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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탈리아 극우정당의 집권 관련 헤밍웨이의 단편 혁명당원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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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2-09-26 18:50:55


이탈리아에서 극우 총리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떠오르는 작품이 있습니다.
헤밍웨이의 혁명당원이라는 단편입니다.
현대문학에서 내놓은 세계문학 단편선 1권 헤밍웨이편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헤밍웨이의 작품 답게 그냥 읽으면 이게 뭔소린가 싶습니다만 파고들면 무솔리니가 집권한 기저에 깔린 이탈리아인들의 심리를 무섭도록 냉철하게 묘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당연히 제 개인적인 해석이기 때문에 내용에 대해서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심각한 스포일러 주의!!!!!!!










작품을 읽고 처음에 든 생각은 '그'가 스위스의 시옹에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것은 일부러였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는 혁명가지만 사실은 이상을 꿈꾸기만 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먹물이며 혁명이라는 이상을 악세사리처럼 이용할 뿐인 위선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어째서 현실 감각도 없고 위선적인 인물인지 작품에 드러난 증거들 위주로 살펴보겠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그'가 감옥에 갇힌 스위스의 시옹이라는 도시는 이탈리아 서북부에서 북상하여 알프스를 넘으면 바로 나오는 곳입니다.
즉 그는 국경을 넘자마자 바로 붙잡힌 거죠.
왜 붙잡혔을까요?
그의 임무는 헝가리 정부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는 동지를 도와주는 일이고 스위스는 중립국이니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을텐데 말이죠.
그는 (아마도) 무전취식으로 붙잡혔습니다.
그는 당 본부가 준 명령서를 가지고 이탈리아를 여행합니다.
그런데 그는 무일푼인데도 불구하고 기차도 타고 밥도 얻어먹습니다.
모두가 그를 잘 돌봐주죠.

[그는 그것을 차표 대신 사용했다. 기차 승무원들은 수줍음이 많고 조용한 그 청년을 교대로 돌봐 주었고, 돈이 없는 그를 식당 칸 카운터 뒤에서 공짜로 먹여 주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그림들을 구해서 들고 다니기도 합니다.
돈도 없다면서 어떻게요?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정도로 친절했을까요?

이것 때문에 작중 배경인 1919년의 이탈리아를 조사해 봤는데요.
작중 배경인 1919년 8월경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지기는 했지만 공표되지는 않은 미묘한 시기였습니다.
때문에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오스트리아는 아직 여러 나라로 분할되기 전이라 오늘날의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 여러 나라가 함께 모인 제국이었습니다.
작품에 나온 헝가리는 바로 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죠.
그런데 당시 이탈리아는 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라이벌이었습니다.
19세기 이탈리아가 이탈리아 왕국으로 통일이 이루어지면서 미처 회복하지 못한 고토인 티롤과 트리에스테 지방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차지하고 있었고 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탈리아는 1차 세계대전에 뒤늦게 연합군으로 참전했었던 상황이거든요.
첫 번째 이미지의 지도를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모바일이라 이미지가 머리에 붙어요...)
이 지도에서 미회복 이탈리아로 표시되는 곳이 오스트리아로부터 회복하지 못한 티롤, 트리에스테 지방입니다.



이탈리아가 1차 세계대전에 연합국으로 참전했던 승전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르사유 조약에서 푸대접을 받은 것 때문에 나중에 전세계를 전화로 몰아넣었던 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으로 나아간 것을 생각하면 당시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그'는 헝가리(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고통을 받는 동지를 도와주라는 명령서를 가지고 여행중입니다.)

즉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항하는 당의 명령서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이탈리아를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었던 거죠.
'절대악'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항하는 '용감한' 그를 위해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기차도 거저 태워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협조를 아끼지 않은 겁니다.
물론 이런 이해관계가 없는 중립국 스위스에서는 이런 당의 명령서 따위는 휴짓조각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그가 이탈리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스위스에서도 당의 명령서를 밥값, 차삯으로 제시하려 들자 무전취식으로 체포되었을 겁니다.

즉 소설에 등장하는 '그'는 이탈리아에서나 통했던 '당의 명령서'를 스위스에서도 밥값이나 차삯으로 제시할 정도로 현실 감각이 없는 이상주의자입니다.
동시에 이탈리아가 고토의 회복이라는 국가적 가치를 위해 일치단결하는 것에서 '우경화(파시즘)'로 치닫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혁명당원이 발표된 1925년의 이탈리아는 이미 무솔리니가 창당한 파시즘 정당이 정권을 잡아 무솔리니가 총리를 맡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나중에 유럽에 있어서 '파시즘과의 대리전'으로 평가 받는 스페인 내전에 종군기자로 참가한 헤밍웨이의 이력을 생각해보면 당시의 이탈리아에 대한 헤밍웨이의 비판은 상당히 시사적입니다.


다음으로 '그'가 실제로 어떤 인간인지를 암시하는 표현들을 들춰보겠습니다.

[조토 디본도네, 마사초, 그리고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림들은 복제품을 구입해 <아반티> 지에 싸서 가지고 다녔다. 안드레아 만테냐의 그림은 좋아하지 않았다.]

먼저 <아반티> 지.(Avanti)
이탈리아어로 '앞으로(Foward)'를 뜻하는 단어이고 이탈리아 사회주의 정당의 기관지를 가리킵니다.
사회주의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을 일으켜 성공시키기 위한 이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반티>는 '혁명가인 그'의 정신을 상징하는 매개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이 <아반티>에 싸서 가지고 다니는 물건들이 복제된 그림이라는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그'의 정신, '그'의 이상은 가짜라는 암시입니다.
그리고 '그'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암시이기도 하죠.

여담입니다만 이 <아반티> 지는 무솔리니가 파시스트가 되기 전 사회주의 정당에 몸을 담고 있던 시절에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네요.

그럼 만테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두 번째 이미지)
이 짧은 소설에서 '그'가 만테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무려 2번이나 등장합니다.
하나는 위에서 예시로 든 문장이고 또 하나가 다음의 문장입니다.

[내가 밀라노에 있는 만테냐 작품을 알려 주자, 그는 만테냐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무척이나 수줍게 말했다.]

이걸 보면 뭔가 냄새가 납니다.
소설에서 언급된 화가들은 모두 르네상스 시대에 성화聖畵로 유명했던 화가들입니다.
'인본주의'로 대표되는 르네상스 시대인 만큼 인체를 아름답고 사실적으로 그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이나 조각을 보면 하나 같이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인간의 육체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화 등에서 등장하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육체를 보면 마르고 초췌하기는 합니다만 아름답습니다.
얼굴이야 말할 것도 없고 몸도 8등신으로 비율도 완벽하고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몸짱입니다.
그것도 새로 개발된 명암법, 원근법까지 동원해서 대단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서 진짜 완벽한 모델의 몸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만테냐라는 화가의 작품은 약간 스탠스가 다릅니다.
구도나 인물의 모습만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상황 자체도 사실적입니다.
문학으로 비유하자면 리얼리즘의 정신을 화폭에 구현하고 있는 것이죠.
그의 대표작 '죽은 그리스도'를 보면 죽은 예수의 몸을 극단적인 원근법을 적용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죽은 그리스도의 육체는 사실적이면서도 대단히 왜소하고 초라합니다.
이상적인 육체로도 묘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그리스도의 고통과 그 상황의 비통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올렸던 그림을 다시 한번 살펴보시죠.
만테냐가 이용한 극단적인 원근법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은 볼품 없이 왜소하게 보입니다.
머리는 크고, 다리는 짧고...
이상적인 아름다운 육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그리스도의 모습과 그가 받았을 수난과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밖힌 자국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올 정도로 말이죠.



그림에 대한 해석은 다분히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만 다행스럽게도 헤밍웨이는 이후의 작품에서 만테냐에 대해서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먼저 무기여 잘 있거의 한 구절입니다.

나는 말했다. 「만테냐는 어때?」
「어려운 건 묻지 마요.」 캐서린은 대답했다. 「하지만 그 화가를 알긴 해요. 비통한 그림을 잘 그렸죠.」
「아주 비통하지.」 나는 말했다. 「못 자국들이 잔뜩 나오는 성화(聖畵)를 그렸어.」

다음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한 구절입니다.

「온 세계에서 압박받는 모든 사람에 대한 의무에 헌신한다는 감정이었지. 종교적인 경험과 마찬가지로 말로 하기 곤란하고 쑥스럽지만 바흐의 음악을 들었을 때, 샤르트르 대성당이나 레온 대성당 안에서 거대한 창문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우러러보았을 때, 또는 프라도 박물관에서 만테냐와 그레코와 브뤼헬의 명화를 보았을 때 느끼는 것처럼 진솔한 감정이었어. 전적으로 완전히 믿을 수 있는 뭔가에 역할을 맡겨 주고, 또 그 일에 종사하는 다른 사람들과 완벽한 형제애를 느끼게 해주는 감정이었지. 이제껏 전혀 느껴 보지 못했지만 이제 그것을 경험했지. 그래서 그것에 엄청난 의미와 이유를 부여한 나머지 이제 자신의 죽음마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끼게 됐거든. 죽음이란 다만 의무를 이행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피해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어.」

즉 헤밍웨이의 작품에서 만테냐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따르는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목숨을 바쳐 그야말로 '순교'할 수 있는 자세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만테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혁명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없으며 '그'가 내세우는 혁명과 이상이 사실은 멋지게 치장된 입에 발린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것은 그의 소식이 스위스의 시옹에서 감옥에 갇혀 있다는 데서 끊어진 것을 통해서도 유추가 가능합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라면 그가 혁명을 위해 희생하기 싫어서 일부러 붙잡힌 것이든,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현실감각이 없어서 붙잡힌 것이든 그는 고작해야 무전취식 쯤으로 붙잡혔을 텐데 이런 잡범은 오래 갇혀 있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 뒤로 그의 소식이 끊겼다는 사실은 감옥에서 나온 뒤 '그'가 혁명으로부터 발을 뺐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합니다.

아니면 처음으로 맞닥뜨린 고난에서 간단하게 뜻을 꺾어버렸던지 말이죠.


사족으로 '그'가 나와 헤어지기 전에 나눈 대화는 꽤 의미심장합니다.

"여기엔 모든 게 다 있으니까요. 모든 사람들이 신뢰하는 유일한 국가죠. 모든 것들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모든 것들이 시작되는 곳'.
작품의 성격과 소설이 발표되던 1925년을 시야에 넣고 고려해 보면 '파시즘이 처음 시작된 곳'으로서의 이탈리아를 연상하게 되는 건 저 뿐일까요?


님의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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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omments
2022-09-26 12:56:27

 안 읽어 본 소설인데... 찾아서 읽어 봐야 겠네요.  

WR
1
2022-09-26 12:59:22

10분 내외면 읽어내실 수 있을 정도로 짧은 소설입니다.
한 번 도전해 보세요.

1
2022-09-26 13:09:04

본문글이 소설보다 더 긴거 아입니꽈?
집에 가서 다시 한번 정주행 해야겠습니다

WR
2022-09-26 14:16:05

사실 몇 년 전에 썼던 글을 살짝 손봐서 올린 건데 당시에도 같은 말을 들었다능...

2022-09-26 13:05:38

  늘 그렇지만 큰 과업들은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귀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WR
1
2022-09-26 14:18:08

과업을 이루어낸다는 건 어려운 문제 같습니다.
우리 같은 필부필부들이 할 수 없는 일인 거 같으면서도 결국 과업을 이루어낸 사람들을 보면 그들도 본래는 필부였으니까요.

2022-09-26 13:48:57

 뭐가 이리 짧단 말입니까, 382단어 밖에 안된다니, 한 문장 짜리 소설은 가짜라더니 그런 말이 생길만도 하네요. 덕분에 금방 읽고 스포 걱정 없이 까치의 꿈님 해설을 편히 봤습니다.

 

한 페이지 짜리 소설이 마치 그림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WR
2022-09-26 14:19:10

헤밍웨이가 주장한 작법인 '빙산이론'처럼 적혀 있는 건 빙산의 일각인데 담겨 있는 건 정말 거대하더라능...

2022-09-26 14:29:00

제가 사실 헤밍웨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쓰신 글의 윗부분을 보고 나중에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은 지나쳤지만 언제건 읽을 기회가 생기고 나면 감상문을 올려보겠습니다.

WR
2022-09-26 16:24:48

기대하겠습니다요.
달랑 2~3페이지 밖에 안 되는 짧은 소설이라 금새 달릴 수 있습니다요.

1
2022-09-26 15:34:31

흥미로운 소설이네요.

티롤은 1차댜전후 결국 이탈리아령이 되는데 오스트리아인들에게 가장 뼈아픈 영토상실이었다고 합니다. 티롤 즉 오스트리아에서는 남티롤로 부른 지방은 오랫동안 오스트리아령이어서 언어도 문화도 종족도 오스트리아 독일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상실.
반대로 트리에스테는 1차대전후 이탈리아가 대부분 차지하지만 2차대전후 추측국의 일환이었으므로 상실 위기를 겪었으나 운좋게 지킨 경우입니다. 이탈리아가 1차 대전, 2차 대전 모두 참전의 댓가? 치고는 승리자라고 벌수 있습니다.

WR
2022-09-26 16:26:23

이탈리아의 영토문제는 또 이런 디테일이 있었군여.
애초에 세계대전에서 그 모양으로 깨지고도 선진국 지위를 유지한 거 보면 운이 따라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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