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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게]  30년 경력 정보맨과 함께 본 헌트(대화 내용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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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2-08-14 23:11:30

안녕하세요 마음의양식입니다.

 

 

헌트와 관련해 흥미로운 시각과 의견을 소개하고자 글을 올립니다.

 

지난 10일 이정재 감독의 헌트를 제가 아는 어르신(70대 중반이신)과 함께 보았습니다.

이 어른은 저와 15년 이상 알고 지낸 인연이 있는데,  이 분이 제가 다니던 회사의 고문으로 오시면서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는 은퇴한 고위 공직자들의 경험과 정보를 활용하기 위해 고문 제도를 두고 있었습니다.  꽤 오랜 기간 제 부서에 자문을 해주셨고 제가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개인적 만남을 주기적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지만 놀랍게도 이 분은 1970년대에 중앙정보부(일명 중정, 남산, 80년대는 안기부, 90년대 국정원으로 개칭)에 공채로 들어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을 거쳐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까지 현역으로 근무하시다 퇴직한 그야말로 정보 분야의 산증인이었습니다.   해외정보 분야에서 30년을 일했고 외교관으로 주변 4대 강국 중 하나에도 근무하신 경력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서울 근교 전원도시에서 한가로운 은퇴 생활을 즐기고 계십니다. 

 

 마침 제가 지난 주 전화 통화에서 안기부를 무대로 한 영화 헌트 개봉 소식을 말씀드리고 관람 의사를 밝히자 "그럼 나도 함께 봐도 될까?  간만에 서울 나들이도 하고..."하셔서 코엑스 메박 4관으로 예매를 했습니다.  내심 전직 정보맨이 1980년대의 안기부를 다룬 영화를 어떻게 보실지 궁금한 점도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영화를 함께 관람하고 식사와 차를 마시면서 헌트에 관한 그 분의 감상평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문답형식으로 정리한 대화 내용입니다. (다음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들어가니 조심해 주세요)

 

 

 

 

 

*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질의응답 4개만 올립니다. 

 

Q:  영화 시작 부분에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 교민들의 시위, 그리고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이 나오는데 이러한 내용들은 얼마만큼 사실에 근거한 것인가요?

 

A: 영화의 배경이 83년이지? 내 기억으로 전두환 대통령 미국 방문은 1981년이었어. 그 때 회사(안기부)가 엄청 긴장해서 미국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가지 돌발 상황을 경호실과 같이 준비했거든.  당시 대통령은 미국의 새 대통령 레이건과 빨리 안면을 트고 한미관계를 정상화하는게 중요했어. 영화에 보면 교민들 시위하는거 나오잖아. 실제로 그렇게 과격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시위가 군데군데 일어났던 건 맞아.  암살 기도는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캐나다에 살고 있던 반정부 인사(교포)가 청부 업자들을 고용해서 암살 계획을 짰는데 실제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어. 그 반정부인사는 북한 쪽과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캐나다 정부에 자수했어. 그러니까 총격전 이런건 보기에는 좋지만 영화적 장치지.

 

Q: 당시 안기부 내부 상황은 어땠나요? 부장이나 차장같은 최고위직 묘사는 얼마나 현실에 가까운가요?

 

A: 1983년 당시 회사는 보안사(국군보안사령부)에 밀리던 분위기를 조금씩 만회하던 상황이었어. 사실 구성원의 자질이나 능력은 회사가 보안사나 경찰을 압도하고도 남아. 단지 1979년 대통령 시해 사건에서 전임 부장이 대통령을 쐈기 때문에 역적으로 몰려서 힘이 빠졌던 거지 83년부터는 원래의 힘을 회복하고 있었어.  회장(안기부장)은 영화 속 부장(송영창 님이 연기했던 강부장)처럼 부패한 사람은 아니었어. 외무부장관을 했던 외교관 출신인데 두뇌회전이 빠르고 상사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주는 명석한 타입이야.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3년이나 자리를 지켰고 나중에 국무총리까지 올랐어요. 사실 회장이 한 달에 쓸 수 있는 정보비가 (정확한 액수는 모르지만) 대략 5천만원이 넘어. 기업인들한테 돈을 받을 필요가 없지. 그리고 국내 파트와 해외 파트를 총괄하는 차장들(이정재-정우성)이 사사건건 충돌하는데 영화적 과장이라고 보면 돼. 사실 우리(해외 파트)는 다른 부서(국내 파트)가 뭘하는지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아. 철저하게 분업화된 시스템이야. 차장들이 개인적 갈등이 있을 순 있겠지만 업무를 놓고 충돌한다는 건 있을 수 없어. 그리고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차장들이 실제보다 너무 젊어보이고 근사해(웃음).

  

Q: 영화에 보면 일본에서 북한 고위직 망영 공작하다가 실패해서 총격전 벌이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나요? 


A: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해외 팀이 한국 대사관과 협력해서 비슷한 일을 한 사례들이 있어. 자세하게 밝힐 순 없지만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들도 있어. 그런데 일본처럼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외교적으로 중요한 나라에서 그런 무리한 시도를 하는건 성공하더라도 뒷감당이 안돼. 일본 정부와 시민단체가 주권침해를 이유로 항의하면 사과밖에 대처 방법이 없거든. 1973년인가 김대중 대통령이 동경에서 납치되었을 때 회사가 개입한게 드러나서 한국-일본이 단교 직전까지 갈 정도였어.  총격전 부분은 멋지게 찍었던데 그냥 오락거리로 봐야겠지. 현실에서는 아주 조용하게 움직인다고 보면 돼. 그리고 차장이면 회사의 넘버투인데 현장을 지휘하고 총까지 휘두르는 건 역시 영화적 상상력이죠. 사실 국장 급만 되어도 현장에는 잘 안나가. 다 데스크 근무지(웃음).

 

Q: 안기부 고위직이 북한의 고정간첩(동림)이라는 설정과 전두환 암살 그룹의 핵심 멤버라는 설정은 매우 흥미로운데 여기에 관해서는 어떻게 보셨어요? 

 

A: 옛날에 미국이나 영국 정보부 고위직에는 소련과 내통하면서 정보를 팔아먹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는 하위급이나 실무직은 모르겠지만 최고위층이 고정 간첩으로 암약한다는건 상상이 안되지. 일개 직원을 뽑는데도 신원조사를 사돈의 팔촌까지 하고 주기적으로 모니터링을 하는데 국가의 가장 중요한 기밀을 다루는 차장급이 고정간첩을 한다는 건 영화적 흥미를 높이기 위한 설정이라고 봐요. 주인공들의 직급을 고위직이 아닌 중간 관리자 급으로 두었으면 휠씬 더 현실성이 살아나지 않았을까 생각해. 그리고 대통령 암살을 모의하는 그룹도 나오던데 정확한 실체는 알 수 없지만 전두환 대통령 집권 전에 군부 내 반대세력이 그런 모의를 했다는 정보는 언론보도도 되었어. 전 대통령보다 군경력이 앞서는 선배 장성 그룹이 하나회 독주를 견제하려고 전두환을 제거하고 미국과도 협력을 타진했다는 이야기인데 주도한 사람들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초기에는 그런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아. 작가가 아마 그런 부분을 조사해서 영화에 반영한 것 같아. 하지만 1983년에는 대통령의 통제력이 확고해지면서 그런 움직임이나 시도는전혀 없었다고 봐야겠지. 

 

그밖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녹음은 하지 않아서 기억나는대로 옮겨 보았습니다. 그 분의 총평은 현실성이 좀 떨어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액션이나 볼거리들이 풍부했다고 평했고 특히 당시 시대상을 묘사하는데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다는 느낌을 전했습니다. 정보기관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면서도 당시 대학생들이 술집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모습도 보여준 점이 균형을 잡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고도 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져서 이만 줄입니다. 좋은 밤 되세요 :-)

님의 서명
"It's not who I am underneath, but what I do that defines me."

from 'Batman Begins'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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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2-08-13 00:49:47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WR
1
2022-08-13 00:56:01

감사합니다 

2
2022-08-13 02:12:45

이야... 굉장한 분과 영화를 보셨군요. 듣기 어려운 실제 관련 인물의 얘기를 듣고 나니 더욱 영화가 생생해지는 기분입니다.

WR
2022-08-13 12:15:38

네 감사합니다 ^^ 아무래도 시대적 역사적 진입장벽이 있는 영화라 그 시대를 산 분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1
2022-08-13 07:39:55 (222.*.*.252)

와~ 단체 미팅해서 대화의 장이라도 마련하면 재밌겠네요

WR
2022-08-13 12:16:52

저도 그런 상상해 보았네요..... 말을 아끼는 분이라 성사되긴 어렵겠지만요 ^^

1
2022-08-13 11:42:40

오... 이런 귀한 이야길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WR
2022-08-13 12:17:3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한국현대사를 다룬 영화가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1
2022-08-13 16:23:22

노신영 시절이군요. 외무부 장관 출신의 최초 문민 안기부장.

그러나 후임이 장세동…

WR
2022-08-13 16:31:40

한때 전두환 후계자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반기문의 멘토로도 유명하죠...

 

1
2022-08-13 21:46:03

와우 정독했습니다~~ 좋은내용 공유 감사합니다

WR
2022-08-13 21:51:36

별 말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1
2022-08-22 13:21:43

늦긴 했지만 너무 잘 봤습니다.

좀 더 생생해지는 느낌이네요.

WR
2022-08-22 13:22:3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1
2022-10-03 10:24:30

소중한 경험담에 감사드립니다.

WR
2022-10-03 13:36:09

아닙니다. 오히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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