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동래읍성의 아픔.
제 기억이 잘못 된 건지, 동래읍성 해자를 발견했다는 뉴스를 꼭 군에서(90-92)들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머리 어느 부분이 기억을 왜곡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임진년의 비극이 부산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특별히 아프게 느꼈는지 모릅니다. 당시 발견된 지역은 동래 로터리로 차량들이 엄청나게 지나가는 곳입니다. 지금은 해자가 발견된 위치에(지하철 역사관) 비극적인 기록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전 이곳이야말로 부산의 대표적인 탐방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생각보단 외지인이 많지는 않습니다. ------------------------------------------------------ 2005년 4월 부산 동래구 수안동 부산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 건설현장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조선시대 동래읍성 주위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성곽 방어시설 '해자'가 발견된 것이다. 2005년 부산 수안역 건설현장서 동래읍성 전투 81명 유골 나와 탄환에…칼에…처참하게 스러져 함락시킨뒤 그 돌로 왜성 쌓아 뒤쪽에 구멍이 뚫린 20~40대로 추정되는 남자의 두개골, 두 차례나 칼로 잘려나간 흔적이 남아 있는 20대 여성 두개골 등이 발견됐다. 총이나 활이 관통한 5살가량 어린아이의 두개골도 나왔다. 고고학계는 발굴된 사람뼈의 평균키와 생김새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이들은 모두 조선인이며, 1592년 4월15일 임진왜란 당시 동래읍성 전투 상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진왜란 유적에서 처음으로 사람뼈가 나온 것이다. 임진왜란 전 조선군 보급물품과 일본 창이 발견됐다는 점도 임진왜란의 전투 흔적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학계는 "5살가량 어린이 두개골에서 확인되는 상흔과 경사도, 깨진 정도를 종합하면 왜군의 조총 탄환이나 유탄을 맞아 숨진 것으로 보인다. 20대 여성의 전두골은 칼로 예리하게 잘려 있고, 두정골에도 칼로 베인 흔적이 있다. 각도를 볼 때 고개 숙인 여인을 왜군이 칼로 내리친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왜군에 끝까지 저항하다 스러져간 조선 백성들의 주검이 동래읍성 해자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것이다. 잊혀진 조선 백성들은 이렇게 400여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경남문화재연구원은 곧바로 발굴조사에 들어갔다. 성곽을 따라 땅을 길게 판 해자에선 철판을 이어 만든 갑옷과 투구, 환도, 창, 화살촉 등 전투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http://dvdprime.donga.com/g2/bbs/link.php?bo_table=comm&wr_id=9513874&no=1 가장 놀라운 것은 전쟁의 처참한 흔적이 남아 있는 사람뼈였다. 해자 밑바닥에선 남자 59명, 여자 21명, 어린이 1명 등 모두 81명의 뼈가 발굴됐다. 이 가운데 8명의 두개골에선 칼에 베이거나, 활이나 총, 둔기 등에 맞은 흔적이 드러났다.
푸른 귀밑 머리에는 젊은 날의 근심이 어리네
외로운 달은 서로를 지키기를 원하니
원앙은 부러우나 신선은 부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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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istory.kbs.co.kr/web/vod/program_view/?pe_id=175 역사추적 9회 조선판 킬링필드 동래성에 무슨 일이 있었나? 입니다. 이게 안타까운건 해자 한구간일뿐이라는거죠.. 건물밑에 묻혀있는 구간들 다 발굴해보면 정말 참혹할겁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