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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웃기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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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이주혁 페북. 얼굴은 차돌맹이 같고 눈빛은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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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7 07:08:42


나는 줄을 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맛집 탐방도 잘 다니지 못한다. 배를 좀 채우겠다고 번호표 받고 줄 서서 기다리는 일이 부질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같은 날 줄을 서는 것은 전혀 나쁘게 생각되지 않았다.

무슨 스타들 사인회처럼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발디딜 틈이 없고, 여기저기 플래쉬 터뜨리면서 요란스럽게 진행하는, 그런 사인회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줄이 잘 안 줄어들었다. 사인해 주는 분이 한 명 한 명 공들여 글을 써 주고 얘기를 나누려 애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걸릴 수밖에 없었다.

날씨 좋은 주말을 맞아 영등포 타임 스퀘어에는 삼성 갤럭시 신규 폰 행사가 열려 있고, 그야 말로 젊음의 거리처럼, 쌍쌍이 나온 젊은 친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길게 줄을 선 행사를 쳐다보는 젊은 친구들이, 만약 "저분이 누구세요?" 라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일순 머릿속으로 고민했었다.

과연 뭐라고 이 사람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좋을까.
검찰 내의 성추행 비리를 들춘 내부 고발자라고 해야 할까.
양심을 지킨 댓가로 징계를 받을 위험에 처한 분이라고 소개해야 되나.

내가 학생 때.
신세계 백화점 앞이나 명동 성당, 을지로 등지에서 지금 바로 저 놀러 나온 또래의 젊은이들이 대로변을 가득 메우고 구호를 외쳤었다. 군부는 가라, 라거나, 정경 유착, 결사반대 등이었다.
그걸 구경하면서 거리를 지나치던 사람들은 지금 내 또래의 기성 세대들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양쪽 세대가 뒤바뀌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중장년층의 기성세대들이었기 때문이다. 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 책의 제목은 "계속 가보겠습니다"였다.
어째서 저자는 책의 제목을 이렇게 붙였을까?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혹은 "우리가 이길 것입니다."가 아니고, 계속 가 보겠다는 제목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예상컨대, 이렇게 걷는 길 저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 끝이 어떨지 알지 못하고 확신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렇게 갈 수밖에 없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같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심한 좌절을 경험하고 협박과 위협을 겪었고 조롱과 모욕도 당해 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대로 멈추지 않겠다는 신념을 고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단테의 '신곡' 에서 연옥 속의 길을 안내하는 자의 호통이 문득 기억나 중첩되었다.
"왜 걸음을 늦추나? 남들이 뭐라건, 나를 따르라. 바람이 불어도 꼭대기가 흔들리지 않는 탑처럼, 굳건하라"
그리고 몇백년 후 칼 마르크스는 "Capital" 1권에서 이를 모방해 이렇게 썼다. 자신의 이론을 "다수의 의견"이라며 무력화하려는 세력의 회유와 강압에 맞서 쓴 문장이다.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며 든 첫 느낌은 차돌맹이와 같은 단단함이다. 그런데 단단하면서도 또한 그의 눈빛이 이렇게 부드럽고 차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속으로 조금 놀랐다. "토요일 오후에 바쁜 가운데 시간을 이렇게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짤막한 한 마디가 그와 나눈 대화의 전부였다. 그래도 내게는 전연 짧게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편 중의 한 장면을 회상한다.

로한 기마대를 따라 남장을 하고, 전쟁터에 나선 공주 에오윈은 곤도르 성에 다다라 끝없이 늘어선 오크 군대를 보고 겁 먹은 호빗인 메리를 끌어안으며 말한다. "겁먹지 마, 메리. 친구들을 위해 용기를 내요"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에오윈의 안색 역시 창백하고 목소리는 떨렸다.

누군들 이렇게 가는 길이 힘겹고 두렵지 않겠나? 그저, 그를 향해 날아가는 모욕과 비난과 몰염치와 몰상식, 그 모든 것에 맞서 그가 다치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겹겹이 곁에 서 줄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 되길 원할 뿐이다. 나같은 얼치기 진보주제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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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시 오크군 껌찰의 횡포가 두럽지 않을 수 없겠지만, 저 골목의 옆에는 또 다른 길이 있을까 하여 걸어 가겠다는 결심의 다짐이겠죠.

계속 가보겠습니다.


님의 서명
십리 호수에 서리는 하늘을 덮고
푸른 귀밑 머리에는 젊은 날의 근심이 어리네
외로운 달은 서로를 지키기를 원하니
원앙은 부러우나 신선은 부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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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WR
2022-09-27 07:09:11


2022-09-27 07:48:04

검찰 사관 검사 임은정!!!

WR
2022-09-27 10:01:32

보셨군요.

2022-09-27 10:01:11

https://youtu.be/dl3Wu-wN2V8

이것도 같이 보시면 재밌습니다. 그 전까지 임은정 검사에 대해 막연한 이미지 정도 있었는데.. 유튜브 보고 팬이 됐습니다.

WR
2022-09-27 10:03:08

임은정 검사 출연한 유튜브 보면 대부분 재밌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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