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진보는 왜 교권을 외면했나, 보편적 약자의 종말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249980?sid=110
(읽어볼만한 글이고 짧습니다. 원문 읽어보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
학생인권조례의 뼈대는 ‘때리지 말라’와 ‘차별하지 말라’이고, 그 어디에도 모욕이나 수업방해를 조장하는 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 따라서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은 완벽한 오류다. 지금의 사태는 학생인권조례가 ‘있어서’ 생긴 게 아니라 교권보호법령이 ‘없어서’ 생긴 것이다.
네. 교권은 원래 없었죠.
전통적 가치에 기반한 추상적인 교권은 있을지 모르나 시스템, 제도적으로 교권을 보장하는 장치는 없다시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인권의 향상을 핑계로 일부가 교권과 학생인권의 대립 구도를 만들었습니다만, 이건 그냥 물타기죠.
학생 인권, 교권 모두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교권 부재, 진보·보수 다 직무유기
그렇다면 교권을 법령으로 보장해달라는 요구는 왜 지속적으로 묵살당했을까? 여기서 진보와 보수가 모두 직무유기를 했다. 보수의 직무유기는 이유가 단순했다. 보수는 가뜩이나 학생인권조례나 체벌 금지를 반대해서 비난을 산 전력이 있는데, 여기에 더하여 교권을 옹호하겠다고 나섰다간 스스로에게 찍혀 있는 낙인을 더 깊게 만들 우려가 있었다. 한마디로 욕 먹기 싫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진보의 직무유기에는 내밀한 사상적 이유가 있다. 진보 세력은 ‘약자 보호’가 자신의 주요한 임무라고 생각하는데, ‘아동’이 대표적인 약자이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에게 약자를 옹호한다는 것은 곧 특정한 ‘집단’ 전체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었다. 즉 진보의 약자 개념에는 ‘개별성’과 ‘맥락’이 결여되어 있다.
보수의 교권에 대한 태도는 그들의 국정 운영 능력만큼이나 얄팍하니 논외로 치더라도,
진보 측의 교권에 대한 태도는 ‘학생, 아동은 약자다’라는 단순 도식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절대적 약자라는 건 없죠.
기업형 노점상은 당연, 일반 노점 역시 노점에 의해 피해를 보는 정당한 상인들이 더 약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조보다 약자일 수는 없죠.
길고양이는 엄연히 생태계 상위 포식자입니다. 조류 폐사 원인 1위일 정도로 생태계 문제를 일으키죠.
(사실 2010년대의 캣맘, 길고양이 붐은 한국의 특수한 현상이고, 오히려 보수 정권이 주도한 면이 큽니다. 애초에 진보적 가치도 아니구요.)
여성은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이지만, 20대 남성이 과연 여성보다 강자인가에 대해선 글쎄요..
미국 소수자 우대법에 의한 대학 입학 쿼터의 피해자는 정작 더 소수자인 아시아계입니다.
촉법 소년은 약자이기만 할까요?
지금의 교권 논의는 ‘약자’ 개념의 개별화 및 맥락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과제를 진보세력에게 부여한다. 이러한 작업이 노동자, 여성, 난민 등 여러 집단으로 확장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미 대중의 약자 개념은 상당히 변동했다. 이러한 변동을 백래시(backlash)의 사례로 보고 배척할 것인가,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의 반영으로 보고 수용할 것인가? 아마도 후자 속에 86세대와 단절한 새로운 진보의 가능성이 존재할 것이다.
결국 약자라는 건 개별적으로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고,
한국의 진보는 이런 부분에서 도리어 대중의 인식 변화에 뒤쳐져서 단순 도식에 머무르는 게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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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 직선제도 한몫한게 있죠... 직선제자체에는 찬성하지만 학부모가 교육감을 뽑는 유권자가 되면서 학부모를 받들어 모시게 된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