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넷플드라마 '택배기사' 속 '지옥의 문' 그리고 아쉬움
넷플릭스의 최신 한국 드라마 '택배기사'는 기존 한국 작품에서 보기 힘든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소재로 한 기대되는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호불호가 극명히 나뉘는 편이고 실제로 여기 DP에서의 평점도 압도적으로 BAD가 많기도 합니다. (반면 해외에서는 호평이 더 많습니다)
저 역시 초반의 지루함 때문에 시청을 그만 둘까 고민하던 차에 에피소드2의 한 장면의 미술작품을 보고 머리를 한방 맞은 느낌이어서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시청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 미술 작품은 로댕의 '지옥의 문'이라는 작품입니다.
(위 사진의 송승헌 뒤편으로 보이는 청동 조각입니다)
이 미술 작품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택배기사'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제 글중에 분량이 다소 있는 대부분의 글이 그렇지만, 작품의 일부 내용을 언급하게 됨으로 약스포성의 글입니다.
약스포라도 원하지 않는 분은 드라마 감상후에 읽어보시기를 권장 드립니다.
여러 블루레이 코멘터리의 영화에 대한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다 보면 가끔 작품에 등장하는 그림이나 미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예술품들은 어떠한 상징이나 암시등을 위해서 사용되는데, 유명 작품의 경우 그 예술품을 영화에 등장시키기 위한 저작권 비용이 꽤나 높아서 다른 걸로 대체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단 몇초만 나오더라도 유명한 작품에 지급되는 저작권료는 대략 천만원 내외 부터 많게는 수천 만원에 이른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한국 영화들의 경우 무척 빠듯한 예산으로 진행이되기에 몇천 만원도 부담이 되는 상황이 꽤 있다고 합니다.
'택배기사'에서 송승헌이 등장할 때 몇차례 등장하는 '지옥의 문'은 근대 조각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 받는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명성이 높은 조각가, 로댕의 평생의 역작입니다.
모작인지 컴퓨터 그래픽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유명한 작품이기에 아마도 꽤 많은 저작권료를 지급하지 않았을까 짐작됩니다.
로댕의 삶은 예술가의 삶도 있지만 그의 경력 초중반에는 어떻게 보면 건축물에 들어가는 장식을 만드는 일종의 장인 같은 삶의 성격도 있습니다.
'지옥의 문'도 프랑스 정부에서 새로 건설하는 미술관의 입구를 만들어달라는 이런 장인으로서의 성격인 작업을 의뢰받게 되어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중에 미술관 건립 계획이 취소되고 맙니다.
그럼에도 로댕은 작품으로서 계속 진행을 하였고 약 37년간의 기나긴 작업 끝에 나온 작품이 '지옥의 문'인 것입니다.
지옥이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서양문학의 큰 걸작 중 하나이기도 한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을 테마로 만든 예술품입니다.
작품의 구상을 위해서 단테의 '신곡'을 여러번 읽기도 하였으며 관련된 수많은 자료들을 참고 했다고 합니다.
이 작품 하나를 위해 남긴 스케치도 수백장에 이른다고 합니다.
로댕의 유명한 여러 작품들중 몇몇 작품들은 '지옥의 문'의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들게도 매우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지옥의 문'에서는 '시인'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연배가 있으신 DP회원분들 상당수는 학창시절부터 한번쯤은 모작을 보았을 법 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제 학창시절 모교의 교정에도 '생각하는 사람' 모작이 있었거든요.
그밖에도 '키스'(aka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세 망령'(aka 아담), '우골리노와 아들들', '허무한 사랑', '무릎꿇은 목신의 요정', '절망' 등 다양한 유명 작품들로 남겨지기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중에 몇몇 작품들의 모델은 로댕의 연인이자 영화로도 유명한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로댕은 이 자신의 평생의 역작이 완성되는 것은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청동으로 주조를 하기 위한 기초틀, 즉 기본 석고상만 제작하고 운명했다고 합니다.
사망 전에 프랑스 정부에 자신의 모든 작품과 그 권리를 기증하였습니다.
자신의 미술관을 국가에서 지어주기를 바라는 조건이었다고 합니다.
'지옥의 문'도 그의 사후 10년이 되어서야 첫 청동 작품이 제작 되었습니다.
거푸집이 존재하기에 판화 같은 미술 작품이나 현대에 비로소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은 사진처럼 여러개의 작품제작이 가능한 것입니다. (마치 블루레이 한정판 번호처럼 넘버링이 되어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지옥의 문'은 총 8건의 작품이 제작될 예정이라고 하며, 현재 7번까지 제작이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까지 마지막인 그 7번 작품이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택배기사'속 '천명'이라는 기업처럼 한국 최대/최고의 기업 '삼성'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 이건희가 직접 프랑스를 설득하여 2년여에 걸쳐 제작하고 소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삼성의 미술관인 플라토 미술관(aka 구 로댕 미술관)이 소장하여 상시 전시하였습니다.
리움 미술관이 완성되면서 플라토 미술관은 폐관 되었고 이후 삼성의 미술품 수장고에 잠들어 있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이 삼성 플라토 미술관에 전시되었던 '지옥의 문'입니다.
(중앙의 작품은 또 다른 로댕의 유명 작품 '칼레의 시민'입니다)
'지옥의 문'은 높이가 6미터가 넘고, 가로 약 4미터 두께도 1미터 가까이 되는 거대한 작품입니다.
실제로 보면 그 압도적인 작품의 크기와 더불어 청동 소재 보존을 위한 특유의 화학약품 냄새 때문에 강한 인상을 줍니다.
작품에는 단테의 '신곡' 인페르노의 180명~190명 가까이되는 다양한 인물들의 조각이 있고, 지옥을 주제로 한 작품이라 그로테스크함과 더불어 아름다움이라는 아주 오묘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신곡'의 인페르노를 테마로 해서 원래는 상단에 아래와 같은 '신곡'의 유명하고 무시무시한 문구가 걸릴 예정이었다고도 합니다.
여기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이러한 미술 작품이 '택배기사'속에 등장 하였기에 작품의 설정 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어 머리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던 것입니다.
먼저 작품의 기본 설정인 포스트 어포칼립스의 배경 부터 그렇습니다.
기존의 포스트 어포칼립스의 배경은 핵전쟁, 좀비나 전염병, 기후위기, 기계와 인간의 갈등 등의 클리셰들과는 차별점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인간의 잘못, 가령 전쟁 같은 인간의 폭력의 본성이나 과학기술의 발전 또는 자본주의 속의 인간들의 욕망 같은 것들이 그 이유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말입니다.
'택배기사'속 포스트 어포칼립스는 그냥 사라져버린 공룡의 멸종의 원인(이제는 거의 정설인...)인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였다는 설정은 이러한 클리셰와 차이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기존의 포스트 어포칼립스의 설정들이 사회적 의미의 '부조리'였다면, '택배기사'에서의 그것은 철학적 의미의 '부조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실존주의로 유명하고 코로나 사태로 다시 회자되었던 까뮈의 '페스트'가 생각났다고 할까요.
(물론 전염병의 과학적 근거가 있는 현대에는 그 설정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만...)
난민구역, 일반구역, 특별구역, 코어구역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설정도 어쩌면 지옥이 저 깊은 땅속에 있다는 단테의 '신곡'이나 기존 많은 문명의 지옥의 개념과는 정반대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천국처럼 보이는 코어구역이 실제로는 지옥과 같다는 아이러니로 활용될 수도 있구요.
난민구역의 사람들이 특별한 죄가 없다는 점에서 단테의 '신곡' 속 연옥의 개념 같은 것을 가지고 올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오직 주인공인 사월만이 단계를 뛰어넘는 여정만을 보여주었죠.
이렇듯 택배기사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다양한 알레고리와 상징 등을 보여줄 수 있는 소재를 너무 표면적으로만 이용했다는 점이 정말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다양한 담론을 담을 수 있는 훌륭한 그릇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단테의 '신곡'은 중세사회의 신앙의 모습과 고대 그리스/로마의 신화적 요소와 인물들을 등장 시켜 집대성하였고 새로운 문화 부흥인 르네상스를 가져다 주었던 작품이었습니다.
'택배기사'역시 이러한 르네상스처럼 '신곡'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에서 가져온 '지옥'의 이야기를 통해서 현대사회나 인간 내면의 모습들을 다양한 기법을 통하여 보여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느껴져서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현재 K컬쳐의 부흥이 마치 그런 르네상스 같은 측면이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소재를 기존 수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외형만 비슷하게 구현해 내는데 그쳤고 이야기의 재미마져도 떨어졌구요.
압축하여 전달하여야 하는 영화도 아니고 여러 회차로 구성된 드라마였는데도 말입니다.
주인공에 대한 서사 보다는 다양한 인물의 서사를 늘려서 묘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등 시청하는 내내 아쉬움만이 가득 하였습니다.
어쩌면 봉준호의 '설국열차' 같은 수작이 나올 수 있는 기회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코로나 이후 극장의 부진으로 인하여 영화제작의 어려움과 더불어 OTT의 성장에 힘입어 기존 영화판 감독들이나 제작진들에게 드라마 제작의 기회가 확대 되고 있습니다.
드라마는 계속된 시청을 위한 상업적 요소가 필수이긴 하지만 물리적 시간이 압축된 영화와 달리 드라마에서는 여러 서사를 담을 수 있는 그것이 충분히 확보되었기에 작가주의적 요소도 가미된 작품을 기대해 봅니다.
물론 제 희망처럼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덧) 글 상단의 '지옥의 문' 이미지는 클릭하시면 고해상도의 작품을 보실 수 있습니다. 상세한 감상을 원하시는 분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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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만… 그 놈의 마지막편 신파는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 병폐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