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무지하거나 혹은 거짓말이거나 - 4 (들었다는 착각)
음악을 감상하는 방식이 디지털 스트리밍으로 바뀌면서 오디오 업체들은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여러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아래 동영상은 모 오디오 업체가 개최한 시연회입니다.
디지털 스트리밍 환경에서 전원 노이즈와 전자기파 제거 등을 통해 음질 향상 효과가 있다는 장비들을 선보이는 자리였죠.
https://youtu.be/EEpPobBUC8A?t=1
동영상에서 사회자는 전원 노이즈 제거 장치(BOP Quantum Ground. 400만 원대), 오디오 전용 네트워크 허브(Synergistic Research Ethernet Switch UEF. 370만 원대), 그리고 오디오용 랜 케이블(Tellulium Q. 150만 원대) 등등의 장비들을 하나씩 연결해가며 그에 따라 음질이 얼마나 향상되는지 체감해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연회 참석자들은 그런 기기들을 사용함으로 정위감과 분리감(?)이 좋아졌다고 하고 사용 전에는 가수가 리허설하듯(대충?) 불렀다면 전원 노이즈 제거 장치를 사용하니 제대로 부른 느낌이라고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죠.
그런데......
참가자들이 느꼈다는 음질 향상은 정말 그 기기들이 만들어낸 것일까요?
유튜브에서 해당 시연회 동영상을 다운로드한 뒤 사운드를 추출해 분석해 보겠습니다.
**유튜브는 업로드 과정에서 자체적인 인코딩을 통해 파일을 압축하므로 원본 음원보다 음질이 떨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음질 하락은 이번 비교엔 의미가 없기 때문에 변수에서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왜 인코딩 과정의 음질 하락이 이번 비교에서 의미가 없는지는 이 글을 끝까지 읽어보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시연회에선 여러 곡을 테스트곡으로 재생했는데 그 중 처음에 들려준 셀레나 존스의 You don't bring me flower란 곡을 살펴보겠습니다.
동영상 1분 42초와 15분 26초에 각각 한 번씩 음질을 비교해 보라며 이 곡을 들려주는데 "Now after lovin' me"라는 가사가 나오는 지점만 확대해서 비교하겠습니다.
아래 그림은 전원 노이즈 제거 장치나 오디오 전용 네트워크 허브 등을 사용하지 않은 순정(?) 상태의 사운드입니다.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는 BOP Quantum Ground(이하 BOP라 호칭)라는 전원 노이즈 제거 장치를 연결한 뒤의 사운드죠.
.....차이가 보이시나요?
한눈에 차이를 비교하긴 어려우실 테니 가수가 'Now'란 가사를 노래하는 지점에서 음압(≒볼륨)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아래가 BOP를 장착하지 않은 순정 상태에서 해당 지점의 오른쪽 채널 음압을 체크한 것이고
아래는 BOP를 장착한 상태에서 음압을 체크한 겁니다.
2dB 이상 볼륨이 커진 걸 확인할 수 있죠?
정말 BOP라는 기기가 이런 효과를 가져온 걸까요?
시연회 동영상의 14분 38초 지점을 보시면 사회자가 그라운드 노이즈에 대해 설명합니다.
가정용 전기는 60Hz의 교류로 공급되기 때문에 60Hz의 정수배(2배, 3배, 4배.....)에 해당하는 주파수에서 고조파(=하모닉스)가 발생한다는 거죠.
사회자의 설명에 따르면 60Hz의 교류 전원이 일으키는 고조파(120Hz, 180Hz, 240Hz......) 노이즈가 음악 감상시 저음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하며 BOP 제품은 그런 전원 노이즈를 제거해서 음질을 향상시켜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아래 그림의 오른쪽 빨간색 원으로 표시한 그래프는 순정 상태에서 들리는 소리의 주파수 성분을 분석한 겁니다.
그러니까 해당 그래프는 앞서 음압을 체크한 지점에서 저음부터 고음까지 어떤 주파수가 얼마만큼의 음압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죠.
그리고 아래 사진은 BOP를 연결한 상태에서의 주파수 성분을 보여주는 것이고요.
시연회 사회자는 3000Hz 정도까지를 전기 고조파라고 설명합니다.
하모닉스는 배수가 올라갈수록 급격하게 에너지가 작아지기 때문에 교류 전기 60Hz의 50배가 넘는 3000Hz 이상에선 음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겠죠.
그런데 제가 위에 첨부한 주파수 분석 사진을 보면 사회자의 설명과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해당지점에서 5kHz ~ 6kHz 음역대가 얼마만큼의 음압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 보면 10dB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죠.
위 사진의 왼쪽이 순정 상태이고 오른쪽이 BOP를 연결했을 때인데 가수가 'Now'라는 가사의 '우' 발음을 할 때 들리는 모든 소리에서 5kHz ~ 6kHz 음역대는 음압이 10dB 이상 차이가 난다는 얘깁니다.
전원 노이즈를 제거했다는 이유만으로 음역대별 볼륨이 10dB 이상 차이가 발생했다면 그건 음질 향상이 아니라 왜곡이라고 할 수 있겠죠.
스피커로 비유하자면 주파수 응답곡선이 10dB 이상 벌어진 셈이니까요.
사회자는 3000Hz까지를 전원으로 인한 고조파 노이즈라고 이야기하고 BOP 제품은 해당 음역대에서 발생하는 노이즈를 제거하는 용도라고 했는데 그보다 훨씬 높은 5kHz~ 6kHz 음역대의 소리가 10dB나 더 커진 원인은 무엇일까요?
시연회에 참석하지 않은 제가 그 이유를 단정할 순 없지만 충분히 의심스러운 정황은 찾을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순정 상태의 소리를 시연할 때의 모습을 캡쳐한 것이고
아래 사진은 BOP를 연결하고 시연할 때를 캡쳐한 겁니다.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마치 다른그림찾기 퍼즐처럼 느껴지시겠지만 힌트는 '사람'입니다.
제가 왼쪽에 파란색으로 동그라미를 그린 부분에 앉아있던 참석자가 자리를 옮겼는지 사라졌고 노란색으로 동그라미를 친 위치엔 새로운 참석자가 앉아있죠.
잘 아시겠지만 일상에서 소리는 공기의 진동을 통해 전달되며 벽이나 천장은 물론 가구나 화분 등등 다양한 물체에 의해 진동이 흡수되거나 반사되어 간섭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리고 오디오룸에선 사람 역시 흡음재이자 분산재(혹은 반사재) 역할을 합니다.
참가자가 몇 명인지, 어느 위치에 앉아있는지, 입고 있는 옷의 두께나 재질, 참가자의 체형, 자세에 따라 실제 시연회장에서 듣게 되는 소리는 달라지죠.
당연하게도, 오디오 기기를 시연하는 동안 참석자들이 자리를 옮기거나 비우면 시연실의 주파수 응답특성이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의 효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심지어 머리를 약간 숙이거나 고개를 좌우로 살짝 갸웃거리기만 해도 실제 고막으로 전달되는 소리에 큰 차이가 생길 정도죠.
안타깝지만 많은 분들이 이런 소리의 변화를 오디오 기기를 바꿔서 생긴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실제로 오디오 마니아들이 느꼈던 소리 차이는 대부분 오디오 기기와는 전혀 다른 변수들이 일으킨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소리의 변화 중 어떤 것들은 외부의 물리적 변화가 아닌 우리의 머릿속에서 일어나죠.
예를 들어 양자역학 운운하며 온갖 전문 용어를 섞어 엄청난 기술이 투입된 제품이라는 설명을 듣거나 그 제품의 가격이 얼마나 비싼지 알고 있을 때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심지어 제품의 외부가 어떤 재료와 색상으로 마감되었는지에 따라서도 말이죠.
예를 들어 DAC의 케이스를 고급스러운 무광 알루미늄으로 만들면 현대적이고 해상도가 높지만 차가운 음색으로 들릴 수 있는 반면 같은 DAC의 케이스를 원목과 어두운 가죽을 덧대서 만들면 따뜻하고 질감이 좋은 소리로 들릴 수 있는 겁니다.
*사실 '현대적이고 차가운 음색', '따뜻하고 질감이 좋은 소리' 등등의 표현은 기준이 모호하고 매우 주관적인 감상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지표로 삼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글에서 저런 표현을 사용한 건 실제 오디오 기기 리뷰에서 자칭 오디오 평론가라는 사람들이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문구이기 때문에 일부러 차용한 겁니다.
오디오 기기 리뷰에서 저런 표현을 사용한 경우 실제 사운드를 분석한 게 아니라 객관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뇌피셜 리뷰라고 받아들이시는 게 좋습니다.
이렇듯 제품의 가격, 브랜드, 디자인, 제품에 투입된 기술 특허 설명 등등으로 인해 갖게된 선입견이나 기대감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 물리적인 소리가 변하지 않았음에도 무언가 다른 소리로 들리게 만듭니다.
말 그대로 플라시보로 인한 뇌의 후보정 효과죠.
특히 제품에 투입된 기술 설명은 양자역학이나 유전체 바이어스 같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내용일 수록 기대감을 심어주게 됩니다.
비슷한 예로 오디오에 붙이기만 하면 음질이 좋아진다는 양자 스티커, 양자 판떼기 제품들을 제가 소개해드린 적도 있었죠.
https://dprime.kr/g2/bbs/board.php?bo_table=hometheater&wr_id=360711&sca=&sfl=mb_id%2C1&stx=theclub
제가 본문에 첨부한 시연회 녹화 영상은 시리즈로 계속 올라올 것 같은데 시연회를 주관한 업체가 직접 제작하고 판매하는 BOP 라는 장비를 주력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BOP는 양자접지(Quantum Ground), 양자장(Quantum Field) 두 종류가 출시되어 있는데 이름만 들으면 마치 최첨단 양자역학을 접목한 제품처럼 보여집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제품을 사용하면 전류의 속도가 빨라진다고 하네요.
저는 저 문구를 적은 사람이 전류의 속도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만, 해당 제품은 거의 국내에서만 판매되고 있고 해외에서 소개된 사례는 구글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더군요.
그나마 거의 유일하게 찾을 수 있는 내용이 이겁니다.
https://6moons.com/audioreview_articles/bop/
사진과 그 옆의 설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BOP의 퀀텀 필드 제품은 파워 케이블이나 인터 케이블 등등에 전류가 통하는 별도의 케이블을 감아서 유전체를 바이어스시키는 원리를 응용한 제품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곳 게시판에 쓴 글들을 보신 분이라면 유전체 바이어스와 관련된 내용을 본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네, 하이엔드 케이블 제작사 오디오퀘스트의 특허를 소개하며 몇 차례 다룬 내용이었죠.
https://dprime.kr/g2/bbs/board.php?bo_table=hometheater&wr_id=357464&sca=&sfl=wr_name%2C1&stx=%EC%9A%9C%EB%A1%9C&sop=and&scrap_mode=
그리고 유전체 바이어스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이야기인지는 오디오 애호가들의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웹진 오디오홀릭의 운영자 Gene DellaSala가 이미 과학적으로 낱낱이 분석해 올린 바가 있고요.
https://youtu.be/KzwAdwvy9l4
전에도 소개해 드렸지만 오디오퀘스트의 특허가 음질 향상에 아무런 효과가 없음을 밝힌 저 동영상의 주인공은 미국의 NAOC(국가 공중 작전 센터. National Airborne Operations Center)의 기밀 오디오 통신 시스템을 설계한 수석 엔지니어 출신입니다.
NAOC는 전쟁 발발시 미국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및 합참을 위한 군사 지휘 체계를 수행하는 항공기죠.
https://www.af.mil/About-Us/Fact-Sheets/Display/Article/104503/e-4b/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 미국에서 전시 지휘 통제 임무를 수행하는 NAOC의 기밀 통신 시스템을 설계한 수석 엔지니어라면 그가 신호 전송과 관련해 이 바닥 끝판왕급의 실력을 가진 전문가라는 걸 알 수 있죠.
그런 경력과 실력을 가진 진짜 전문가가 하이엔드 케이블 제조사로 유명한 오디오퀘스트의 속임수를 폭로한 겁니다.
시연회를 주최한 사회자이자 업체 대표는 과거에 BOP 제품의 성능을 자랑하며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죠.
"요즘 가수들은 과도한 공기 소리를 섞어서 노래하는데 그 이유는 오디오에서 공기(Air)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https://youtu.be/cNvvjogyxcg?t=869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바로 해당 내용이 나옵니다)
사회자는 마치 보컬 트레이너 경력이라도 가진 것처럼 가수가 노래할 때 사용하는 발성법까지 거론합니다.
하지만 전원 노이즈로 인해 오디오에서 흉성과 두성이 사라진다는 설명을 할 땐 정말 황당함을 넘어 실소를 금치 못하겠더군요.
오디오에서 15kHz 이상의 치찰음이 잘 들리지 않게 되니 가수들이 억지로 그보다 낮은 음역대에서 과도한 숨소리를 섞어 노래를 부른다고요?
그리고 오디오의 전원 노이즈 때문에 가수의 흉성과 두성이 사라진다는 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요?
동영상에서 업체 대표가 호흡, 치찰음, 두성, 흉성 등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실제론 발성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모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업체 대표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단어들을 써가면서 뭔가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가진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성악 레슨이나 보컬 트레이닝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웃음이 터질 정도로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지만 요즘 많은 가수들이 일명 '공기반 소리반'으로 노래하는 것은 오디오의 전원 노이즈 때문이 아닙니다.
공기반 소리반의 대표 주자격인 빌리 아일리시 같은 가수도 있지만 그런 창법은 가수의 개성이며 시대의 유행일 뿐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pbMwTqkKSps&list=RDEMcce0hP5SVByOVCd8UWUHEA&start_radio=1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창법으로 노래하는 가수들이 차트를 휩쓸 겁니다.
실제로 현시대 최고의 디바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아델 같은 가수는 진성 위주로 노래하는데도 빌리 아일리시보다 많은 앨범 판매량을 자랑하고 있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vFrI2yNUBNg
오디오의 전원 노이즈가 진성 창법의 노래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테일러 스위프트나 에드 시런이 공기반 소리반 창법으로 노래하던가요?
그들은 진성과 반가성 등등 곡에 따라 다양한 창법으로 노래하며 현재진행형으로 대중음악계를 휩쓰는 가수들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5SQIECedTY
https://youtu.be/PQj3FfW5v0E?t=6
결국 가수들의 창법은 개개인의 개성이고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그 시대의 유행과 흐름일 뿐입니다.
그런 가수의 창법을 오디오에서 발생하는 전원 노이즈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아무리 자신이 오디오를 판매하는 업자의 입장이라고 해도 정말 혀를 내두를 상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디지털 스트리밍을 통한 음악 감상에서 전원 노이즈 제거 장치나 네트워크 허브, 디지털 신호 전송용 USB, 랜 케이블 등등의 장비들이 음질에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게 여기는 분들이 많죠.
만약 그런 기기들을 통해 음질 향상이 가능하다면 아래의 세 가지 원인 중 하나일 겁니다.
1. 어떤 기기나 악세사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데이터 자체가 변한다.
2. 차폐 성능이 떨어지는 기기를 사용하면 전자파 노이즈가 유입되어 지터(Jitter)가 일으키는 타이밍 에러로 인해 원음에 왜곡이 발생한다.
3. 차폐 성능이 떨어지는 기기를 사용하면 아날로그 노이즈가 유입되어 결국 DAC나 앰프의 아날로그 출력에 노이즈를 발생시킨다.
관련해서 1번은 원본과 전송본 사이에 데이터가 실제로 변했는지 010 editor 같은 프로그램으로 손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 더 이상 거론할 가치가 없습니다.
https://www.sweetscape.com/010editor/
그리고 2번은 제가 이미 과거에 쓴 글을 통해 오디오 재생음에서 지터 노이즈를 인간이 구분해 들을 수 있다는 얘기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돌비랩(Dolby Laboratories) 연구진의 논문까지 소개하며 장문의 글로 설명드렸죠.
https://dprime.kr/g2/bbs/board.php?bo_table=hometheater&wr_id=365170&sca=&sfl=wr_name%2C1&stx=%EC%9A%9C%EB%A1%9C&sop=and&scrap_mode=
남은 건 3번.
디지털 스트리밍 감상이라도 접지가 안 된 전원 등의 이유로 아날로그 노이즈가 유입되면 음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긴데 사실 노이즈가 소리에 영향을 미치는 건 맞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사용하는 인터넷 공유기는 접지 단자가 없는 전원을 사용하기 때문에 노이즈에 취약한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단순히 접지 전원을 사용하고 노이즈를 줄였다는 이유만으로 수백만 원짜리 오디오용 네트워크 허브가 음질의 향상을 가져올 것이라 기대하는 건...... 글쎄요.
실제로 오디오의 스펙을 살펴보면 노이즈가 얼마나 섞여있는지를 나타내는 신호대 잡음비(Signal to noise Ratio. 보통 SNR 혹은 S/N비라고 표기)가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죠.
그리고 노이즈와는 다른 것이지만 THD(Total Harmonic Distortion) 같은 왜곡 수치가 표기되어 있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아이러니하지만 이런 신호대 잡음비나 THD는 고가의 하이엔드 기기들보다 저렴한 중국산 DAC, 앰프, 혹은 하이엔드 오디오 마니아들이 우습게 여기는 AV용 리시버들이 수치상으론 더 뛰어난 경우도 많습니다.
심지어 LP와 CD를 비교하면 LP의 신호대 잡음비가 훨씬 나쁘지만 정작 하이엔드 마니아들 중엔 LP를 선호하는 분들이 많죠.
노이즈가 좀 많더라도 아날로그의 정감과 풍부한 하모닉스(?)가 느껴져서 LP가 더 좋다는 분들이 많은 겁니다.
결국 신호대 잡음비는 하나의 참고 사항일 뿐, 일정 비율을 넘어서면 음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해당 업체의 디지털 스트리밍 시리즈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튜브엔 계속해서 관련 제품들의 시연 내용이 올라올 겁니다.
저런 업체의 광고를 다 믿으실지는 여러분이 판단하실 일이지만,
저는 적어도 시연회에서 오디오 기기와 전혀 별개의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소리의 차이를 기기 자체의 성능 차이인양 착각하는 일이 없으시길 바랄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누군가 양자역학을 들먹이며 오디오의 전원 노이즈 때문에 가수들의 창법이 바뀌었다고 설명한다면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무지하거나, 혹은 거짓말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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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향 기기 관련 제품을 평가할 때,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범위에서만 평가하거나 가청 한계만이 기준이 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한계를 넘어가면 "체감 성능"은 급격히 떨어지면서 비용은 급격히 올라갈 수 있긴 하겠지만요.
제가 음향기기 쪽 제조와 계측기 업계에 있던 경험상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데이터 제시 없이 "시연"으로만 제품을 소개하는 업체는 100% 사기입니다. 청음 시연은 본문 내용처럼 온갖 요소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오로지 제품의 성능에 의한 차이만을 결과로 보여주기가 오히려 더 어렵기 때문이죠.
특히나 동영상에서는 "정상적인" 청음 주관 평가를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할 거의 모든 것을 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