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VER HEALTH CHECK: OK
2
프라임차한잔
ID/PW 찾기 회원가입

[골게]  최악의 캐디 이야기

 
7
  3147
Updated at 2022-07-01 13:27:33

얼마전 일입니다.

이직한 회사에서 저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골프 라운딩을 잡습니다.

사장, 부사장, 상무 그리고 저.

 

골프라는 운동의 특성이, 긴 시간 함께 하다 보니까 골프장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그 사람의 모습이 있더군요. 그 사람의 성격, 인성, 관심사, 습관... 이런게 다 보입니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습니다. 일터에서 모습 만큼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쟨 구력이 6년인데 어째 저것 밖에 못하나? 이런 얘기를 들을까봐서요. 

 

난생 처음으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그날 만큼은 소기의 성과가 있긴 했습니다. 제 수준에서는 내용도 스코어도 괜찮았거든요. 일파만파 없고 멀리건 없고 컨시드 정확하게 하고... 이 분들 골프에 꽤 진심이십니다.

 

사장님은 안정적인 보기 플레이어,

부사장님도 비슷한 수준이라 했는데 그날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부사장님이 구력 18년만에 첫 싱글을 노리게 됩니다.

한편, 상무님은 골프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셔서 스코어 자체가 의미 없습니다.

홀 하나 건너 오비가 나고, 페어웨이에서도 뒷땅, 탑볼이 이어집니다. 볼 찾으러 다니시느라 힘듭니다. 

 

캐디님은 시작부터 끝까지 카트 반경 5미터를 잘 안 벗어나는 스타일입니다. 물론 그래서는 경기 운영이 안되니 과장이긴 합니다만, 마치 정말 그런 것 처럼 보입니다. 코스 설명도 적극적이지 않고, 볼 놓는 것도 무성의 합니다. 무엇보다 말투가 시니컬합니다. 뭐 사실 말이 별로 없습니다. 뭐 백인백색 성격이 다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대로 잘치고 있었고, 부사장님이 싱글을 향해 달려가면서, 분위기가 좋아집니다.

18홀 파5입니다. 부사장님이 더블보기만하면 79타로 싱글을 찍을 수 있는 마지막 홀. 

캐디는 물-기름처럼 대화에도 끼지 않는 타입이라 우리끼리 시끌 벅적합니다.

저는 나름 잘 쳤지만 부사장님의 빛나는 플레이로 제가 잘치고 못치는 것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부사장님이 첫 타자로 드라이버를 잘 보내셨고, 마지막으로 상무님이 드라이버를 치는데 또 오비가 납니다.

 

말 수 없고 목소리가 안으로 먹어들어가던 캐디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들립니다. 아니 이번에는 까랑까랑합니다.

 

'아니, 고객님, 오비가 나는데 왜 뽀올~ 하고 안외치세요?'

 

순간 제가 맞게 들은 건지 놀랍니다. 캐디가 불친절한 경우는 봤어도 고객에게 짜증을 내며 훈계하는 경우는 한번도 본 적이 었거든요. 분명히 캐디가 상무님께 따지듯이 묻습니다. 시비 가리자는 말투입니다.

 

초보인 상무님은 당황하십니다.

'아 예, 그게 제가 잘... 초보라 잘 몰랐습니다. 아... 외쳐야 하는구나. 알... 알겠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저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납니다.

저도 어지간하면 화를 내거나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지 않는 성격입니다.

확 뒤짚어 엎을까 순간 고민합니다.

 

'고객님은 오비가 많이 나시니까, 그럴 때는 뽈~ 하고 크게 외쳐 주시는게 좋아요. 제가 하겠지만 그래도 함께 해주는게 낫거든요'  

 

이렇게만 말했어도 맞는 말이라고 동의 했을 것 같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잖아요?

근데 순하디 순한 상무님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자 더 열받습니다.

 

화를 낼까 말까 고민하며 사장님과 부사장님을 번갈아 보는데, 두분 다 가만히 계십니다. 

부사장님 얼굴이 보입니다. 싱글을 앞두고 있는 상황 ㅎㅎㅎ 

이런 젠장...

거기서 제가 판을 뒤집을 수는 없는 노릇. 사장님도 가만 계십니다. 

 

꾹 참습니다. 

 

사장님과 부사장님이 마지막이니 멀리건 한번 더 쓰라고 상무님을 독려합니다.

상무님이 작정하고 휘두릅니다. 낮고 빠르게 왼쪽 홀로 날아갑니다. 생긴지 얼마 안된 구장이어서 홀과 홀이 붙어 있습니다. 하필 그 볼이 옆 홀에서 반대로 진행중인 플레이어 얼굴에 맞습니다.

무전이 날라와서 알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달려갑니다. 다행히 직구로 맞은 건 아니고, 한번 바운드 된 볼이 오른쪽 눈 아래 광대에 맞았습니다. 이미 권투선수처럼 얼굴이 부어 있습니다.

이 사건도 우여곡절 끝에 잘 수습했지만 상무님은 멘탈이 완전히 나갔습니다. 상무님은 홀 아웃 하십니다.

 

남은 세명, 파5 마지막 홀 그린위.

캐디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이 지연되서요 알아서 마무리 하고 와주세요. 저는 정리 좀 먼저 할게요. '

 

사장님이 꾹 참는게 보입니다. 부사장님은 포온 하시고는 쓰리 펏 하십니다.

더블보기를 하시면서 79타 싱글을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기쁜 일에 축하를 해주는 것에 포커스를 맞춥니다.

부사장님이 캐디에게 5만원을 더 얹어줍니다. 이미 전반에 버디를 여러차례 잡았어서 캐디 분은 쏠쏠 했을 라운딩입니다. 그러고보니 저도 후반에 한장 넘겼습니다. 얄밉습니다.

 

백을 싣고 클럽하우스에 걸어가며 제가 못마땅한 심기를 드러내자, 부사장님이 한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좋은 일이 생겼는데 그러면 할 건 해야한다. 따져가며 줄거 안줄거를 가리는 것은 아닌것 같다. 그냥 줄 것은 주는게 내 맘이 편한 법이고 좋은 일에 빛이 나는 법이다. '

 

어른답게 맞는 말씀입니다. 할 말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저는 그 캐디가 너무 밉습니다. 골프를 친 이래 가장 최악의 캐디로 꼽습니다. 

상무님은 그날 축하 뒷풀이에서 술을 못드셨습니다. 

스트레스와 두통으로 인해 약을 드셔야 했거든요.

25
Comments
1
2022-06-30 21:37:48

하......제가 다 열이..

WR
2022-07-01 07:38:58

재밌는 글 써야하는데, 괜히 열받는 글을 썼나봐요 ㅋㅋ

2022-06-30 22:13:40

 다른이야기인데....저는 캐디분이 잘 봐주셔서 공 잘치시는구나 싱글이시죠? 했더니 아니요 돌싱인데요 하셔서 갑자기 싸해졌던 기억이 나네요 갈때까지 별 말 없이 다들 공만쳤던 기억이...ㅠㅜ

2022-07-01 06:31:54

캐디에게 성희롱하고 19금 농담 던지는 골퍼들도 문제지만 그런 사람들하고 장단 맞춰 놀아주던 버릇으로 다른 골퍼들한테도 농담이 선을 넘는 캐디들도 종종 있죠

WR
2022-07-01 07:42:30

일단, 잘 치시는군요. 부럽습니다.

대부분의 캐디분들은 비교적 날씬한 저의 체형을 보고 기대합니다. 결국 실망하는 모습을 여러번 봤습니다.

직접 좀 치시는 분들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잔소리 작렬 ^^;;;

6
2022-06-30 23:36:03

저는 싸가지없는 캐디는 캐디피외에는 절대안줍니다
머한다고 저런년한테 5만원씩이나... 쩝

WR
2022-07-01 07:44:28

저도 사실 그 상황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본인도 그러긴 하더군요.

'저한테 왜 주시죠?' 

2022-07-01 06:30:22

골퍼들이 캐디를 도와주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채도 자기가 챙기고 정리도 직접 하고… 그린 기울기를 보거나 거리를 보는 거, 스코어 적는 거는 캐디의 일이라기 보다는 골퍼가 직접 해야 하는데 캐디가 도와주는 것이고… 암튼 좀 서로 도와주는 건데 그게 당연한 거라고 하면 안되는거죠 잘못 배웠거나 다들 도와주는 걸 당연하게 요구하는 경우같아요
그리고 코로나 이전부터도 필드 경험 없고 스크린에서 친구들에게만 배워서 필드 예절이나 룰도 잘 모르는 골퍼들도 많이 있어요 그런 경우 캐디가 알려줄 수는 있는데 막 나무란다거나 잘못 알려주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지난번 디피 모임에서 타구 사고 났을 때에도 그 팀 캐디는 남일 보듯이 지켜보고 골퍼들에게만 빨리 사과하라고 하고 책임도 골퍼에게 넘기려고 하는데 타구를 봐주는 책임은 캐디가 가져가야죠

WR
2022-07-01 07:52:26

정확한 규정 같은건 모르겠지만 콜롬보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클럽 제가 직접 들고가고, 바꿔오고, 꼽아 넣습니다. 가져다 주시면 두 손으로 받고 매번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그린에 공 놓을 때도 코스 봐주실 수 있는지 여쭙습니다. 그게 맞고 틀리고를 떠나 제가 마음이 편합니다. 작은 순간 순간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거니까요. 

 

제가 화가나는 부분은, 좋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을 사람 무안하게 면박을 주었다는 부분입니다. 다 끝나가는데 따지듯 쏘아붙여서 어쩌자는 거였을까요?

갑-을, 가게주인-손님, 캐디-플레이어 뭐 이런 관계를 떠나 사람이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며 말을 건네는게 예의라고 생각하거든요. 플레이어가 캐디에게 말할때도, 캐디가 플레이어에게 말할때도... 그 부분에서 그 캐디는 기본 이하였던 것 같습니다. 

2022-07-01 06:38:36

캐디가 중요한게 아니라 얼굴에 공맞으신분은 괜찮으신가요? 원바운드로 맞았어도 얼굴에 맞았다면 후유증이 엄청날듯 해서요. 그정도로 좌우로 오비가 많이 나는분은 멀리건 의미 없는것 같더라구요. 공만 1개 더 잃어 버리고 맨탈도 더 나가구요.

WR
1
Updated at 2022-07-01 08:05:42

맞아요. 캐디에게 포커스하느라 타구 사고 부분을 대충 썼는데, 그 날 상무님이 스트레스 받고 두통이 온건 바로 그 일 때문이었습니다. 본인의 행동이 (물론 고의는 아니지만) 남에게 결과적으로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에 내내 괴로워해습니다.

 

현장에서는 무전을 받자마자 너무 놀라서 모두 달려갔고, 정중하게 사과를 했습니다.

맞으신 분은 오른쪽 광대가 부어올라있었는데, 머쓱해하시면서 별 말씀을 안하시더라구요.

우리는 계속 플레이가 괜찮으신지, 곧바로 병원을 가야하는 것 아닌지를 체크 합니다.

그런 정도는 아니고, 일부러 그런 거 아니니 어쩌겠냐며, 신경쓰지 말고 즐겁게 치라고 합니다.

 

관리쪽에 사고 보고를 하느라 캐디가 젤 늦게 다가왔는데, 다른 일행 분이 마구 역정을 내십니다. 사실 오기전부터 캐디는 뭐하는 거냐며 계속 찾았습니다. 캐디가 오자 당신이 먼저 달려와서 사과를 해야지, 느리적 느리적 뭐하는 짓이냐며. 타구 사고는 골프장 책임, 캐디 책임인거 모르냐며 계속 호통을 치십니다.

 

캐디는 억울한 듯, 본인이 늑장 부린 게 아니라 관리쪽에 보고 하느라 그랬다며 항변을 합니다.

아마 우리에게 화를 못내니 캐디에게 더 화를 내고 있는 형국으로 보였습니다.

 

아무튼 계속 거기서 왈가불가 할 수 없는 노릇이므로 

명함을 건내주고, 끝나고 연락드리겠다고 하며 거듭 사과를 했습니다.

병원 꼭 가보시라 당부드립니다.

 

일단 웃으며 돌아왔고, 상무님은 18홀 드라이버 사고를 마지막으로 홀아웃했습니다.

골프장 쪽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자기네가 모든 일을 처리할테니 (사과-치료비) 고객님은 이 시점부터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요. 가급적 직접 연락을 하지 말라고 하네요.

 

상무님께서 월요일에 골프장에 다시 한번 확인을 하고 단락 지은 것으로 해결했습니다.

그 트라우마가 좀 오래가긴 했지만요.

1
2022-07-01 15:48:04

그래도 사고 당하신분이 대인배 이신지라 조용하게 넘어갔나 봅니다. 그것도 그렇고 골프장 대처도 바람직 하네요. 얼마전 길선자님 타구 사고 났던 구장의 황당한 대처와는 너무 비교가 되네요. 타구 사고는 기본적으로 골프장 책임이라고 봅니다. 1차 조치는 구장에서 빠르게 처리하고 추후에 가해자(?)에게 구상권 청구를 하던지 하는게 맞죠.

2022-07-01 09:49:44

 큰일날뻔 하셨네요. 그래도 크게 안 다치셨다니 천만다행입니다.

 그래도 그 중에 좋은 스코어들 기록하신걸로 위안 삼으셔야겠어요. 

 

 다치신 분 별 탈 없이 잘 회복하시고, 동료분도 빨리 트라우마 극복하고 즐골 하시길 빕니다.  

WR
2022-07-01 11:01:43

처음 봤어요. 타구사고 나는 상황을...

기본적인 것을 잘 지키는게 정말 중요하겠구나를 실감하고 왔습니다.

믹님도 안전하게 즐라운딩 하셔요.

2022-07-01 09:53:09

 호법부근에 있는 골프장인거같은데...

 참 골프가 뜻대로 안되지만 그날 캐디로 인해 분위기가 달라지는 부분이 분명 있죠.

 어쪄겠습니까..다음번엔 좋은 캐디 만나길 바래야죠.

 타구사고도 맞은분이 호인이시라 다행이네요. 잘치료받고 큰문제 없길 바랍니다.

 초보이신 상무님도 멘탈잡으셔야겠어여..타구사고가 맞는사람도 친사람도 데미지가 엄청나거든요.

WR
2022-07-01 11:00:22

맞아요. 그 골프장 생긴지 얼마 안됐는데 구장 자체는 관리도 잘 되어 있고 좋더라구요.

전반적으로 짧아서 스코어 잡기도 용이하구요.

다만 새로 생긴 곳이어서 홀과 홀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더라구요. 공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리 설계한 것 같습니다. 멀리건도 봐가면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22-07-01 10:34:27

 캐디분들중에 본인의 업무를 잊고 대장질을 하시는분들이 종종 계시더라구요...

맘고생 하셨네요...마지막 홀에서 본의 아니게 다른 홀 플레이어 맞추신 상무님은 더 맘 고생 하셨겠고요...

WR
Updated at 2022-07-01 14:11:22

대장급 캐디는 그냥 따르면 되는데요.

이건 뭐, 만사 다 귀찮다는 듯 일을 하고 있고, 거기에 말도 곱지 않게 하니까...

토닥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2-07-01 14:09:54

공에 맞으신 분은 다음날 괘찮아야 할텐데요.

상무분도 트라우마가 남을텐데... 잘 수습하시면 좋겠네요.

 

제가 10년전쯤 도그렉홀에서 드라이버로 공을 날렸는데.. 너무 잘맞은 공인데 하필이면 역주행하는 분의 정강이를 맞춰서.. 아직도 그 상황이 선명히 기억납니다. ㅠㅠ

이후에 눈에 안보이는 홀은 무조건 끊어서 갔지요. 

WR
2022-07-01 14:36:10

정강이... 엄청 아팠겠네요.

아마추어 즐기는 골프에서 무리한 행동은 절대 하면 안될 것 같더라구요.

저도 잘 치지도 못하는 주제에 무조건 질러대는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 안전할 확률 높은 선택을 하고 있더라구요. 잘 칠 수 있는 확률보다는 죽지 않을 확률을 보게 된거죠.

1
2022-07-01 16:50:12

 후앙님과도 라운딩 할 날이 오겠죠? DASA 골프 이런거도 기대해 봅니다. ^^

 

WR
2022-07-01 17:43:33

우왓. 진짜 즐겁겠네요. 저도 그런 날을 꿈꿔봅니다 ㅎㅎ

2022-07-01 17:51:41

치시는분들이 많으니 뭐 가을 되면 한번 모임도 가능할듯요 부킹만 되면 ..^^

한니발님 아직 사장이신가요? 

소요음영님등등 고수분들도 많으니 ㅎㅎ

2022-07-04 22:50:49

보통 일반적으로 버디할때마다 팁주나요?
팀에서 처음 버디에는 주지만 이후에도 줘야하나 궁금해서요

WR
2022-07-04 22:55:24

그건 그때 그때 많이 다른 듯 합니다.
게임을 하고 있는지. 돈이 오고 가는지. 캐디가 맘에 드는지 등등에 따라 다르더라구요. 버디 많이 하시는
분들은 번번히 줄순 없을 것 같네요.
어떤 동반자는 버디를 못하면 못했다고 주더군요.

 
글쓰기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