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짧았던 2박 3일의 부산 <3>
이제 2박 3일의 부산에서 돌아오는 마무리입니다.
[3] 3일 차
아침 7시 30분.
"아침 뭐 무을래?"(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간에 문 연 식당이 있어요?"
"그래? 더 자라. 인나면 전화해라."
조금 더 자고 싶지만 기상해야 지요.
정확히 24년 전의 처음 만났던 온천장의 옛모습이 기억나는데 지하철 온천장역 부근에 들어선 빌딩들을 보면 많이 어색합니다.
관광지라고 보기는 애매한 휴일 온천장의 아침은 생각보다 많이 한산했습니다.
남포동 서울깍두기와는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온천장의 서울깍뚜기를 지나 부산대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다 죄회전 두 번 해서 다시 온천장 부근으로 돌아왔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이 부근에서 허름한 천막을 두른 리어커에서 콩국을 먹었는데 하며 다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01. 9시 넘어 선배형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해운대 부근에서 먹어볼까 했던 대구탕을 이 곳에서 맛봤습니다.
요즘 유명하다는 해운대에서 먹어본 적이 없으니 비교할 수 없겠지만 잡냄새 없이 깨끗한 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른 시간에 식사할 수 있는 곳이 여기 밖에 없기도 했지만 우리 테이블 외에도 이 곳 주민으로 보이는 편안한 옷차림의 제법 많은 분들이 여기서 아침을 드시고 계신 걸 보니 무난한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보같이 가게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지도를 확인해 봤는데 아마도 '양대감대구탕'이지 싶습니다.
굳이 이곳을 찾아 대구탕을 경험하고 싶은 분이 드실 만한 곳은 아니지만 부근에 오셔서 식사할 곳을 찾으신다면 여기서 한 끼 해결하셔도 되지 싶습니다.
"형, 저 처음 왔을때 심야버스에서 내려 목욕하고 나와 콩국 사준 거 기억나요?"
"그 아줌마 지금도 영업한다. 그런데 콩국은 없고 카페다."
지금은 천막을 뒤집어 쓴 리어커가 아닌 건물 구석 1평 정도 조그마한 매장입니다.
저를 알아보거나 저도 기억 못하는 아줌마(라고 했다가 선배에게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혼났음)와 조금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지하철역으로 왔습니다.
굳이 홈플러스를 건너 온천장역 승강장까지 나오신 선배와 아쉬운 인사를 나눴습니다.
"형. 이틀 내내 너무 고마웠어요."
"빨리 가라. 어데로 갈낀대?"
"아직 정한 건 없어요. 지난 번에 형이 온천장역 부근에서 고기 주는 밀면집 어디에요?"
"없어졌다."
"'소리소리돼지국밥'은요?"
"그기도 문닫았다."
"형이 괜찮다는 식당은 뭐 죄다 문 닫아요?"
"시끄럽다."
"뜨기 전에 전화해라.'
02. 올라탄 1호선에서 장인어르신이 제가 22년전 부산지방법원 출장때 사주셨던 완당면을 먹자고 아내사람에게 제안했습니다.
신기하게 아내사람은 이 완당면을 먹어본 적이 없었답니다.
완당면이라면 남포동에서 먹은 기억은 있다고 하는데 토성동의 이곳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토성동으로 가는만큼 여기서 점심을 먹고 임시수도박물관 거리와 보수동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원조 18번 완당 발국수'
저도 20년이 넘어 다시 찾는 것이라 반갑기는 했는데 맛있었다는 기억은 없었습니다.
홍콩에서 맛본 완탕면과는 달랐고 오히려 모밀국수(발국수)가 생각났습니다.
한참 점심시간인데 식당 안은 이외로 한가했습니다.
주문하자 얼마 되지 않아 완당면과 발국수가 나왔습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저의 입맛에는 후한 점수를 줄 만한 곳은 아닙니다.
그래도 22년전 제 앞에서 맛나게 드시던 장인어르신의 자리에 지금은 장인 어르신의 큰딸이 앉아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 한편에 올라오는 뜨신 기운이 좋았습니다.
벌써 인도에 떨어져 짓이겨져 적응이 아니되는 향을 풍기는 은행을 피하면서 1950년대 부산을 경험하기 위해 골목길에 올랐습니다.
- 토성동 거리를 걷는 중에 잠시 노무현 전대통령님의 변호사 시절 사무실을 들렀습니다. -
전쟁중 수많은 피난민들, 그리고 이 사람들을 안고 부대끼며 지냈던 부산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날 것대로 느끼기 위해 오고 싶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토성동과 보수동, 남포동까지 적지 않은 거리를 오랫 만에 걸어본 아내사람을 위해 음료수 사들고 어때백화점 옥상에 올랐습니다.
지극히 저의 생각인데 사방이 시원하게 열려있는 이 곳 전망대만큼 부산여행의 마무리로 좋은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여러 얘기를 나누던 중 서울에서 아내사람을 만나기 위해 주말마다 열심히 부산을 내려와 데이트를 나누고 마지막 코스는 거의 대부분 부산대 얘기가 나왔습니다.
국내선만으로 2년 미만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20,000을 채운 정신나간 시절이었지요.
그 옛날을 생각하며 남포동에서 부산대로 다시 향했습니다.
아침에 지났던 온천장을 거꾸로 지나 부산대역에서 풋풋(?)했던 청춘의 기분을 되살리고자 했는데 여기는 시간만 낭비한 꼴이 됐습니다.
그냥 기억 속에 두었어야 했습니다.
변해도 너무 변했습니다.
저와 아내사람이 자주 찾았던 2,500원짜리 순대국집은 당연히 없어졌으며 약간 오랜 티가 나던 가게들은 모두 서울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간판들로 채워져 있는 겁니다.
영화 "올드보이"속의 장소라도 찾아볼까 하다 다시 지하철에 올라 처갓집 식구들이 엄청 좋아했다는 만두를 맛보기로 하고 구포역으로 향했습니다.
공항과 가까운 구포라면 이번 부산 여행을 마무리하기도 제격이지요.
시간만 조금 더 허락하면 덕천로타리도 들러 갈비탕 한 그릇으로 2박 3일의 여행을 마치기에도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저와 아내사람의 전화가 동시에 울립니다.
이 태풍 때문에 우리가 타고 올라갈 비행기가 결항됐다는 문자가 떴습니다.
내일 오전 일찍부터 사무실에 일정이 있기 때문에 바로 코레일앱을 켭니다.
이 순간 결항된 비행기 승객들이 KTX도 몰릴텐데 최악의 경우 고속버스를 타야할 것도 고려하며 열나게 검색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9시 출발 KTX를 잡았습니다.
아마도 문자메시지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관광이건, 업무이건 문자를 바로 확인하지 않아 우리만큼 빨리 표를 찾지는 않았나 봅니다.
시간을 보니 구포에서 다시 부산역으로 나오는 것이 애매하다 싶어 서면역에서 환승하지 않고 그대로 부산역으로 향했습니다.
03. 아내사람에게 "여기는 기억나는 거 없어?"라고 물어 봅니다.
잠시 눈을 굴리더니 막내 처제와 외국어학원 다니던 시절 귀가 전 자주 들렀던 중국음식점이 있다는 겁니다.
굳이 부산까지 와서 전국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중식을 먹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인지 생각도 들었지만 자타공인 우리나라의 중국음식의 강자는 인천이 아니라 부산이고 타지인들만 붐비는 인천차이나타운과는 달리 부산역 부근의 중국음식점들은 맛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올드보이' 속의 최민식아저씨가 15년간 물리도록 먹었던 만두도 궁금하고(동구 장성향),
"범죄와의 전쟁"에서 하정우가 혼자 식사하던 식당도(중구 동궁),
"신세계"에서 황정민과 그 일파가 회식하던 식당(중구 화국반점)까지 가봤으면 좋겠지만 20대 풋풋했다는 아내사람과 막내처제가 학생 시절 자주 갔다는 식당에 갔습니다.
'사해방'
아내사람은 여기는 군만두를 먹어야 한답니다.
그런데 저는 부산에 온만큼 서울에서는 쉽게 먹을 수 없는 메뉴를 고르고 싶었습니다.
예전부터 아내사람이 먹고 싶어 하던 아리산면은 부산에서도 찾을 수 없으니 사천짜장을, 여기서는 군만두를 먹어어야 한다던 아내사람은 엉뚱하게 유니짜장을 주문했습니다.
만두를 추가할까 고민을 했는데 만두까지 먹기는 위의 공간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의 선택이 아주 잘못된 것임을 후회하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바로 옆 테이블에 나온 군만두와 찐만두를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만두가 먹고 싶어 한참을 고민했던 아내사람은 저보다 더 안타까웠을 듯 합니다.
"만두까지 먹으면 분명히 탈 날거야."
"그렇겠지?"
04. 올라온다는 태풍 때문인지 제법 비가 내리는 부산역을 잠시 둘러 봤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대합실이 마치 읍내 시장처럼 사람들로 난리가 났습니다.
대합실은 물론 한 층 위 식당들도 마찬 가지인 겁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참을 수 없던 것은 때아닌 더위에도 불구하고 공조기가 꺼져 있는지 온도와 습기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80년대 역에서나 볼 수 있었던 대형 선풍기가 대신 돌고 있으니 말 다했지요.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묻어나는 습기에 참지 못하고 다시 밑으로 내려와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기차에 오르기 전에 뭐 하나라도 사들고 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으로 평소 잘 먹지 않는 빵집에 들어 갔습니다.
아내사람의 진술은 남포동에서 날렸다는 빵집이랍니다.
부산에서는 유명한 곳인지 부산역 안에서만 두 개를 볼 수 있었습니다.
기차에 올라 숨을 돌렸습니다.
벼르고 별러 4년만에 찾았던 부산인데 다음은 언제올지 모르겠지만 올라오는 짧은 2시간 30분 동안 다음 부산 여행을 맘대로 짜봅니다.
진작 가봤어야 하는데 여러 사정으로 가지 못한 곳이 무지 많았습니다.
장기려 선생님의 기념관을 시작으로 이바구길도 걸어야 할 것이고, 최민식 선생님의 작품 속의 부산, 그리고 영화 속의 부산....
아마도 이 부산이란 곳은 제가 군대 시절을 빼고 평생을 살아온 서울만큼이나 정이 들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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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과 함께 수필 형식으로 된 부산 먹방기 잘 읽었네요.
처음에는 소설인줄 알았네요.
완당면 맛이 궁금했었는데 생각보다 별로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