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 대전 산내 골령골 이야기
대전 근방의 산내 골령골에는 우리의 슬픈 역사가 담겨있습니다.
대전 산내 골령골
6.25 전쟁 전 이승만 일당이 자행한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이 제주 4.3과 여순사건이라면, 6.25 전쟁 기간 중에는 <보도연맹 학살사건>이 있었습니다.
보도연맹은 이승만 밑에서 국회프락치 사건을 담당했던 공안검사 오제도의 주도로 1949년 6월에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과거 남로당이나 좌익단체에 전력이 있던 사람들을 보도연맹에 가입시킨 후 전향시켜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든 단체였는데, 문제는 지역별 할당제로 공무원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아무나 마구잡이로 가입시켰고, 전국적으로 30여만 명이 등록되었습니다.
심지어 글도 읽을 줄 모르는 할머니나 부녀자들이 뭔지도 모르고 쌀이나 밀가루를 준다는 이유로 보도연맹에 가입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6.25 전쟁 발발 후, 바로 도망갔던 이승만은 보도연맹원들이 인민군을 도와줄 수 있다는 보고를 받자 육군 방첩대장 김창룡에게 보도연맹에 등록된 사람들을 처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후 군과 경찰, 그리고 서북청년단 등 극우 폭력단체에 의해 무차별적인 양민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당시 보도연맹 학살이 이루어진 곳 중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대전의 산내 골령골을 찾았습니다.
골령골 인근 주민들에 의하면 암매장지가 8곳이고, 이 구덩이들을 다 이으면 약 1Km에 달해,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양민 학살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군이 내려왔을 때는 또 다른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북한군이 대전을 점령한 후 양민 학살 혐의로 대전과 충남 일원에서 경찰, 군인, 공무원, 대한청년단원 등 우익계 인사들을 잡아들여 대전형무소에 수감시켰고, 퇴각 직전인 1950년 9월 25일 새벽부터 27일까지 3일간 1500여 명의 수감자들을 집단 처형했습니다.
이후 북한군이 퇴각하자 이승만 정부는 북한군에 동조하거나 협조한 부역 혐의자를 찾아낸다며 또다시 수천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연구자료에 따라 다르지만 이승만 일당이 자행한 보도연맹 사건으로 전국적으로 최소 6만에서 20여만 명이 학살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왜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안타깝습니다.
더 이상 이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되며,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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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알수록 이가 갈리고 치가 떨리는 작자를 칭송하는 놈(者)들이 여전히 많은 현실에 화가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