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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여행 중 목격한 개쿠데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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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4-04-17 06:57:21

국내정치 이야기가 아니니 정치댓글 사양합니다. 단, 제목으로 알 수 있듯 개정치이야기이므로 개정치댓글은 환영합니다.

 

아래 사진은 한 달 전 여행 다녀왔던 하바수파이 트레일에 있는 무니폭포입니다. 

 

첫 날 마을에서 5킬로미터 쯤 떨어진 곳에서 예쁜 강아지를 만났습니다. 처음엔 등산객이 데리고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마을에서 산보(?)나온 강아지였습니다. 마을에는 여기저기 개들이 많이 있었고 특별히 귀여운 강아지는 아이들이 목줄을 해서 데리고 다니지만 늙은 강아지를 비롯해 대부분 묶여있지 않은 상태로 자유롭게 마을을 활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랜드캐년의 지형적 특성 상 개를 풀어 길은들 개들이 물도 없는 먼 길을 건너 마을을 떠날 일이 없는 천연의 개목장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기하게 다양한 애완견 종류가 마을에 살고 있고 지나다니는 하이커들을 무심하게 대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직 동트기 전 어두운 하늘 아래를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출발했습니다. 한 시간 정도를 걸어 마을 입구에 들어설 무렵 여러 방향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마치 무슨 통신을 하듯 격차를 두고 들려옵니다. 닭도 아직 깨어나기 전인데 개들의 소리가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을 사람 잠 다 깨겠네 걱정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길섶에 개 두 마리가 나타납니다. 중강아지 정도인데 그 중 한 마리는 헝겊인형을 물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그것을 빼앗으려는 듯 두 마리는 경주하며 우리 앞을 지나갑니다. 순식간에 두 마리의 개는 저 멀리 달려갑니다.

 

마을 안에 있는 매점에 들렀다가 마을 바깥을 향해 또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을 벗어나면 다리가 나오고 다리 건너서 트레일을 3시간 정도 가면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하늘은 어느덧 밝았고 멀리 MESA는 햇빛이 반사되어 눈부십니다.

 

아까 인형 물고 달리던 개가 다시 나타납니다. 몹시 서두르는 모습이고 같이 달리던 한 마리 또한 인형은 관심 없다는 태도로 같은 방향으로 황급히 달려갑니다. 숨소리가 가쁘게 들렸는데 숨소리를 몰아부치듯 후다닥 사라집니다. 두 마리 개가 달려간 방향 멀리 시끄러운 개소리가 뒤섞여 들립니다.

 

동네를 관통하는 길을 따라 걸어올라 가는데 여러 번 네거리가 있었고 사방에서 개들이 달려옵니다. 우리 일행은 신경쓰지도 않고 지나치는데 우린 달려오는 개들에게 질겁해 잠시 멈칫했습니다.

 

이윽고 시끄럽게 소란스러운 개소리 발원지에 도착했습니다. 덩치가 꽤 큰 검은 색 개 한 마리가 사납게 으르렁대며 달리고 있는데 여러 마리 개들이 그 개를 물려고 기회를 노리며 쫒고 있었습니다. 너뎃 마리가 에워싼 가운데 두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어 다리와 허리를 물자 그 큰 개는 몸을 굴려서 떼어내고 다시 으르렁대면서 우리와 반대 쪽으로 달아납니다. 20여 마리가 넘는 크고 작은 개들이 그 개를 향해 쫒아가고, 맨 뒤에 헝겊인형을 물고 있는 개가 용맹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재구성하자면 온 마을에 흩어져 있는 개들이 새벽부터 신호를 주고 받으며 알파독의 위치와 상황을 공유하고 한 곳에 집결하여 동시 협동공격으로 서열정리를 다시 했다는 가설이 타당한 것 같습니다. 직접 겪은 상황이라 이렇게 재미없는 요약과는 상당히 다른 박진감 넘치는 광경이었답니다.

님의 서명
인생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하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시를 써야 하고, 고통 받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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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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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7 07:03:25

하이퍼 증강현실을 경험 하셨군요

그랜드캐년 언저리라 하시니 드라마 웨스트월드가 생각납니다 실제로 경험하는 가상의 세계~

WR
2024-04-17 07:06:32

다구리 당한 큰 개가 평소에 잘 했던들 그런 일을 당했을까 생각했죠. 인형물고 놀던 개 마저도 늠름하게 달려가서 한 몫하는 것 보고 대견하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여행기에 포함시키기엔 너무 생뚱맞은 경험이라 따로 빼놨다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1
2024-04-17 07:43:33

특정 쟝르 댓글 마려워지지만 참겠습니다

작은 강아지들 화이팅입니다

WR
2024-04-17 08:03:35

개정치 전망은?
큰 개가 팔팔하므로 상당한 데미지를 주지 못하면 작은 개들이 위험할 수도 있겠더군요. 그 날 끝장을 봤을 겁니다.

WR
2024-04-17 07:11:00

개들이 싸우던 곳 좌표입니다.

https://www.google.com/maps/@36.2318408,-112.6913113,3a,75y,228.24h,73.85t/data=!3m8!1e1!3m6!1sAF1QipNZWDo4WLyidGnKNO5tZ7DwvwoD0NiMOUIb8qSI!2e10!3e11!6shttps:%2F%2Flh5.googleusercontent.com%2Fp%2FAF1QipNZWDo4WLyidGnKNO5tZ7DwvwoD0NiMOUIb8qSI%3Dw203-h100-k-no-pi6.7501526-ya301.23944-ro-19.236362-fo100!7i2508!8i1254!5m1!1e4?coh=205409&entry=ttu
1
2024-04-17 07:47:26

어허...말 그대로 개판이네요...

WR
Updated at 2024-04-17 08:38:22

인형 문 개가 큰 개 판박이었어요. 새끼였을 가능성이... 역시 개판이죠.

1
2024-04-17 08:57:41

동물들의 서열싸움은 우리가 아는 것 보다 더 치열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니폭포 모습이 우리나라 포천의 비둘기낭 폭포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WR
1
2024-04-17 09:01:24

우연히 보게 된 원숭이 패싸움뉴스 때문에 생각났습니다. 원숭이 패싸움? 개는 쿠데타도 하던데 하면서요.

https://www.youtube.com/watch?v=KCtET_Zf43c 

 

모양은 비슷한데 무니폭포 저 높이가 200피트(61미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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