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극장] 대기업들의 극장사업 흥망성쇠 (1)
*저는 삼성영상사업단에서 한 때 극장운영을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요즈음 멀티플렉스가 일반화된 시대를 맞아,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만일 IMF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이 멀티플렉스 시대는 조금 더 빨리
도래했을 것이고, 그 주인들은 지금과는 좀 달랐을 겁니다.
당시 그 흐름의 가운데 있었던 탓에 지켜봤던 대기업의 극장사업의
흥망성쇠를 회고해 볼까 합니다.
(아래 소개된 극장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을 약간 고칩니다)
아시다시피 IMF맞기 전 96-97년은 한국경제의 거품이 극에 달했던 시기죠.
이 때 대기업들이 남아도는 돈을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 말에 혹해
너도나도 문화사업에 투자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국내 4대기업이던 삼성, 현대, 대우, LG가 모두 영화와 대중음악에
돈을 쏟아부었는데, 모두 영화제작과 더불어 안정적인 방구미(배급)를 위해
극장사업을 병행합니다. 당시만해도 전국체인망이 없고 각 지역 배급업자가
마음대로 영화를 주고 빼며 장난을 치던 시기라, 자사 영화의 안정적 흥행을
위해서는 직영극장이 꼭 필요했거든요.(결국 대규모 극장체인이 자리잡으면서
지방 토호격인 이 배급업자들은 몰락했죠.)
그래서 삼성은 서울극장 3,7관과 대전의 아카데미 극장을 임대하고
자체 브랜드 멀티플렉스를 만들기 위해 ''씨넥스''라는 브랜드명을 만듭니다.
첫번째 극장으로 당시 이건희회장의 지시하에 진행된 삼성본관-생명빌딩
지하 리노베이션에 극장을 집어넣습니다. 이게 씨넥스 1호였죠.
지금도 전설의 극장으로 회자되는 이 씨넥스 1호는, 당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던
기사분을 해외연수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미국에서 극장설계 전문가를 데려와서
만들어낸 당대 최고의 시설과 사운드를 자랑하던 극장이었습니다.
타 극장의 세 배가 들어간 프리앰프, 국내 최초의 7.1채널 (97년 당시!)SDDS 사운드
프로세서, 최고급 스크린, 국산보다 세 배 비싼 스페인제 피가레스 의자, 최초로
도입된 전자식 매표 시스템...개관전 3개월의 직원 서비스교육까지 당시로는 혁신
적이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씨넥스 2호(5개관)는 분당에 부지를 확보하고 건설에 들어갑니다.
한편, 대우는 씨네하우스를 인수하고, 역시 멀티플렉스를 만들기 위해
새로 건설되는 코엑스 지하에 큰 공간을 확보합니다. 15개 이상의 극장을
넣어 동양 최대의 멀티플렉스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어었죠.
하지만 당시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은 지하철에서 10분이 넘게 걸리는 위치의
불리함 때문에 절대 장사가 안될거다, 대우가 바보짓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현대는 씨네플러스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압구정동에 2개관을
우선 개관합니다. 여기는 씨넥스에 자극받아 국내에서 두번째로
SDDS를 넣는 등 씨넥스를 철저히 벤치마킹해 만들어집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씨넥스 이경섭 실장님(한국 AV매니아의 1세대쯤 되시는
선구자이시죠.)이 이 씨네플러스에 대해 한 말씀 :
"씨넥스 따라가려고 현대애들이 돈은 많이 쳐 발랐는데, 소리를 몰라.
한 번 가서 봐. 돈만 많이 들인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거 알게될테니까"
그래서 일반관객인양 찾아갔습니다. "개미"(ANTZ)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씨넥스에서 본 예고편에서 리복 운등화가 개미 위로 지나갈 때
거대한 굉음이 들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개미 눈으로 본 거니까요)
근데 씨네플러스에서 그 장면은, 너무나 맥빠진 소리를 들려주더군요.
그 순간 씨넥스의 사운드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또한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극장은 스크린비가 맞지않아 2:35대
1 화면비 영화를 상영하면 좌우가 잘려나갑니다. 서울, 대한등도 마찬가지이죠)
마지막으로 LG는 스카라를 임대했는데, 가장 먼저 발을 빼면서 더 이상
문화사업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멀티플렉스 계획이 없었죠.
(두번째 글에서 이 대기업들의 극장체인이 어떻게 몰락하고,
운명이 바뀌는가를 소개해 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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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씨넥스는 제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극장입니다. 씨넥스에서 봤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평생 못잊을 듯하네요. 지금 아주아주 가끔씩 시사회도 하지만, 삼성생명 아줌마들 교육장소로 쓴다고 하던데, 정말 극장 시설이 아깝습니다. 그나마 옥의티로 지적받던 스크린도 다시 설치할 예정이었다던데, 정말 돈만 있으면 씨넥스를 인수하고 싶네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