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노스포) 바빌론, 그저 넋놓고 즐거웠던 3시간
영화표값 줄줄이 인상되면서 많은 분들의 영화 고르는 눈도 부쩍 까다로워졌죠.
저도 예외가 아닌지라, 이번 주에 개봉한 '바빌론'을 두고는 좀 망설였습니다.
해외 흥행은 이미 실패인데다 평도 썩 호의적이지 않은 듯한데, 저 아래 들국화님의 리뷰를 보고 그래도 데미안 샤젤인데 뭐라도 보여주겠지, 그래도 브래드 피트인데, 하면서 봤습니다.
3시간 내내 말 그대로 넋을 잃고 즐겁게 봤네요.
일단 각본의 만듦새는 엉성합니다. 샤젤 감독의 전작들이 하나같이 오밀조밀하게 잘 짜인 구성이 돋보였는데 '바빌론'에서는 너무 많은 이야기+메시지를 담아내려다 보니 아무래도 산만하더군요.
초반부의 파티 난교 장면은 흡사 발리우드 무비처럼 '나 이렇게까지 화려하게 화면 뽑아낼 수 있다'라고 자랑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영화의 전반적인 메시지를 고려하면 좀 과한 느낌이었고, 성별, 인종적 다양성을 고려한 캐스팅 역시 1930년대 시대 배경을 놓고 보면 많이 작위적으로 느껴집니다. 어차피 가상의 인물들이라지만, 저 시대에 여성감독, 동양인 스타는 아예 없었다는 걸 뻔히 아는 관객 입장에서는 몰입을 깨거든요.
그럼에도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마치 이것저것 잡다하게 잘 나오는 뷔페를 즐기는 느낌 때문입니다.
한식도 양식도 아닌 쌈마이한 느낌에, 사람 붐비고 복잡스럽지만, 식당 분위기며 테이블 세팅 모두 고급스럽고, 결정적으로 몇몇 메뉴는 단품으로 시켜 먹어도 될 만큼 기차게 맛있는 그런 독특한 뷔페 말이죠.
감독의 전작들에서 돋보였던, 훌륭한 OST와 이걸 받쳐주는 사운드 모두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귀가 호강하는 듯한 만족감을 안겨줍니다. 크레딧 롤이 올라가는 데도 여전히 음악에 취해 관객들이 자리를 떠나질 못하더군요.
볼거리 측면에서도 그 화려함에 눈이 즐겁습니다. 특히 날것 그대로의 피튀기는(?) 장면들이 다소 나오는데, 브래드 피트+마고 로비 콤비의 재결성 때문인지 몰라도 자꾸만 타란티노 느낌이 나더라구요.
배우들은 제몫을 톡톡히 합니다. 특히 마고 로비는 '아이 토냐' 못잖은 최고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영화가 조금만 더 흥행했더라면 분명 오스카 레이스에서 한자리 얻었을 연기라고 생각되어 아쉽습니다. 몇몇 중요한 장면에서 브래드 피트가 보여주는 오랜만의 감정연기도 좋습니다. 사실 브래드 피트의 많고많은 화려한 필모 가운데 '원스어폰어타임...'으로 오스카를 탄 것은 지금 봐도 단지 공로상 느낌뿐인데, 그간 타란티노 옹 덕분에 이 형님이 드라마에도 무척 능한 배우였다는 걸 잠시 잊고 지냈던 것 같아요.
꽤 오랜만에 그간의 배역과 180도 다른 이미지로 후반부 깜짝 등장하는 모 배우의 연기도 좋습니다. (이 친구도 분명 드라마 기반으로 떴는데 그간 슈퍼히어로에 파묻혀 경력이 애매해진 느낌이 있었죠.)
후반부 연출, 특히 마무리는 마음 짠하면서도, 영화계 종사자로서 약간의 자화자찬처럼 느껴져서 조금 오그라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한 예술매체의 역사를 압축해내려는 노력은 무척 인상적인 시도였고, 특히 영화에 대한 애정과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오그라듦 조차도 좋을 만큼 멋진 결말이었다고 생각해요. 이 결말만으로도 하루가 지난 오늘까지도 많은 여운이 남아 있네요.
아무튼 데미언 샤젤 팬이라면, 브래드 피트나 마고 로비의 팬이라면, 아니 그보다 영화 팬이라면 후회는 안하실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쉬움이 있음에도, 볼거리 들을거리에 대한 즐거움 하나만으로도 2차 관람을 고려하게 만드는 영화이구요. 솔직히 해외에서의 평가가 너무 박했던 이유도 그간 샤젤 감독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반영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디피회원 분들이라면 이 영화 보고 푯값이 아깝다는 생각은 안하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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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식당 한식부페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