에 10년이나 늦어 최근 작품 먼저 읽고 내 수준이 변한 것을 알았으니 미래에 창래 리를 괄목상대할 수도 있어 책은 구해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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