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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이니셰린의 밴시(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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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3-03-19 17:25:49


아무리 [에브리씽 에브리원 올 앳 원스]가 대세였다 하더라도 7년 전 [스포트라이트]에 2개 부문이 수여된 것처럼 올해 아카데미는 나눠주기로 갔어야 했다.

 

소개된 줄거리만 보면 퀴어로 추측할 수 있는 설정인데 실제로 보니 요즘 영화들이 믿도 끝도 없이 갖다 붙이는 동성애 암시로 보이진 않는다. 보편적 공감대를 건드리는 수직적 인간 관계에 대한 염증과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양념처럼 써먹은 1920년대 아일랜드 내전으로 은유했다. 두 남자의 기울어진 관계를 일일이 설명하고 열거하기보단 곳곳에 여백을 두었다. 의도적으로 생략한 전사와 답답한 행동 양식, 심리 묘사를 계속해서 추측하게 하는 몰입도가 굉장하다. 


이해 능력이 떨어지는 어리숙한 동네 바보와의 불균형했던 오랜 돌봄 관계에 지친 남자와 그 사실을, 현실을 받아들이기엔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남자의 당황스러운 상태가 일련의 사건들로 변이되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마법처럼 풍성해진다. 1923년이란 시대 배경으로 아일랜드 내전까지 은유하는 타고난 이야기꾼 감독의 여유가 돋보인다. 


시대 배경이 1923년이고 극에서 언급도 되지만 아일랜드 내전 은유를 진지하게 해석할 필요까진 없어 보인다. 관객을 낚기 위한 서사적 장치로 극의 풍성한 기운에 보탬이 되는 고명 정도로 가볍게 받아들였다. 마틴 맥도나가 그만큼 아일랜드 내전 은유에 책임감을 갖고 접근한 것 같진 않다. 


조랑말 똥 얘기를 2시간씩 듣고 앉아 있어야 하는 지루한 관계에 한계를 느껴 결별을 통보한 남자와 그런 남자의 선택과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남자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어쩌다 보니 아일랜드 내전 상황이 맞아떨어진 우연성에 시대와 이야기를 융합했다고 본다. 평단이 과대 해석할수록 감독은 본인의 서사적 의도가 먹혀들었다는 것에 뿌듯해하지는 않을까. 


내용 자체가 구체적인 설명들을 생략하는 상태로 전개되기 때문에 아일랜드 내전 역시도 관객의 추론을 노린 배치가 아닐까 싶다. 계속 밀치고 계속 들이대는 브렌단 글리슨과 콜린 파렐의 반복적 모습들에서 일방적 인간 관계에 따른 피로감의 보편적 공감대로 심리극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아일랜드 전설 속에 등장하는 여성 혼령인 밴시란 예언적 존재의 적절한 배치는 서사의 마술적 힘을 부여한다. 특정 시대와 기본 설정의 절묘한 배치, 특별한 개성의 공간성, 초자연적 존재로 압도감을 일으키는 밴시의 상징적 활용을 복선과 은유의 풍성함으로 살렸다. 아름답지만 시간이 정지된 듯한 폐쇄적 공간으로 무료해지는 이니셰린이란 가상의 섬마을이 주는 공간적 요소도 환상적으로 담았다. 전작들에서 보여준 것처럼 과감하게 전환되는 심리 변화가 드라마의 생동감을 일으킨다. 장면 전환의 화끈한 쾌감, 농담의 직설적 화법도 단순한 설정과 폐쇄적 섬마을이 일으키는 공간의 한계를 이겨내는 힘이다. 


싹 쓸어 담은 비평가협회상과 베니스 남우주연상 수상, 올해 유력했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빛난 콜린 파렐의 연기는 손색없다. 기술적으로도 노련하고 감성적으로도 끝내준다. 과거 [세상 끝의 사랑] 같은 작품에서 보여준 섬세한 표현력이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서 훨씬 더 능숙하게 발전했다. 기술적으로만 봤을 땐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서 가장 훌륭한 연기가 아니었나 싶다. 


파우릭 역으로 연기 경력의 정점을 찍은 콜린 파렐을 필두로 아카데미 후보에 모두 지명된 브렌단 글리슨, 케리 콘든, 베리 키오건의 개별 연기와 앙상블도 훌륭하다. 특히 어리숙한 파우릭보다 더 멍청하여 파우릭의 지적 장애 상태를 가려준, 어느 지역에나 존재하는 동네 바보 도미닉 역의 베리 키오건은 강한 인상으로 극의 감초 역할로 톡톡히 해낸다. 이들 네 사람을 보좌하는 이니셰린 마을 사람들의 모습도 선명하다. 


무대 출신인 마틴 맥도나는 무대적 설정의 이야기를 소박하게 빚으면서 밴시의 상징적 배치로 이야기의 신비를 창조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가는 무력한 인간 모습의 비극에서 일련의 사건을 통해 얻은 정신적 성장과 환기로 도약한다. 불행과 재앙을 엄포한 초자연적 밴시의 위협을 이겨내며 보다 발전적인 삶과 인간관계의 회복 암시로 블랙코미디로의 입체성을 두드러지게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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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3-03-19 17:29:11

쓰리 빌보드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머드님 글 읽으니 또 보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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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9 18:22:27

오늘 낮에 봤는데... 중후반부 계속 나오는 손가락 땜에 부담스러워 두번은 못보겠더군요 ㄷㄷ

2023-03-19 18:51:04

 저도 콜린 파렐 연기가 매우 좋았으나..

강렬함에서 브랜든 프레이저에게 더 표가 쏠린듯 했고..

남우조연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키 휘콴보다는 

브렌단 글리슨이 한수위였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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