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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예전에 공항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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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7 16:40:50

 https://dprime.kr/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24286114

 

큐리오님이 올려주신 글을 보고 옛날 생각이 나서 답글을 달다가 내용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새로 글을 씁니다. 

좀 오래 된 이야기인데 예전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면서 공항 로비에서 시간을 죽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워낙 주의력이 없기도 하고, 그날은 유독 이것저것 물건이 많아서 번잡스러웠어요. 거기다가 시간을 보낸다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책을 읽느라 탑승 직전까지 제 물건들을 점검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슬슬 시간이 다가와 이것저것 빠진 것이 없나 점검을 했는데, 가장 중요한 지갑이 없는 겁니다. 너무 당황해서 제가 지나친 장소들을 돌면서 심장이 조여오고 있었는데, 마침 안내방송이 나오더군요. 지갑 분실물이 들어와 있으니 인포메이션에 와서 찾아가라고요. 그래서 안내데스크로 가서 간단하게 확인하고 분실물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지갑을 열어보니 거기에 영어로 쓴 쪽지가 한 장 들어있더라고요.  당신이 이 지갑을 찾았길 바라고 좋은 여행행이 되라고. 그리고 서양식 이모티콘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정말 얼마나 고맙던지 독일에 대한 인상이 확 좋아지더라고요. 

 

 물론 여행을 하면서도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교통이 압도적으로 편리하고 깨끗해서, 그리고 자연환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좋긴 했지만, 그때는 라틴 유럽 국가들의 문화적 유산들에 더 관심이 많을 때라, 음식이고 문화고 뭔가 좀 심심하다고 느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비현실적으로 화려하고 낭만적이라서 고대의 환상을 자극하는 뭔가가 부족했고요.(사실 그때 여행의 목표 중 하나가 유럽 각지의 박물관에 흩어진 약탈된 이집트 유물들을 직접 보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거리의 어느 카페에서 만난 터키인과 대화를 하면서 그들이 아직도 은근한 인종차별을 경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해서 그렇게 정이 가는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감정이라는 것이 비합리적이라서 그런지, 센스있는 쪽지 한 장이 곁들여진 그들의 배려에 정말 좋은 감정이 들더라고요. 물론 제 지갑을 습득해서 인포메이션에 맡긴 사람은 타국에서 온 저와 같은 여행자였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 장소에서 제가 그러한 친절을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다음에 독일의 여러 지역을 다시 한 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독일의 현대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고,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음악이나 미술, 문학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건성으로 지나친 것이 많았거든요. 

 

  그러나 이러한 관심도, 독일에서 경험한 푸근한 배려가 없었더라면 그보다 더디게 찾아왔을지도 모르죠. 작더라도 상대에게 호의와 배려를 받으면 상대가 좋아지고 관심이 생기게 됩니다. 그 때, 제 지갑을 습득해 수고롭게 돌려주신 분이나, 뉴스의 버스기사 같은 분들이 있어서 사람들은 큰 도움을 받고 더 큰 사랑을 가지게 될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바가지 요금을 씌우고, 물건을 훔치며, 인종차별을 저지르는 동안에도 말이죠. 이렇게 남들이 당할 고난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것을 기꺼이 도우면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을 보이며, 사례는 생각하지도 않는 자신의 강직한 도덕률을 지키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자신을 드러내기를 그다지 욕망하지 않기에 드문 것 처럼 보이는 거죠. 이런 분들이  그나마 악이 횡행하고 그 횡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그저 적응하려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에서 큰 위안과 감동을 줍니다. 세상에는 아마도 배려 없고 악한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지겠지만, 이런 분들이 주는 기억들이 그나마 사람들이 완전히 절망하지 않도록 희망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저 같이 그저 적응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면서 남들의 허물만 보는 사람에게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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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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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3-03-27 23:29:43

어디든 좋은 사람들이 있네요. 좋은 기억으로 남으셨다니 글을 읽는 저도 좋았습니다. 글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글 맛나는 시간이었어요.

WR
1
2023-03-27 16:53:47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도 그런 긍정적 경험이 이후 독일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으로 보도록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요?

1
Updated at 2023-03-27 18:03:47

맞습니다.

저도 운이 좋았는지 여행지에서 친절한 사람들만 만났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라하까지 기차여행을 하는데, 한 줄로 가던 기차가 나뉘어 다른 길로 가는 것을 모르고 탔다가 엉뚱한 곳을 갈뻔 했거든요. 앞자리 독일인 노신사의 도움으로 옆자리 미국인 가족과 함께 허겁지겁 내려서 프라하까지 우연히 동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허겁지겁 내려 동질감이 있었는지 기차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 함께 도착했고, 프라하역에서 그 가족이 부른 우버가 작아서 저희 부부에게 양보를 해주었습니다. 비용은 미국인 가족이 지불을 해주었고요. 다음날 숙소에서 부른 우버가 어제 미국인 가족이 배려해 준 우버여서 또 반가워 여행내내 그 우버를 전용차처럼 타고 다녔네요. 그 미국인과 체코 우버 아줌마와는 지금도 연략하며 지냅니다. 

 

학회차 갔던 뮌헨에서는 중앙역 비즈니스 호텔에 묵었는데 마침 백야여서 한밤중인데 우리나라 초저녁 같은 밝기였습니다. 잠이 안와서 길 건너 편의점에 갔었는데 문신도 하고 험악하게 생긴 사람들이 편의점에 모여 있더군요. 츄리닝을 입고 대충 옷을 걸쳐입고 갔었는데 복장이 생소했던지 그 사람들이 말을 시키더군요. 생긴 것과는 달리 매우 순수한 그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맥주 한 캔 씩 마시고 한참을 수다를 떨었던 기억.

 

길을 가는데 저 더러 "잭키 찬, 잭키 찬"이라는 한 무리들에게 뭐라 해주던 건장한 독일인 청년도 기억에 남네요.

 

여튼 나쁜 놈들도 있지만 세상은 좋은 사람들이 밝히는 거지요.

항상 좋은 기억 가득한 날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

WR
1
2023-03-27 18:20:34

정말 만화 같이 유쾌한 경험을 하셨군요. 문신하고 우락부락한데 친근하고 착한 청년들.ㅋㅋㅋㅋ 도솔미솔님의 경함담 공유 정말 감사드립니다. 도솔미솔님 덕분에 기분이 정말 좋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1
2023-03-27 16:48:20

저도 예전에 옆지기님 만나러 서울 올라왔을때
코엑스 에서 지갑 잃어버렸었는데
외국인들이 주워다 인포?안내데스크?에 주고 갔다고 하더군요.

WR
2023-03-27 16:54:55

그 심정 저도 알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 외국인에게 많이 고마워 하셨을 것 같습니다.

2
2023-03-27 16:56:35

저는 일본을 자주 갔는데, 지인은 일본 한번 가더니 다시는 가기 싫다며, 어떤 불쾌한 경험이 있었는지 이유도 말해주진 않더군요.
저는 일본 여행 중 여러번 도움을 받았지만 분실물 이야기 하시니 떠오르는게,
돗토리현 시골 기차역에서 패스를
분실했는데 그래도 몇만원 하는 거라 속터져
하고 있었는데 이메일이 하나 와있어 보니
습득하신 분이 보내셨더군요.
패스권과 숙소 바우처 출력한 프린트가
같이 있었나해서 거기에 제 이메일 주소를
보고 보내셨더군요. 부랴부랴 찾으러 역에
가니 인포에서 일하는 분 같은데 어찌나 반겨주시던지. 다행이라며 감격하시는데ㅎㅎ
좋은 경험이 있으면 다시 그곳을 가고 싶어 지게되는 듯 합니다.

WR
2023-03-27 16:59:17

정말 좋은 경험하셨네요. 일본인들이 역사, 정치에 무지하고 때문에 국가로서의 일본을 곱게 보기는 힘들지만, 개개인들은 좋은 사람이 많겠죠. 

1
2023-03-27 17:17:56

경험상 외국인, 특히 한국에 대한 호감이 조금이라도 있는 일본분들은 잘해 주시더군요.
1.자전거 여행 중 작은 정원 딸린 주택에
오육십대 쯤 남성분이 소일거리 하고 계시기에 물동냥 부탁드렸더니 들어가셔선 음료수와 과일, 아이스크림 등 대접해주셨어요. 부인도 나오셨는데 대화하다보니 해당 지역이 베드타운이라 한국인들도 은근있는지 거주자들을 위한 한글 지역 안내서? 같은 책자를 공저하신 분이셨구요. 신기했어요. 한국과 인연있는 분을 우연찮게 픽한셈이라ㅎ
2.또 어느 시골 마을 숙소 예약도 없이
덜컥 갔다 금방 어둑해지고 중심가 주변
숙소들은 다 방이 없다해서 노숙자 신세되나
했는데 산책 나온 아주머니께서 야밤에
시골서 캐리어 끌고 서성이는게 이상했는지
뭔일이냐 하셔서 숙소 없어서 망했다 하니,
하나하나 숙소 전화 돌려서 마을 외곽에
방있는 곳 찾아주셨어요. 걸어서
가기 힘든 상황이니 숙소까지 차도 태워
주셨구요. 이분도 잠시 대화해보니
아는 한국인 유학생 있다며 한국인 반갑다
하셨어요.
일본에서 혐한이나 불친절한 이들로 불쾌한 경험 겪는 분들도 계시지만 전 좋은 기억이
많은 편이네요ㅎ

WR
2023-03-27 18:21:54

역시 개인대 개인으로 만나 교감하는 것만큼 상대와 신뢰를 쌓는데 효과적인 것이 없나봅니다. 

2
2023-03-27 16:56:57

전 반대로 몇년전에 중국 계림을 놀러갔는데 같이간 한국인들이 관광하러 여러팀이 입국했었어요...

다른팀 맨앞에 서신분이 여권이랑 기타등등을 중국인 심사관에 주고 기다리는데 그 심사관이 뭐라뭐라하면서 겁나게 야단치며 공항이 떠나가라 화내더군요...말도 안통하지 가만보아하니 여권 케이스 안벗겨서 줬다고 지랄하던거였던...ㅡ,.ㅡ 아주 그냥....출국할때도 보니 딱 그놈이 있길래 봤더니 한국인들에게만 유독 그 지랄을 하더라구요...덕분에 중공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사라졌던....

WR
2023-03-27 17:00:09

정말 기분 나쁘셨겠습니다. 그것도 일반인 아닌 공무원이 그런 짓을 하다니.

1
2023-03-27 17:01:45

인천공항에 돌아와서 그 중간에 태극기 걸려있잖아요....그게 얼마나 포근하게 느껴지던지...ㅎㅎ

영상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공개망신을 줬어야했는데....=_=

WR
2023-03-27 18:23:32

앞으로 그런일 당하시면 꼭 인터넷에 올려주세요!

1
2023-03-27 17:04:57

출국면세점에서 지갑사고 돈도 다 옮겨놨는데, 비행기에 놓고 내린적 있습니다. 
수소문끝에 온전히 돌려받은 기억나네요. 수카르노하타 공항에서요. 

WR
2023-03-27 17:54:49

정말 다행이네요. 당장 쓸 카드나 현금이 없어지면 정말 곤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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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3-03-27 17:53:47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뮌헨 가는길에 경유지로 세시간정도 머물렀던 경험밖에 없는지라 공항에 전시된 300SL 말고는 별 기억이 없네요.
저는 독일에 3주정도 머물면서 온갖 종류의 고생은 다해서 좋은 기억이라고는 아우토반을 질주했던거밖에 없네요.

WR
2023-03-27 17:54:09

그러셨군요. 심심한 위로를..

1
2023-03-27 17:48:21

스키폴공항(암스테르담)에서 전직장 사장이 트롤리에 올려둔 손가방을 정말 고개 한번 돌렸는데 없어졌습니다 다. 공항이기도 해서 안심하고, 신고한후 바로 CCTV 확인하였는데 딱 그 위치가 사각지대였어요.  

 

여권을 다시 신청해야 해서 덴학(헤이그)까지 왔다갔다하면서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태리에서는 바로 눈앞에서 일행 뒷주머니 지갑을 쓰윽하는걸 보고 그놈 손목을 쳤더니 흥~ 이러면서 가더라구요 -_- 

WR
2023-03-27 17:52:35

마음 고생이 크셨겠습니다. 이탈리아는 원래 도둑질도 유쾌하게 하는 나라라 그러려니 하는데, 네덜란드는 북유럽답지 않게 사회규범이 상당히 느슨한 느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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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7 18:50:13

지갑 찾아준 사람은 다른 나라 사람이고 ㅋ

WR
2023-03-27 19:06:29

거기가 워낙 큰 국제공항이고 하니 처음부터 그럴 가능성이 보이더라고요.ㅎㅎ 하지만 소위 장소성이라는 것이 위력을 발휘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로마에서는 모두 로맨티스트가 되는 것처럼 그 분위기에서는 누구나 기꺼이 습득물을 잃어버린 사람을 위해 배려하도록 촉진하는 약간의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2023-03-27 20:51:47

저는 캐나다 토론토 공항에서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토론토 공항 화장실에 들어가 급한 볼일 보면서 이북리더기를 놓고 나왔습니다.

마중 나온 지인차를 타고 호텔에 도착해서 이북리더기를 찾아보니까 없는겁니다. 혹시나 해서 다시 공항에 들렀는데, 안내 데스크에 제 이북리더기가 있더군요.

 

그 전에는 무궁화 기차에 두고 서울역에서 내렸는데, 몇시간 후 분실물 센터에서 찾았습니다.

또 그 전에는 업무차 들른 산업부 흡연실에 두고 나왔는데, 몇시간 후에도 제가 둔 그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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