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VER HEALTH CHECK: OK
1
못웃기면맞는다
자동
ID/PW 찾기 회원가입

[영화리뷰]  잉글리쉬 페이션트 재개봉(스포)

 
8
  1170
Updated at 2016-12-11 06:54:17

 

겸사겸사 20주년 기념이 된 재개봉 포스터

 

 

1997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싹쓸어갔던 [잉글리쉬 페이션트]. 작품상과 감독상도 받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안소니 밍겔라 감독과 제작을 맡은 사울 제인츠.  

 

1

재개봉 영화는 해당 작품에 얽힌 추억을 소환시킨다. 개봉작 위주로 영화를 관람하다가 틈틈히 [잉글리쉬 페이션트]같은 재개봉작을 극장에서 접하는것도 좋은것같다. 신경쓰면서 보게 되는 최신영화들과 달리 이미 한번 이상 본 옛날영화를 개봉관에서 보게 될 때는 감상의 여유와 시간의 힘으로 아련해져 추억에 젖게 되는것이다. 가끔씩 옛날영화를 통해 과거에 얽매혀 퇴행된 정서를 갖는것도 기분전환용으로 괜찮은 체험이다. 최신영화 위주로 보는것이 물릴 때쯤에 수많은 재개봉작들 중 취사선택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고 있다. 재개봉작 유행의 흐름이 장기화 되다보니 이제는 지겨운건 전혀 없고 자연스러운 개봉작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외국영화 보면 한참 지난 옛날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최근엔 [라라랜드]에서 남녀주인공이 극장에서 보는 영화가 [이유없는 반항]이다. 재개봉 문화가 거의 사라졌던 2000년대 무렵엔 이게 부러웠는데 요즘엔 어딜 가나 재개봉 영화를 개봉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서 반갑다.    

 

동시대적으로 경험했던 [잉글리쉬 페이션트]도 벌써 20년 세월을 삼킨 추억의 영화가 되어 재개봉작으로 소개되다니, 기분 참 묘하다. 그만큼 나도 나이를 먹고 있다는 증거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예전부터 좋아하던 작품이라 개봉관에서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원체 [잉글리쉬 페이션트]같은 데이비드 린 풍의 상영시간 긴 웅장한 멜로 서사극을 좋아한다.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개봉했을 당시에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비교를 많이 당했는데 [아웃 오브 아프리카]도 내 인생의 작품이어서 비슷한 정서를 풍기는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처음부터 완벽하게 내 취향에 들이맞았다.

 

메가박스 단독으로 재개봉 소식이 들리면서 하나 둘씩 이 작품과 관련된 단편적인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런게 바로 동시대적으로 감성을 공유했던 재개봉작 관람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이다. [잉글리쉬 페이션트]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건 지금도 생생한데,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 부문이나 석권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들었을 때이다. 아카데미에서 12개 부문이나 후보에 올라 작품상 포함하여 9개 부문이나 수상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하지 않고 영화계 명성도 변변찮았던 감독의 작품이 9개 부문이나 쓸어갔다고 하길래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가, 궁금했다.

 

89년 세월을 먹은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에서 [잉글리쉬 페이션트]처럼 9개 부문이나 수상한 작품은 많지 않다. 그래서 그 당시에도 다수 트로피 석권으로 화제를 모았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아카데미 9개 부문 수상결과는 당시 198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후보에 오른 전 부문을 수상하며 이례적인 기록을 남겼던 [마지막 황제]이후 9년만에 일어난 다수 부문 수이었다. 이 작품이 개봉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했고 서서히 입소문을 타면서 장기상영의 열풍이 불었기 때문에 아카데미에서의 성공적인 수상결과가 인상에 남았던것같다. 주연인지 조연인지 보는 관점에 따라 헷갈렸던 줄리엣 비노쉬는 이 작품의 성공으로 헐리우드에서도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고 랄프 파인즈나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도 이후의 경력에서 부침이 좀 있긴 했지만 영화스타로서는 확실한 인지도를 쌓게 됐고 말이다.    

 

2

개봉 당시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EPF'(English Patient Fever)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전세계적으로 열광을 받았다. 해외에서나 국내에서나 이 작품이 풍기고 있는 고전적인 멜로드라마 정서의 비극적 무게감이 헐리우드 스튜디오 시절에 제작됐던 대규모의 웅장한 멜로드라마 시대극의 향수를 상기시키며 보는 이를 아련하게 만들어 버리는 효과가 있었다. 이는 지금까지도 이 작품에서 유효하게 작용되는 크나큰 경쟁력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1996년 개봉당시(국내개봉은 1997년 3월 15일)에도 이런 진중한 멜로드라마는 보기가 쉽지 않았다. 상영시간은 2시간 30분 이상을 훌쩍 넘기고 정교하게 잡혀지는 배경과 소품과 의상 등의 꼼꼼한 묘사, 제작비의 규모를 실감시키는 웅대한 깊이, 우아한 분위기, 정통 멜로를 표방한 절절하고 정열적인 진지한 시대극 말이다.

 

요즘엔 왜 [잉글리쉬 페이션트]나 [아웃 오브 아프리카]같은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건지 아쉽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나왔던 무렵에도 같은 얘기가 나왔었다. 그 이유로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사랑 받을 수 있었던것이다. 당시에도 우여곡절 끝에 명 제작자인 사울 제인츠의 도움으로 창고 속에서 어렵사리 끄집어 낼 수 있었던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기적적인 성공과 열광적인 반응에 업계가 내린 분석은 대체로 사람들이 이런 무게감 강한 멜로드라마 시대극에 오랫동안 굶주려 있다가 그에 대한 반사작용이 [잉글리쉬 페이션트]에 쏠렸다는 분석이었다. 맞는 말이다. 아카데미 후광 덕분이기도 하지만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단관시절의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으며 312,882명의 서울관객수를 동원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1997년 국내 개봉 당시 현대그룹 계열의 금강기획이 본격적으로 영화배급업에 뛰어들면서 선택한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짭짤한 성공을 거두었다.     

   

근데 그 때도 그렇고 요즘도 [잉글리쉬 페이션트]류의 멜로물은 흔치 않다. 요즘 관객들도 이 때 관객들처럼 이런 멜로물에 굶주려 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같은 문예물 분위기를 거대하게 풍겨내는 작품은 만들기도 쉽지 않지만 잘 만들기도 어렵다. 잘 만들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잘 만들어 놓으면 수십년간 명작 대접을 받으며 고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많은 이들을 매료시키는 서사적 힘이 강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는 기획되고 있다. 다만 쉬원찮게 만들어진 작품들 투성이라 문제인것이다. 그런 작품들이 사람들 기억에서 쉽게 잊혀지고 있다 보니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이 방면의 마지막 작품처럼 느껴지는것같다. 이 방면의 걸작으로는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거의 마지막으로 나온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요즘에도 이런 멜로물은 꾸준히 시도되고 있다. 최근에는 니콜 키드만 주연의 [퀸 오브 데저트]가 [잉글리쉬 페이션트]류의 분위기를 내려고 애를 썼다가 말아 먹었다. 데이비드 린 풍의 고전적인 멜로서사극을 시도했다가 망가진 기획물이 몇몇 떠오른다. 킴 베이싱어 주연의 [꿈꾸는 아프리카]도 있었고 안소니 밍겔라도 [콜드 마운틴]으로 제2의 [잉글리쉬 페이션트]를 시도했다가 기대만 못 하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상당히 짜증나는 남자주인공 때문에 피로감을 불러 일으켰던 [러브 오브 시베리아]도 생각난다. 쓸데없이 시간만 긴 러시아 영화였다.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나왔던 해에 아카데미를 노리고 제작됐던 산드라 블록 주연의 실패작인 [러브 앤 워]도 기억난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이후로 기준을 잡는다면 이 방면에서 [잉글리쉬 페이션트]만큼의 완성도와 여운을 남겼던 수작으로는 [어톤먼트]정도가 근접한 수준으로 각색됐던것같다.

 

3

가브리엘 야레의 아름다운 선율, 탄성이 나오는 사막 풍경, 근사한 촬영과 의상, 하나같이 좋기만 한 주연배우들에 대한 호감도 때문에 이번 재개봉 소식이 반가웠다. 메가박스 단독 재개봉이라서 더 기대가 됐다. 적어도 메가박스 코엑스점의 프리미엄관에서 2주 상영 정도는 보장 받을 수 있을것같아서이다. 현재 개봉 2주차인데 관객은 1만명도 안 들었지만 멀티플랙스 단독 상영작다운 자존심은 지키느라고 상영도 유지되고 있고 코엑스점에선 프리미엄관에서 여전히 틀어지고 있다. 코엑스점의 초소형관인 스크린관으로 밀리기 전에 봐야한다는 강박증으로 매일매일 시간표를 조율하다가 금요일 저녁에 겨우 보고 나왔다. 못 보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었다. 마침 메가박스 '천원의 행복' 행사로 구매한 예매권이 있어서 싼값에 잘 봤다.

 

1997년 국내개봉 때는 내가 미성년자여서 극장에서 볼 수도 없었지만 극장에서 볼 생각도 안 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개봉관을 찾아 다니지도 않았다. 학생이라 돈도 없었지만 동네 상영관 수준이 형편없어서 인접접근성이 너무 떨어졌다. 극장 많은 서울에 살았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제대로 교통 뚫리기 전인 수도권 지역에 거주했기 때문에 영화관에서 영화보기가 힘든 환경이었다. 그래서 정말로 봐야할 영화만 극장에서 간신히 챙겨 보고 대게 2차 시장에서 관람욕을 해결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나중에 비디오로 빌려본 뒤 감동 받아서 좋아하게 된 작품이었다. 근데 당시 우리동네 재개봉관에선 미성년자도 잘 들여보내줘서 보려고 마음만 먹었으면 극장에서 볼 수 있었을것이다. 비디오 대여 때도 별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덕분에 지금은 볼 수 없는 비틀즈 음악 들어간 [비트]의 원본도 봤고 [꽃잎]이나 [마누라 죽이기]같은 청소년 관람불가의 한국영화도 문제없이 극장에서 관람했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dvd로도 두번 구매한 작품이다. 처음엔 다우리에서 출시한 1장짜리 염가 타이틀을 구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절판됐던 2디스크 컬렉터스 에디션 버전의 디지팩이 출시돼서 그걸로 재구매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건 구하기 힘든 디지팩 버전은 아니고 보급판으로 나온 킵케이스 버전이다. 2디스크 킵케이스 버전 구하고 난 뒤 1디스크 버전은 팔아버렸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컬렉터스 에디션은 dvd시절에 나온 잘 만든 타이틀 중 하나이다. 미라맥스 블루레이 콤보팩도 dvd의 C.E버전을 그대로 옮긴것이다. 안소니 밍겔라의 오디오 코멘터리가 들을만하다.

 

개봉 당시엔 안소니 밍겔라의 영화계 입지가 약해서 감독의 영화라기 보다는 제작자의 영화로 인정 받은 편이었지만 이 작품의 성공 이후 안소니 밍겔라의 재능이 제대로 탄력 받으면서 [리플리]와 [콜드 마운틴]같은 인상적인 소설 각색물을 거듭 내놓아서 감독의 역작인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성공이 거품이 아니었음을 증명한건 다행인 일이다. 더 실력 발휘할 가능성이 풍부한 인재였는데 너무 일찍 단명해서 아깝다. 안소니 밍겔라는 원작에 흠뻑 빠져들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작품의 영화화에 2천 7백만불 예산을 얻어내기 위해 3년 이상을 투자하여 역작을 완성했다.  

 

4

1992년 부커상 수상의 동명원작이 국내에서 두번 출간됐다. 첫번째는 1997년 영화개봉에 맞춰 가서원 출판사에서 출간됐었고 이 책이 절판된 이후 요즘도 영화 원작을 즐겨 출간하여 내 마음에 쏙 드는 그책 출판사에서 다시 번역하여 2010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영화 포스터를 그대로 사용한 가서원 출판사 번역본보다 그책 출판사 번역본이 훨씬 모양이 낫다. 개정판 원작을 구입한지 수년이 지났는데도 여태까지 못 읽었다. 반년 내로 완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책 욕심이 많아서 사재기 해놓은 책이 안 읽은 상태로 집 안 책장에 질리게 방치돼 있다.

 

1997년 출간된 마이클 온다치의 동명원작은 영화와 똑같이 발음하기도 민망한 원제 그대로 출간됐다. 그래서 책 제목은 [잉글리쉬 페이션트]. 2010년 다시 번역하여 재출간된 원작은 제목이 수정됐다. 수정된 제목은 [잉글리시 페이션트]이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란 영화 제목에 익숙하여 그 제목으로 온라인 도서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잉글리쉬'가 '잉글리시'로 변경된 바람에 잘 안 걸려든다. '잉글리시'로 바꾸지 말고 아예 제목을 번역하여 한글제목으로 깔끔하게 달라 붙는 [영국인 환자]로 재출간했다면 훨씬 더 보기가 좋았을것같다. 개봉 전엔 [영국인 환자]로 곧잘 소개됐던 작품인데 난데없이 원제를 그대로 살려내서 지금까지도 눈총을 받고 있다.     

 

1.85:1비율의 작품이라 비스타관에서 틀면 좋을 영화이지만 메가박스는 그런거 별로 개의치 않는 멀티플랙스라서 이 작품에 어울리지도 않는 코엑스점 10관에서 관람했다. 좌우로 스크린 여백이 남아 답답하긴 했지만 그래도 코엑스점 프리미엄관에서 제일 객석규모가 적은 10관의 스크린도 작은건 아니라서 영화관 대형화면으로 보는 쾌감은 기대한대로 컸다. 비록 리마스터링 작업도 안 한 상태에서 옛 영화의 낡아진 화면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게 흠이긴 했으나 영화 자체가 고전적인 분위기라 이글거리는 화면질감도 사막풍경과 그럴싸하게 어울리면서 고풍스러운 멋으로 살아났다. 20년만의 재개봉은 한국이 최초라는데 과연 이번에 재개봉하면서 제대로 된 영사방식으로 상영이 됐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무암전 첫 개봉이란 의미가 있으니 재개봉의 가치는 있었다. 1997년 개봉 때는 극장판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비디오판에선 목욕 장면에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치모가 블러처리가 됐다. 이번 재개봉판에선 여과없이 원래 의도대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치모가 노출된다.

 

처음 봤을 때처럼 중간중간 지루하기는 했지만 군데군데의 절절한 멜로드라마 감성이 뛰어나서 이번에도 만족감이 높았다. 남의 나라 전시상황의 묘사이고 비극적인 멜로드라마 전개에 빠져들다 보니 어릴 때는 가볍게 넘겼던 후반부의 전개가 지금 보기엔 뜨악하긴 했다. 아무리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러 간다는 절박함에 그랬다고는 하지만 수백만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기밀자료를 적군에게 넘기고 독일군의 스파이를 자청하여 여자를 구하러 갔다가 실패하고 만다는 설정은 과격했다. 하기사,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불륜미화의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지만 불륜사실에 열 받은 남편이 아내를 태우고 사정없이 복엽기를 몰아 간통 대상자를 사고사로 위장하여 죽이려던 설정이 나오는 작품이니 이 이상열기의 사랑의 감정도, 불타오르는 증오심도 다 전쟁의 비극이 만들어낸 정신나간 광기였는지도 모르겠다.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캐서린 역은 지금 봐도 신선하다. 이 작품 이전에도, 이후에도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이런 여성적인 배역을 거의 안 했는데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배역 소화력을 보면 천상 배우구나 싶다. 이 작품에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가 보여준 우아함, 기품, 친절이 깃든 귀족적인 여성미와 강단있는 모습은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순식간에 적응이 된다. 금발도 이렇게 잘 어울린다는것도 외모적으로 근사하게 증명시켰다. 이 역할을 맡으려고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고 하는데 모처럼만에 잡은 연기변신의 기회를 빼어나게 살렸다. 이 작품의 호연으로 이후 [호스 위스퍼러]와 [랜덤하트]같은 상업멜로물의 주역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건데 두 작품이 많은 제작비에도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어서 헐리우드 영화에서의 주역감으로는 단명했던것같다. 차갑고 깍쟁이같은 냉정한 여자 역을 자주 하는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가 더 좋긴 하지만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의 대상화 됐으면서도 주관이 뚜렷한 여성적인 배역도 무척 아름답게 느껴진다. 랄프 파인즈와 줄리엣 비노쉬의 연기도 탁월했고 말이다. 한동안 랄프 파인즈에 빠져서 이것저것 많이 챙겨 봤는데 이 작품에서의 뒤틀린 배역 소화력이나 후반부 오열 장면은 다시 봐도 가슴 시리게 한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인간이 느끼는 사랑이란 애절한 감정과 상실의 고독감을 훌륭하게 짚어낸 수작이다. 전쟁의 모순이 만들어낸 비극적인 사랑의 그리움도 열정적인 광기를 담아 관객의 공감대를 유도하는데 성공했다. 사막을 배경으로 한 멜로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으로 남았으니 9개 부문이나 타간 아카데미 트로피가 전혀 아깝지 않다. 가끔씩 시도되는 [잉글리쉬 페이션트]류의 대작멜로물이 부디 성공적인 결과를 낳아 뜨거운 멜로서사극에 굶주린 요즘 관객들의 허기를 채워줄 수 있으면 좋겠다.

 

 

 

1990년대 중후반에 한 4~5년간 신문 영화자료를 잔뜩 수집했었는데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이 컬러 신문광고는 색감이 마음에 들어서 지금도 가지고 있다.  

 

 

백만은 개뿔,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하긴 했지만 저 당시 신문 영화 광고 특유의 뻥치는 문구와 달리 1997년 3월 15일 국내개봉하여 서울에서 312,882명을 동원했다. 북미 78,676,425달러, 월드 박스오피스에선 231,976,425달러를 벌며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안소니 밍겔라는 dvd코멘터리에서 줄리엣 비노쉬의 이 표정 연기를 두고 "너무 표정이 풍부해 평생 봐도 좋을 얼굴"이라며 극찬을 보냈다.

 

 

 

줄리엣 비노쉬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이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줄리엣 비노쉬의 아카데미 수상은 프랑스 여배우로는 1960년 아카데미에서 [꼭대기의 방]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시몬느 시뇨레 이후 두번째 기록이었다. 줄리엣 비노쉬는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분량을 촬영한 이 작품에서의 경험과 한나 역에 빠져들어 1999년 딸을 낳았을 때도 한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녀는 안소니 밍겔라의 연출 유작이 된 [무단침입]에도 출연하였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기적적인 성공으로 거장대접을 받았던 영국출신의 안소니 밍겔라 감독은 2008년 3월 18일에 갑작스럽게 사망하였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이후에도 실망스럽지 않은 연출작을 거듭 내놓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의 단명을 안타까워했다. 사망 당시의 나이는 54세였다. 사망원인은 목 주위의 수술을 받고 난 뒤 수술합병증으로 인한 과다출혈 때문이었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이후 [리플리]와 [콜드 마운틴]으로 이어지는 대규모 시대극의 연출 노선은 근사했다.  

 

 

촬영 중 제작자 사울 제인츠와 줄리엣 비노쉬. [아마데우스][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등의 제작자로 유명한 사울 제인츠는 2014년 1월 3일 사망했다. 1921년 생으로 93살까지 장수하였다. 사울 제인츠는 줄리엣 비노쉬의 첫 영어권 영화 진출작인 1988년작 [프라하의 봄]도 제작하였다.

 

 

 

 

랄프 파인즈는 실존인물을 모델로 한 알마시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199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2개 부문 후보에 올랐는데 수상에서 탈락한 부문은 남녀주연상과 각색상이었다. 당시 아카데미에서 남녀주연상은 [샤인]의 제프리 러쉬와 [파고]의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수상하였고 각색상은 [슬링 블레이드]로 배우 출신의 빌리 밥 손튼이 받았다. 랄프 파인즈는 이 작품의 호연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대략 [레드 드래곤][러브 인 맨하탄]의 성공을 맛 본 2002년까지 배우로서 부침을 겪었다. 이 사이 그가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얻은 스타덤에 힘입어 출연한 대규모 상업기획물 중에는 희대의 졸작인 [어벤저]같은 실패작도 있었다. 근데 난 '테크노 액션 환타지' 어쩌고 하며 세기말적 분위기로 호들갑을 떨었던 이 작품이 괜히 그냥 좋아서 비디오로도 구입했었고 dvd로도 소장중이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원래는 20세기 폭스에서 제작하기로 했으나 미국 여배우가 아닌 영국 여배우인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캐스팅에 대한 의견차이로 폭스가 빠지면서 미라맥스가 맡기로 할 때까지 제작이 중단되기도 했다.

 

 

안소니 밍겔라가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 최고로 꼽는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연기는 바로 캐서린과 알마시가 첫 섹스 후에 혼욕하는 욕탕 장면에서의 알몸연기이다. 섹스 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랑하는 남녀의 극히 일상적인 모습을 용감한 노출연기로 자연스럽게 소화한것에서 찬사를 보냈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여자 배우들은 섹스 후의 장면에서 알몸연기를 하는데 반해 남자배우들은 노출하지 않는다.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욕탕 장면에서 음부까지 노출했다. 안소니 밍겔라는 섹스장면의 묘사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서 섹스 후의 장면묘사에 더 신경을 썼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을 울렸던 알마시의 오열 장면

 

 

 

 

20주년 기념 재개봉은 한국이 최초지만 지난 10월 22일에 로마 국제영화제에서 2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1996년 프랑스 파리 시사회.

(좌측부터} 사울 제인츠, 줄리엣 비노쉬, 안소니 밍겔라,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가브리엘 야레

 

 

욕정을 못 이기고 첫 정사를 나누게 되는 알마시와 캐서린의 본격적인 불륜관계 시작. 알마시가 캐서린의 원피스를 찢는 장면에서 총 6벌의 옷이 사용됐다. 이 장면 뒤 알마시가 찢어놓은 캐서린의 원피스를 알마시가 꿰매고 있는 장면이 니와 현실적인 재미가 있다.  

 

 

압도적인 사막풍경. 참고로 사막을 배경으로 거대한 멜로물을 표방한 한국영화로 이영애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욕만 잔뜩 먹고 대차게 말아먹었던 [인살랴]가 있는데 [잉글리쉬 페이션트]와 같은 사막에서 촬영했다.

 

 

원작과 달리 영화에선 캐서린의 비중이 대폭 늘었고 한나의 분량이 줄어들었다. 덕분에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줄리엣 비노쉬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수상도 하고 줄리엣 비노쉬는 같은 해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은곰상까지 수상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출연분량은 큰 차이가 없다. 감독이 캐서린에 집중하면서 배역의 분량이 늘어나긴 했지만 관점에 따라 이 이야기는 현재가 중심인 한나의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Comments
2016-12-11 11:11:10

좋은 글 감사해요~

제 인생 최고의 영화 10편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영화를 제외하긴 힘들 것 같아요.

랄프 파인즈는 쉰들러 리스트로 스타덤에 오른 케이스죠. 거의 무명에 가까운 배우였는데

오히려 주인공 리암 니슨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줘서 저 친구 누구야 했을 정도니까요... 
2016-12-11 13:48:58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가브리엘 야레의 음악을 들으니 사막모래가 날리는 기분도 들고 예전 감정이 살아나는 듯 해서 좋았습니다. 

2016-12-15 01:08:10

 오늘밤에 해서 보러 가려고 하네요

 
글쓰기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