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위대한 유산(2003) - 볼 때마다 찝찝해지는 장면 하나
뭘 해도 됐던 2003년 한국영화 르네상스 하반기를 장식한 임창정, 김선아 주연의 [위대한 유산]. 2003년은 주마다 웰메이드 흥행작이 터진 관계로 [위대한 유산]의 흥행은 그해 한국영화 흥행 결산에서 다소 묻힌 감이 있다. 2003년 10월 24일 개봉하여 전국 230만명(통합전산망 통계로는 2,251,491명)을 동원하며 2003년 가을 배급 경쟁에서 선방했다. [위대한 유산] 보다 더 흥행한 [황산벌]과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도 2003년 10월에 개봉했다.
2002년 [예스터데이]로 영화에 데뷔한 김선아는 비록 영화에서 시작은 미미했지만 같은 해 나온 [몽정기]의 성공, 2003년 특별출연한 [황산벌]에서의 호연, 투톱 주연의 가능성을 보여준 [위대한 유산]의 연이은 성과로 영화계에서 자리를 잡았고 한동안 영화배우로 활약했다. [잠복근무]까지 끝낸 뒤 2005년 출연한 [내 이름은 김삼순]은 5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이었다. 김선아가 몸을 사리지 않았던 [위대한 유산]의 연기는 그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로도 인정됐다.
[위대한 유산]은 백수 남녀가 일상에서 부딪치는 소소한 일화에 출생의 비밀과 뺑소니 교통사고 목격자로 범죄조직에 쫓기는 상황을 무작위로 섞은 작품이다. 고전 제목을 차용한 제목의 의미도 모호하고 전개도 어수선했지만 백수 생활의 궁핍한 현실을 서민극의 형태로 재치 있게 녹여 일상적 공감을 안겼고 배우들의 코미디 호흡도 훌륭했다.
다만 중반 넘어 범죄조직에게 협박 당하는 남녀 주인공의 상황이 코미디로써 너무 나가서 개봉 당시에도 아슬아슬했고 보고 나서도 찝찝한 기억으로 후유증을 남긴다. 요즘 같으면 자체 검열로 삭제됐을 장면이 아닐까 싶다. 문제의 장면을 보자.
창식(임창정)과 미영(김선아)은 서울 변두리 지역 청년백수로 동네에서 사사건건 마주치며 시비가 붙던 중 어느 날 밤 우연히 뺑소니 교통사고를 목격하게 된다. 이튿날 목격자에게 사례금을 준다는 현수막을 보고 제보를 했다가 도리어 범죄조직의 그물망에 잡힌다. 처음엔 극적으로 탈출했지만 이후 목격자의 위험에 노출되면서 엄청난 봉변을 당한다.
그 봉변이란 불법 비디오 촬영. 승용차 트렁크에 실려온 창식과 미영. 미영은 목격자의 입막음 용도로 성폭행 비디오를 찍게 될 위기에 처한다. 더 이상 코미디가 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코미디로 접근하는 극의 시선이 굉장히 불쾌하다.
성폭행 비디오를 찍는 상황. 우두머리는 세 명의 남자 조직원 중에서 누가 비디오로 담을 성폭행을 할 거냐고 묻는다.
강간에 경쟁이 붙는 상황을 코미디로 처리한 뜨악한 전개
우두머리의 간택에 바로 바지를 내리는 조직원. 꽃뱀 직분인 여자가 미영을 묶고 있고 그 앞에 바지를 내린 똘마니의 모습과 촬영하는 끔찍한 상황이다.
강간 비디오를 찍히는 상황에 몸부림치는 미영
그 순간 온몸이 묶인 창식이 차악의 방법을 제시한다.
"제가 하는 게 낫지 않나?"
미영에게 내심 마음이 있었던 창식은 이런 상황에서 마음을 고백
어차피 강간 당하는 거 낯선 깡패들한테 당하는 것보다 그나마 알고 있는 사람에게 당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논리. 개봉 당시에도 일부 지면에서 쓴소리가 나왔던 장면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구호도 아니고, 이왕 성고문 당하는 거 즐기면서 해야겠다는 오기로 열심히 하는 [여명의 눈동자] 원작의 성고문 장면도 겹치는 암담한 묘사다.
촬영 당시 임창정은 이 장면에서 다양한 애드리브를 했는데 그중 하나는 "저 여자 병 있습니다. 이도 있고요."도 있었다. 그러면서 온갖 벌레들이 다 나왔고 촬영도 했지만 여자를 너무 더럽게 만든다는 이유로 임창정의 제안은 반려됐다.
그 순간 창식과 미영을 감금한 범죄조직의 움직임을 포착한 경찰들
깡패 우두머리의 순정을 건드린 창식의 임기응변으로 미영은 똘마니가 아닌 창식에게 강간을 당하게 될 상황에 처한다.
"내가 하는 게, 그래도 이 사람들하고 하는 거보다 낫잖아."
미영 입장에서도 과연 그럴까?
점입가경
미영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선처를 호소하는 창식
그 와중에 사랑 고백
김선아가 누워 있는 테이블 조명이 무척 뜨거웠는데 처음엔 다양한 색상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 테이블이 제안됐으나 화면이 너무 요란스러워질 것이 우려되어 한 가지 색상으로 정했다.
계속 촬영이 되고 있는데
강간 직전에 경찰에 체포되어 이 끔찍한 장면이 마무리된다.
이후 창식과 미영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미영은 엄마가 운영하는 비디오 대여점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서 동네 남자들의 지분거림을 견뎌야 한다.
미영도 창식에게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창식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중국집 배달원의 영화관 데이트를 받아들인 미영
미영이 다른 남자와 데이트는 하는 것이 못마땅한 창식은 창식답게 대처한다.
질투심 유발에 수치심 유발로 대응?
머리 한대 맞고
두 대 맞고
세 대 맞는 맞아도 싼 창식
보고 있기가 화끈해지는 창식의 고백과 순정
두 사람의 관계는 코미디답게 결국 맺어지고 끝이 나긴 하지만 중반 이후 성폭행 비디오 묘사나 실언, 협박 과정이 코미디로 보기엔 너무 나가서 거부감을 일으킨다. 잦은 케이블 편성에서 자주 넘기는 장면이다.
캡처: d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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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