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10년전의 경험 하나.
안녕하세요.
잠이 오지 않고,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글을 살짝 적어봅니다.
저는 10년전에 매우 독특한 경험을 하나 했습니다. 일부러 할려고 한건 아니었지만요.
그냥 여느날과 같은 날이었습니다. 날도 그리 나쁘진 않았고 뭐 그냥 시간이 평범하게 흘러갔죠.
그 시기는, 4월 초중반. 학생들 여기저기 수학여행이나 이런데 많이 가는 시기였습니다.
갑자기 희한한 기사가 하나 뜹니다. 여행객들과 학생들이 타고 가던 배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작은 배가 아닐텐데 갑자기 왜 침몰했을까? 이상하다.. 싶었지만, 어디 대서양도 아니고 근해이므로, 그리고 그 정도 사이즈가 되는 배가 침몰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수 있으므로 큰 사고가 아니길 바라는 확신은 있었습니다.
한데 그리고 나서 다시 속보가 나옵니다. 전원 구조되었다...
근데 좀 이상했었죠. 이 두 속보의 시간차가 그리 크지 않았어요. 큰 배로 알고 있는데, 마치 군사작전 하듯이 그렇게 한번에 짧은시간에 구조가 될리가 없을텐데.
그게 잘못된, 틀린 소식이라는 보도는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서야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 지역은 아수라장이 되었죠.
대한민국 역사상 여러 사고가 많았습니다만, 특정 학교 학생들이 한꺼번에 사망한 유례없는 사건,
세월호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 구조되었던 사람들 말고는 거의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실종 상태로 마감이 되었죠.
문제는 구조. 당시 구조의 체계는 지금 봐도 너무나 이상했고, 선장은 지 먼저 탈출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 외에 그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차라리 기울기 시작했을때 구명조끼 입힌 상태로 전부 다 바다에 뛰어내렸으면 다 살수 있었을텐데, 배 자체와 함께 수많은 생명이 그대로 가라앉았죠.
사건 자체에 대해서 여기에 길게 쓰려고 글을 적은 건 아닙니다.
다만 한가지, 기억이 나서요.
세월호 사건은, 실종자 수색 때문에 굉장히 오래 끌게 되었었지만, 그 때문에 더욱 피말렸지만...
안타깝게도 사건 초기부터 사망된 상태로 발견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명의 이름을 불러보고 생각합니다.
단원고 2학년 정차웅 군.
(네이버에 정차웅이라고 치면 나무 위키 들어가보시면 사진과 내용이 나옵니다)
정차웅 학생은, 사건 초기에 사망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선장이고 고위 관계자들 자기들만 살겠다고 먼저 배 탈출할 때,
정차웅군 본인은 충분히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에게 구명조끼 입히고 물에 빠진 애들 구하다가, 결국 본인은 사망하였습니다. 단원고 학생 사망자중게 가장 초기에 발견된 경우입니다.
사건 당시 학생들 끝까지 구조하다가 사망하신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님과 함께, 대표적인 의사자로 꼽히는 훌륭한 학생입니다.
당시 정차웅군은 빠른 시간 내에, 안산 고려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으로 이동하고 장례를 치르게 됩니다.
이 소식은 사건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려졌고, 저도 이 소식을 접했습니다.
좀 멍하더군요. 고2학생이 저렇게 했다는 것.... 나는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냥 그러다가 알아서, 몸이,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제가 오지랖이 넓은 편이라, 웬만한 경조사는 다 갑니다만... 전 그때까지 단 한번도, 저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장례식장에 가 본적이 없었습니다. 근데 그냥 갔습니다. 이유도 없고 그냥 가고 싶었어요.
밤이었습니다.
빈소가 꾸며져 있고, 유족 분 한분 계시고, 젊은 남자분 두 분 계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누구시냐고 하시길래, 그냥 시민인데, 조문하고 싶어서 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저보다 어린 친구라는 생각은 안들고, 다른 사람을 구하고 자기는 희생한 숭고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서 절을 하고 예를 표했습니다.
물이라도 좀 드릴까 하시길래 괜찮다고 사양했습니다. 차마 뭐 먹거나 마시거나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빈소를 가만히 지켜봤습니다. 진짜 무슨 느낌인지도 모르겠고, 가슴이 아픈것도 아니고 그냥 멍하기도 하고 혼란스러우면서도 조용해지는 그런 1분여 남짓 가만히 서 있던 시간.
그리고 다시 장례식장을 나와 병원 근처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10년전, 저하고 아무 연고도 없었던 이의 조문을 했던, 그때의 그 기억이 지금도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게 벌써 10년전이네요. 그 후에 단원고에 직접 가서 교실도 보곤 했습니다. 기억교실 따로 만들기 전에는 단원고 해당학년 교실을 그대로 보존했었거든요...
그 10년동안, 저와 세상은 많이 변한듯 하면서도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친구들 구해보겠다고 목숨을 걸었던 고2학생이 있는가 하면
책임 회피 및 도망가기 바쁜 어른들이 넘쳐났던 시대. 그리고 지금도 딱히 다른게 없는 시대.....
다시금 정차웅 군을 떠올리며, 기성세대로서 미안함과 죄송함을 표합니다.
잊혀지지만... 잊지 않도록 정차웅군을 비롯한 단원고 학생들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10년이 지났지만,
다시 한번 희생자 분들을 추모하며, 유가족 분들의 치유와 행복을 기원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쓰기 |
기성세대로서 이때부터 어른들 말이 맞고 어른말 들어라 라고 감히 쉽게 말하기 어려웠고 무척이나 부끄러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