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게] 닥터봉의 한 장면 시나리오 비교
https://www.youtube.com/watch?v=XxOP5vGvEKs&t=3s
S#13 주차장(밤)
(촛점이 제대로 안 맞는 여진의 시선으로 보이는 준우의 차.
준우의 하얀 뉴그랜저가 여진의 차 측면에 끼어있다. 한쪽
렌즈가 없는 안경을 쓴 채 준우와 말다툼하고 있는 여진)
여 진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내 차 몰딩을 엉망으로 해 놓구선!
준 우 : 내 차는 휀더가 찌그러졌어요.
여 진 : 글쎄 그걸 내가 그랬냐구요? 댁의 운전미숙으로 이렇게 된 거
아니에요?
준 우 : 차를 주차선 넘어 삐뚜루 세워놔서 사고 유발을 시킨 게 누군데?
여 진 : 그래서요? 책임 회피를 하겠다 이거예요?
준 우 : 내 말은 각자 잘못이 있으니까 각자 수리를 하자 이거요.
여 진 : 미쳤어요? 가해자는 당신인데 왜 내가 내 돈을 들이고 시간을
낭비하면서까지 수리쎈타엘 가야 돼요?
준 우 : 당신이 주차를 거지같이 했잖아!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구.
여 진 : 당신이 운전을 똑바로 했으면 되잖아.
준 우 : 나 원 참 얘기가 뱅뱅 맴도는 구만 이거.
여 진 : 남자면 남자답게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수리비를 지불하세요.
치사하게 굴지말구.
준 우 : 남자답게? 필요할 땐 여성상위고 이럴 땐 남자답게 굴라고
하는데 말이야, 모순 아니요?
여 진 : 남자가 치사하게 나오니까 그렇죠. 그랜저까지 몰고 다니면서
쩨쩨하게.
준 우 : 그랜저 모는 사람은 봉인가? 잘못도 없이 뜯겨야 되냐구?
여 진 : 뜯겨요? 내가 공갈 차치기에요? 댁을 뜯게? 나 원 살다 보니
별 그지 발싸개 같은 경우를 다 당하네. 관둡시다. 관둬!
(휙 돌아서가다가) 그 돈 갖고 잘 먹고 잘 살아라 이 쫌상아!
준 우 : (쫓아간다)
준우가 쫓아오니까 여진, 도망간다.
그러나 준우에게 어깨를 잡히고 만다.
여 진 : 이거 놔요!
준 우 : (지갑에서 돈 꺼내주며) 자 여기 삽십 만 원 있어.
이거면 똥차 고치구두 남을 테니까 나머지 돈으로 안경알이나
사서 끼구 담부턴 주차 제대루해. 알았어? (손에 쥐어준다)
여 진 : (따귀 냅다 올려붙인다)
준 우 : (벙찌고)
여 진 : 누굴 거지로 보나? 줘야 할 돈 정당하게 안 주고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야? 이 돈 불쾌해서 못 받겠어. 자 이건 따귀 때린
값이야. 넣어둬요.
(수표를 준우의 윗옷 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준 우 : (여진 멱살 확 잡아 노려보며) 여잔 절대 손대는 게 아니란
내 조부님의 당부만 없었어도 넌 벌써 죽었어!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여진 겁먹어서 가만히 있다.
멱살 놔주곤 휙 돌아서서 걸어가는 준우)
여 진 : (겁먹은 거 만회하려는 듯 손바닥 탁탁 털며) 누가 운 좋은지
모르겠네. 난 까스총 사용할려다 말았다. 알아?
바람둥이 치과 의사와 노처녀 작사가의 로맨틱 코미디가 시작되는 주차장 접촉 사고 장면인데 원래는 밤 장면이었지만 결과물은 낮인 걸 보면 예산의 압박을 받은 듯싶다. 제작사의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한 소품들이 예산을 줄이는 방법으로 쉽게 타협하는 부분이 밤 장면의 낮 장면 전환이다. 밤에 촬영하면 조명 등 준비해야 할 게 많지만 낮에는 밤보단 촬영 장비 등을 간소화할 수 있다.
남녀 주인공이 갈등을 빚게 되는 계기가 주차장 접촉 사고여서 가볍게 넘어가긴 했지만 대체 저 순간 왜 차량 접촉 사고가 났을까 싶은 상황이긴 하다. 주차장이 복잡한 것도 아니고 시나리오처럼 여진이 초점이 안 맞는 안경으로 주차를 이상하게 한 묘사도 없다. 밤도 아니다. 초점 안 맞는 안경으로 접촉 사고를 유발하게 한 여진의 상황을 생략한 건 밤 장면이 낮 장면으로 전환됐기 때문인 것 같다. 시나리오를 보니 닥터 봉이 주차장에서 여진의 티코와 부딪힐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영화만 봤을 땐 여진은 전혀 잘못이 없어 보인다.
닥터 봉(1995)
크랭크 인 : 1994년 12월 4일 강남 예치과
김혜수 첫 촬영 : 1994년 12월 11일
개봉 : 1995년 4월 29일
1995년 한국영화 흥행 종합 1위/서울 관객 376,443명
김혜수는 비슷한 시기 시작된 MBC 일요아침드라마 [짝](1994년 11월 20일부터 방영)과 병행했고 한석규는 1994년 10월 종영한 MBC 드라마 [서울의 달]과 [도전]을 끝내고 한 달여가 지난 뒤 [닥터 봉]의 촬영에 들어갔다.
김혜수는 비슷한 시기 시작된 MBC 일요아침드라마 [짝](1994년 11월 20일부터 방영)과 병행했고 한석규는 1994년 10월 종영한 MBC 드라마 [서울의 달]과 [도전]을 끝내고 한 달여가 지난 뒤 [닥터 봉]의 촬영에 들어갔다.
로맨틱 코미디도 싫고 기존 이미지에 기댄 배역도 싫어서 거절한 작품을 매니저를 봐주던 엄마가 상의도 없이 계약한 바람에 억지로 출연하게 돼서 작품에 무성의하게 굴었다는 김혜수의 촬영 일화가 한석규의 첫 영화, 1995년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인 [닥터 봉]의 명암이다. 이 작품이 너무 하기 싫었던 김혜수는 연기 활동하면서 처음으로 배역에 대한 최소한의 준비조차 하지 않은 채 작품이 요구하는 배역의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닥터 봉]! (손가락을 튕기며) 나는 개인적으로 로맨틱 코미디 좋아하지 않거든요. 황기성 사장님이 캐스팅 제의를 하시길래 안 하겠다고 했어요. 어느 날 이광훈 감독님이 우리 집으로 오셨어요. 난 할 수 없는 이유를 말씀드렸죠. 수긍을 하시더라고요. 그분 참 조용하고 쿨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계약을 했어요. 난... 중간에서 새됐죠, 뭐.
- 프리미어 1997년 1월호 인터뷰 중
그때는 전문관리자인 매니저 없이 엄마가 일을 도와주었는데, 일에 대해 엄마가 내 의지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새삼스럽게 화가 났다. [닥터 봉]도 내가 감독에게 거절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엄마가 도장을 찍은 거다. 현장에 가서 감독한테 말도 하지 않고, 정말이지 불성실하게 찍었다. 그때 스태프들은 뭐 저런 웃기는 애가 다 있나 했을 거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연기에 보내고 있는데 내 의지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불만이었지만, 엄마와 세련되게 대화 못하고 그렇다고 거칠게 반항하지도 못했다.
- 프리미어 2002년 8월호 인터뷰 중
제작사가 엄마를 설득해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영화죠. 이광훈 감독님이 고집부리며 집까지 찾아오셨는데, 로맨틱 코미디를 하기 싫은 이유를 진심으로 말했고, 감독님도 이해하고 돌아갔어요. 그런데 엄마가 제 사정도 모르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죠. 아, 내 의지대로 안 되는구나, 엄청난 자괴감을 느끼며 이 작품을 했고, 감독님과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너무 성실한 한석규라는 배우를 보면서 제 한계를 느꼈어요.
- 격주간 프리미어 2006년 10월 1일~10월 14일
김혜수의 [닥터봉] 출연은 김혜수 엄마가 계약해서 억지로 출연한 [잃어버린 너]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영화가 흥행 대박이 나고 청룡에선 여우주연상까지 받자 김혜수는 당황했고 반성했다. 이후 김혜수는 [닥터 봉] 때의 반성 의미로 동문인 양윤호에 끌려 [미스터 콘돔]에 출연했는데 김혜수가 정말로 피해야 할 로맨틱 코미디는 [미스터 콘돔]이었다.
https://cafe.daum.net/sodom1/yqs/1?listURI=%2Fsodom1%2Fyqs
▲ [닥터 봉] 시나리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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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가 분당 파크타운이었던 걸로 기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