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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부탁 하나만 들어줘 (A Simple Favor)(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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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1-10 20:30:49


총알탄 나를 찾아줘



[스포일러 있음] 

남편과 사별한 후, 독신으로 아들 마일스를 키우는 스테파니(안나 켄드릭). 그녀의 취미는 일상을 브이로그로 방송하는 것이다. 어느 날 스테파니는 마일스의 학교에 갔다가 범상치 않은 에밀리 (블레이크 라이블리) 를 만난다. 자기 아들인 니키한테 덕분에 가랑이 많이 넓혀줘서 고맙다고 입 터는 걸 보면 사실 범상치 않은게 아니라 성격에 문제 있어 보이는 여자다. 그러나 전업주부인 스테파니에게 그녀는 같은 학부모로서 동경의 대상이다. 패션계에서 일하고, 신뢰받으며 히트 소설을 쓴 남편 숀 (헨리 골딩) 도 있는데다 으리으리한 집까지 있으니. 정작 에밀리에게는 스테파니가 부러워하는 모든 요소들이 고민거리다. 정반대 스타일이지만 각자 걱정거리가 있다보니 두 사람은 곧 친구가 된다. 그리고 어느날 에밀리는 스테파니에게 아들 니키를 좀 맡아 달라는 부탁을 한 후 실종된다. 스테파니는 불안한 기운을 느끼며 에밀리를 찾기 시작한다.




12월 중순 경에 폴 페이그 감독 신작 <부탁 하나만 들어줘>를 열명 좀 넘는 되는 관객들과 봤다. 내가 사는 동네 극장까지 내려오진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있길래 좀 놀랐다. 작품은 다시 벨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했다. 길리언 플린 작가의 <나를 찾아줘>와 함께 가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소재로 한 일명 '도메스틱 스릴러' 소설 장르의 쌍두마차 격이라고 한다. 얘길 들어보면 원작소설은 <나를 찾아줘>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탄탄한 스릴러라기 보다 섹스와 불륜, 살인 등 자극적인 설정을 버무리는 솜씨가 좋아 인기를 끈 것 같다. 그래서 주로 R등급의 좋은 코미디를 만들던 폴 페이그 감독이 이 작품을 택한 점이 재밌었다. 감독이 새로운 영역인 스릴러에 도전하려고 절치부심하는 중에 원작에서 가져왔을 자극적 설정들이 유머로 기능할 가능성도 봤다고 추측됐기 때문이다. 어쩌면 원작 소설이 유머를 많이 내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다 본 후에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서스펜스 스릴러로서는 실망스러웠다.



엄밀히 말해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코믹 스릴러, 혹은 코미디라고 생각할 때 좋았다. 이 말은 등장인물들을 비롯한 전체적인 연출들이 감독의 코믹한 전작들과 큰 차이 없다는 얘기다. 안나 켄드릭이 연기하는 푼수끼 가득한 스테파니는 자신감이 부족해서 제 능력 발휘를 못하는 <스파이>의 멜리사 매카시와 비슷하다. 스테파니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점점 성장하는데 여기에는 에밀리가 여러모로 도움을 준다. 처음엔 에밀리가 자기 입장에서 그저 보기 거슬려서인지 스테파니에게 일일이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령하듯 가르친다. 그러다 스테파니에 관해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자 조금 더 애정을 갖게 되고, 어느새 먼저 장점을 찾아 격려해 주기도 한다. 덕분에 스테파니는 본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자 에밀리의 가르침 덕에 예상치 못하게 전문성을 발휘하고 성장해간다. 감독의 장기인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감각이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작품을 보면 자연스럽게 일본 아이돌 AKB48 멤버인 미야와키 사쿠라의 '여자력' 관련 견해가 생각난다.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여자력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부탁 하나만 들어줘> 에서 '맘들' 이 하는 일로 규정해볼 수 있겠는데, 미야와키 사쿠라는 단호하게 이런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여자력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요리나 청소를 뜻한다면 그건 단순히 여자라서가 아니라 인간이면 잘할 수 있어야하는 인간력에 가깝다고 본다' 는 것이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맘들이야말로 인간력의 최고치를 달성하고 있으며 스테파니 또한 '최고치 인간' 이기에 잘 할 수 있다고 본다. 가정주부에 대한 재밌는 관점이다.



그런데 이 방식이 스릴러로 보면 독이다. 작품은 이야기를 어두운 쪽으로 이끌기 위해 몇 번씩 방향을 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릴러, 혹은 치정극으로서 자극적이고 어두운 맛이 살지 않는다. 스테파니의 성장서사가 굉장히 바람직하다는 느낌을 주는 탓이다. 스테파니는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스스로를 발전시켜 어둠의 중심으로 접근할만큼 과감해진다. 에밀리가 사라진 이유를 찾는 와중에 그녀의 남편인 숀과 가까워져 장례식 기간 중에 섹스하고는 가정까지 꾸린다. 그런데 이런 행동들이 위험한 단계를 향한다기 보다 마치 흥미로운 모험담처럼 느껴진다. 사실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프랑스의 명감독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55년작인 <디아볼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인용하는 작품이다. <디아볼릭> 도 내용이 만만찮게 막장이며, 안나 켄드릭의 대사 중에는 대놓고 지금 디아볼릭 찍냐며 외치는 순간도 있다. 게다가 프렌치 팝이 전체적인 사운드트랙으로 흐른다. 물론 이는 폴 페이그 감독의 취향이겠지만 일단은 프랑스의 명감독님이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스테파니의 활극을 보고 있으면 <디아볼릭> 보다는 '어두운 버전의 <땡땡의 모험>' 처럼 느껴진다.


* 무시무시한 욕조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디아볼릭>.

여기에 비벼볼만한 건 5년 후에 나온 <사이코>의 샤워실 장면 뿐이다. * 



물론 작품이 인물 간 대사와 메타포를 통해 스릴러 장르가 지닌 어두운 분위기를 얼마간 그럴듯하게 조성하긴 한다. 스릴러답게 인물들을 의심해볼만한 단서도 여럿 뿌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 이야기를 진행시키려는 용도로만 늘어놓은 수준이다. 중후반부에 회수되는 단서들도 영화적인 연출력을 발휘해서 맛을 살리기 보단 별 임팩트 없이 마무리짓곤 한다. 이를테면 후반에 갑작스러운 실종과 관련해서 밝혀지는 에밀리의 과거는 온전히 스테파니의 추리로 설명된다. 그 당시 에밀리가 느꼈을 감정마저도 스테파니가 추측해서 단정짓는 등 그녀의 '뇌피셜' 도 들어가 있다. 스릴러적 재미를 추구하려 했다면 이런 장면들에서 당사자의 입장이 아님을 암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진실과 거짓의 모호함을 부각하는 입체적인 재미를 줄 수도 있었다. 이런 모호함이 <부탁 하나만 들어줘>가 오마주를 바쳤던 55년작 <디아볼릭>의 매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스테파니가 추측한 에밀리의 감정이 맞겠거니 하는 식으로 대충 뭉개고 넘어간다. 


 

가까워진 에밀리와 스테파니에게 잠시나마 레즈비언적 기운을 부여해주는 장면도 그렇다. 두 사람이 어두운 기억을 공유하자는 주제로 대화를 하다 스테파니가 괴로워하자, 에밀리가 그녀를 진정시키려 키스를 한다. 폴 페이그 감독이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좋은 코미디물을 만들어 왔음을 생각해보면, 마치 수위 높고 진지한 동성 키스 장면으로 연대를 표현하면서 나름의 장르적 변화를 드러내는 모습처럼 보인다. 정치적 올바름, 페미니즘 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동시에 답이 없는 만듦새를 가진) 리메이크판 <고스트버스터즈> 를 통해 이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 관객이 있다면 여기서 꽤나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은 이후로 딱히 레즈비언적 정서를 이용하지도 않으며, 중후반을 보고 있으면 굳이 뭐하러 앞에서 키스까지 보여줬나 싶을 정도다. 그런 장면 없이도 에밀리가 지닌 마성의 매력은 충분히 전달됐기 때문이다. 작품은 이런 방면에서 단순하고 또 오버도 한다.



후반부를 생각하면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결국 이야기가 아니라 장르의 반전을 보여주려고 그렇게 분위기를 잡았나 싶다. 본의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스릴러인척 굴다가 실은 코미디였다며 보는 사람 깜짝 놀라게 하려고 말이다. <고스트버스터즈>로 폴 페이그 감독을 좋아한 관객들이 있다면 이 작품 속 안나 켄드릭과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키스 장면을 굉장한 기만이자 배신감으로 느껴 치를 떨지 않았을까. 두 여자가 연대하기는 커녕 후반부로 갈 수록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여자의 적인 여자' 식의 이야기로 나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 영화판도 철저하게 에밀리와 스테파니가 독한 말로 신나게 티격태격 하고, 기왕 싸우는 거 숀에게도 불똥 튀겨서 쭈구리로 만드는 풍경을 찍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 같다. 선과 악에 대한 탐구 그런 거 없다. 그러려면 두 여자가 엎치락 뒤치락 하며 서로를 압도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했을테고, 그 점이 후반부에서 '네가 그렇게 나올 줄 알고 난 이걸 준비했지' 식으로 꼬아버리는 막장 전개에 이른 이유일 것이다. 

 


이런 방식은 스릴러라는 장르가 주는 인상과 많은 충돌을 일으킨다. 하지만 블랙 코미디로 생각하면 잘 어울리며 또 폴 페이그 감독답다는 생각이 든다. 키스 장면을 통해 사람 낚으려는 태도부터 그렇지만,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자주 거짓말을 하거나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해 헤프게 이야기 한다. 물론 그 태도 속에도 분명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은 있다. 하지만 그 진심이 오해받자 이들은 자신들이 벌인 짓은 생각하지 않고 일순간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가 '서스펜스 스릴러' 가 아니라 '서스펜스 코미디' 로서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보고 있으면 에밀리와 숀은 뭐가 저리 억울하다고 싸우기 바쁜지, 스테파니는 두 사람에 비하면 그나마 바람직한 편이지만 굳이 저렇게 영웅인척 할 필요 있을까 싶어 웃음이 나오기 때문이다. 작품이 보여주는 풍경에는 냉소가 담겨 있다. 한 등장인물은 "걔 과거를 들쑤시고 다니면 끔찍한 걸 마주하게 될 거다" 말하지만, 감당못할 것처럼 보였던 어둠의 핵심에는 생각보다 나약한 사람들의 전전긍긍이 있다. 그리고 그 나약함으로 인해 벌어진 끔찍한 일을, 지나칠 정도로 두려움을 모르는 푼수끼 넘치는 가정주부가 해결한다. 



<부탁 하나만 들어줘>은 이 어두운 일을 스릴러로 보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도리없이 코미디가 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작품은 <나를 찾아줘> 보다는 2% 모자란 <죽어야 사는 여자> 에 가까워 보인다. 이야기 전개방향을 포함해 여러가지 의미에서 말이다. 스릴러로서 크게 만족감을 주지는 못했기에 폴 페이그 감독이 새로운 면모를 보여줬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감독의 전작이 <고스트버스터즈> 리메이크 판이었음을 생각하면 <부탁 하나만 들어줘>는 분명 잘 만든 작품이다. 그는 잘 하는 분야에서는 여전히 실력유지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웃기다.



p.s.


1) 그러고 보니 <부탁 하나만 들어줘> 에서 문제를 유발하는 금액인 4백만 달러가 큰 돈이기는 하다. <보헤미안 랩소디> 에서도 이 4백만 딸라 때문에 멤버들 간의 불화가 커지지 않았나. <부탁 하나만 들어줘> 속 4백만 달러는 한화로 계산해보니 44억 9천 6백만원 나오네..



2) 두 여배우의 연기가 돋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숀을 연기한 헨리 골딩 배우도 인상적이었다. 허우대는 멀쩡하고 가장 진지하게 구는데 제대로 뭐 하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하게 헨리 골딩 얼굴 보면 웃음부터 나온다. 물론 보면서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작가나 교수가 타이틀 잃으면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보여서다. 뭔가, 작가나 교수가 저러면 그들보다 이하에 있는 나는 도대체 얼마나 쓸모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침울해졌다.



3) 촬영감독인 존 슈왈츠먼은 <쥬라기 월드>, <북 오브 헨리> 에 이어 <부탁 하나만 들어줘>도 2.00:1 유니비지엄 화면비로 촬영했다. 오래 전 RKO 픽쳐스에서 'RKO 스코프' 란 이름으로 이 화면비를 썼지만 (프리츠 랑 감독의 <도시가 잠든 사이에>와 <이유없는 의심>이 RKO 스코프로 촬영된 바 있다.) 유니비지엄이란 단어는 비토리오 스토라로 촬영감독이 고안한 개념이다. 

 

물론 그 분이 2.35:1로 찍은 자기 과거 작품 양 옆을 잘라다 2.00:1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기에 사실 이 화면비를 별로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확실히 산업적인 부분에서 이 화면비를 많이 밀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의 영향인가 싶은데, 앞으로 1.85:1 비스타비전 만큼 많이 보게 될 화면비율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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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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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1 17:50:47

물가상승률 감안하면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나온 [400만 달러]는 훨씬 큰 금액이죠~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란 의미로 이름 붙여진 '600만불의 사나이'를 2/3만큼(?) 만들 금액이니까요~~

WR
2019-01-11 17:54:38

아 참. 시대배경 생각 안 하고 있었네요. 저 금액은 부탁 하나만 들어줘 한정해서 적어놔야 겠네요.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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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1-11 17:59:09

와... 정성후기 잘 읽었습니다. 영화 제목만 보고는 코믹인가 했는데 스릴러라면 블랙코믹 정도 되나보군요. ^^

디아볼리끄와 싸이코때문에 히치콕이 이런 편지를 받았다고 하죠.
제 딸이 (끌루조의) 디아볼리끄를 보고는 목욕을 안하려 하더니, 이제는 당신의 싸이코를 보고 샤워도 안하려 한다.
히치콕의 답장: 드라이클리닝을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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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1 18:59:43

저는 이걸 보면서 김이 좀 샌 게...

중간에 나오는 장면(자크를 열면서 확인하는 장면)에서 점의 위치를 알아채면서 

이후의 이야기가 다 그려지더군요~ 

그리고 나름 분위기 있게 끌고 가다 맨 마지막 집 앞에서 뽀대 안 나게 차에 쾅~!! ㅋㅋ

매력적으로 끌고 갔으면 고상하게 끝마무리를 했어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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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1 20:56:46

여주 매력은 잘살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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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2 01:48:40

 전 코미디영화로봐서 재밌게 봤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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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2 02:30:23

18년 뜬금포 흥행 배우 1위는 헨리 골딩 같아요. 이거랑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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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2 02:37:16

후반도 괜찮았지만 중간 까지가 마음에 쏙 들어서 그 기조로 끝까지 갔으면 하는 마음에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재미있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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