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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소프트볼 투수가 피구를 할 때 벌어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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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30 01:35:56

 

 

 좌측부터 아버지 JJ 슬레이백, 딸 애디슨 슬레이백

 

 막간을 이용, 스포츠를 매개로 한 평범한 이의 평범한 이야기 하나

 

  소프트볼 투수가 피구를 할 때 벌어지는 일

 

 지난 17년에 미 SNS상에서 꽤나 유명세를 떨쳤던 영상입니다. 소프트볼 투수가 피구(Dodgeball)를 하는 장면을 담은 콘텐츠였습니다. 이 영상의 주인공은 당시 15세였던 블루밍턴-노멀 앤젤스(Bloomington-Normal Angels)의 선수 애디슨 슬레이백. 참고로 영상을 찍은 이는 애디슨의 아버지이자 블루밍턴-노멀 앤젤스의 코치인 JJ 슬레이백(당시 6년차. 현재는 자신과 딸 모두의 모교인 헤이워스 고등학교에서 소프트볼 헤드코치로 일하는 중)입니다. 그는 ‘휴식차원에서 선수들에게 피구를 즐기게 한 것’이라 밝혔습니다.

 

 앞선 영상은 ESPN과 MLB Network 등의 포맷을 통해서도 영상이 틀어졌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애디슨 슬레이백의 인터뷰를 들으면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과 동료들이 피구를 즐기던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세를 타게 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교인 헤이워스(Heyworth) 고등학교의 유명인사가 됐고, 체육시간(PE)엔 표적이 됐다’면서 즐겁게 웃더군요.

 

 당시 애디슨 슬레이백은 ‘시속 60마일(약 97km/h)의 패스트볼을 뿌릴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니까 영상 속 그녀가 던지는 피구용 고무공의 속도를 90km/h 안팎이라 짐작하면 됩니다. 참고로 엘리트 레벨 프로 소프트볼 선수들이 뿌리는 패스트볼의 속도는 평균 100-110km/h 수준입니다. 강속구 투수들은 120km/h 안팎까지 공을 던질 수 있다고 하고 말이죠. 이듬해인 지난 18년의 투구 동영상(16세가 된 시점)을 보니 최고구속이 62마일까지 상승한 상태(약 100km/h)였습니다.

 

 6년 전의 애디슨 슬레이백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서도 소프트볼을 하는 게 바람이다’고 말했는데, 찾아보니 고교 졸업 후 채터누가 스테이트 커뮤니티 칼리지(Chattanooga State Community College)에서 선수 생활을 했더군요. 소프트볼 선수로서의 성적은? 미국의 2년제 전문대에서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기 위해선 성적이 뛰어나든지 선수로서의 잠재력이 보이든지 스타성이 있든지(꼭 농구나 미식축구 같은 메이저스포츠 관련 종목 부원만이 아니라 심지어 치어리딩 스쿼드의 게다가 남성 부원조차도 경우에 따라 가능하다) 어떤 가시적인 잠재력이 엿보여야만 합니다. 작년에 애디슨은 자신의 SNS를 통해 4년제 사립대학인 캠프벨스빌 대학(Campbellsville University)에 입학을 했단 소식을 알렸습니다. 학업과 소프트볼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동시에 이어갈 수 있게 된 사실에 기쁘단 메시지를 전하며 말이죠. 그 안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개인의 땀과 눈물과 노력 그리고 환희가 담겨있으리라 짐작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가서도 소프트볼을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17년의 어느 날 갑자기 일었던 대중과 미디어의 애디슨 슬레이백에 대한 관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식고 말았습니다. 당연합니다. 24초라는 짧은 영상 속에 담긴 모습을 제외하고 본다면, 그녀는 정말이지 우리 옆집에 살고 있는 아무개처럼 평범하기 짝이 없는 소녀이자 그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으니까요. 어느 평범한 소녀의 심장을 마구 두드리며 흥분케 했던 한여름 밤의 꿈이 꿈결처럼 지나가고, 저 평범했던 소녀 애디슨은 방학마다 고향에 돌아와 지역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버는 평범한 대학생이 돼있었습니다. 지난 6년 간, 과거 자신이 말했던 꿈을 한걸음씩 현실화해가며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단 사실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답니다. 

 

 

 나가며, 피구와 관련한 넋두리 하나

 

 World Dodgeball Federation이 주관하는 Dodgeball World Championships 경기 영상을 보라. 우리가 아는 피구의 모습은 아니지만, 저것이 바로 국제적으로 통용이 되는 공식 룰에 따른 피구경기의 형태이다. 우리가 학원에서 경험했던 그러니까 한두 명의 선수를 제외하고 모조리 주변인으로 전락시키던 그 피구와 달리, 모든 게임 참가자들에게 공을 만질 기회가 제공이 되며 시합 참여를 위한 적극성을 요구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단체구기종목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미국에서 어린 자녀를 키운 분들이라면 아마도 피구와 관련한 얘기를 많이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피구는 일부 주(州) 교육청에서 ‘PE 프로그램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란 공식적인 의견을 내놓은 종목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신체를 직접 겨냥해 맞히는 스포츠란 점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약자를 향한 내재된 공격성의 발현을 긍정하게끔 만드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며 나아가 왕따 및 집단 괴롭힘(Bullying)의 수단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란 연구 결과 등을 근거로 들면서 말이죠. 이러한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계기라고 한다면 역시나 ‘교내 총기 난사 사건의 빈도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라 하겠습니다.

 

 이상은 피구를 학교 내 PE 프로그램으로 활용하는 걸 전면 금지하는 곳, 초등부까진 허용하다 중등부부터 금지하는 곳, 전면 허용하는 곳 등이 지역별로 또 학교별로 나뉘어 있는 이유입니다. 사실 전 이번 포스팅을 작성하기 전까지 미국 내 대다수 학교에서 피구가 금지가 된 상태로 알고 있었답니다. 예전에 피구와 관련한 영상을 보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아무개 선수가 남긴 비판적 멘트를 접할 수 있었고, 그것이 지금껏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었거든요. ‘미국에서 피구를 금지하고 있는 학교가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피구는 공격적인 스포츠도 위험한 스포츠도 아니다.’

 

 그러니까 학창시절 우리가 했던 피구는 떡대에게 공을 전달해 상대 한 명씩 사냥하게끔 하면 되는 거였다

 

  • 북미식 피구는 과거 우리네 체육시간에 하던 피구왕 통키식 피구 유형-이라 말하고 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눠 흰줄 대충 그은 공간 안에 몰아넣은 채 공 하나 던져주고 방임하던 형태-이 아니라 제도적 스포츠화가 이뤄진 Dodgeball을 뜻한다. 전자와 후자는 그 형태가 꽤나 상이한데, 대한피구연맹에선 저 북미식 Dodgeball을 두고 ‘멀티볼’이라 부르고 있다. 국제피구연맹(International Dodgeball Association)과 국제피구협회(World Dodgeball Federation)가 이 스포츠와 관련한 주된 국제단체라 하겠는데, 이중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대표 단체는 WDBF이다. 대한피구연맹은 저들이 만든 룰을 기준으로 하는 공인된 피구 형식(단, 나라별 지역별 커뮤니티별로 변형 피구가 존재함)이자 게임 참가자들로 하여금 시합 내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가능케 만드는 피구의 형태란 점(특히나 학원 내 체육활동 프로그램으로 피구를 접했던 수많은 우리나라 성인들에게 있어서 피구란 종목은 대개 비호감으로 남아있다. 당시의 룰에 따라 경기를 하면, 필시 한두 명 사냥꾼의 유희를 위해 다수가 무기력한 사냥감으로 전락하는 수밖에 없다)에서, 유튜브를 통해서든 찾아가는 생활체육 피구교실을 통해서든 나름의 방식으로 멀티볼을 국내에 홍보하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도 피구왕 통키 유형의 구식 피구는 학원 체육시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게으르며 꽤나 질이 낮은 스포츠 프로그램이라 생각하기에(따지고 보면 단체를 위한 성격이 전혀 없다) 멀티볼로의 전환과 이행은 필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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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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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30 06:43:55

저정도면 통키아버지가 돌아가신게 납득이..

WR
2023-05-30 10:02:55

방심하고 있다 빵 터졌네요 ㅋㅋ 

2023-05-30 07:18:13

벤스틸러 주연의 닷지볼이라는 영화도 있었죠
그리고 닷지볼이 bully에 이용된다고 한 것은 영화 원더에도 그런 장면이 나왔었어요

WR
2023-05-30 10:10:58

콜롬보 님의 말씀처럼 피구를 불링의 도구로 표현한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피구가 아니라 하더라도 여러 창작물에서 신체를 활용하는 스포츠란 걸 괴롭힘의 도구로써 사용한 경우가 꽤 많긴 했죠. 

 

여담으로 요는 '어떤 대상에 있어 부정적인 요소에만 집중해 해석할 필요가 얼마나 있느냐'라는 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당장 10여 년 전 뉴햄프셔 주 교육청에서 학원 내 피구 활동 전면 중단을 주문했을 때 '도대체 왜? 그럼 미식축구는? 농구는? 단체 스포츠는 모두 없애버리고 개인 스포츠 아니 헬스 따위나 하란 소린가?' 등의 비판적 목소리가 그래서 일었던 것이 아녔나 생각을 해봅니다. :-) 

2023-05-30 08:03:33

 도지볼이라고 해서 일본어 혼용된 외래어인줄 알았더니 영어네요. 오늘 처음 알고 갑니다. 

 

 언더스로우로 던지는 볼의 위력이 무시무시 하네요.

WR
2023-05-30 10:16:24

Dodgeball을 도지볼로 읽는 경우도 있단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전 미국식 발음으로 읽다 보니 상상을 하지 못했는데, 말씀처럼 일 본토식 발음을 차용한 게 도지볼이 아닐까 싶네요. :-) 

 

소프트볼 투수들이 뿌리는 공의 속도는 사실 일반인이 감당하기엔 무리라 하겠습니다. 저 영상을 처음 봤을 때 '도대체 저 친구들은 저 투수가 뿌리는 공을 왜 무서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내려 하는 거지?'라 의아했던 기억입니다. 일반인 상대였다면 십중팔구 저 솟구치는 광속구를 보며 비명을 지르든 뭐든 아주 난리가 났을 테죠. 맥락을 알았을 때 비로소 '아, 소프트볼 선수이라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는 거였군'이라 바로 수긍을 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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