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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폭우 속 반지하에 얽힌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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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9 17:37:40

비가 많이 왔네요. 디피에도 반지하 침수 사례가 오라오는 걸 보고 옛 생각이 납니다.

결혼 전 어떤 문제로 신혼집을 신이문동 골목 안 반지하에 얻을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신이문역에서 내려 꼬불꼬불 들어가는 어느 골목에 맞닿은 작은 알루미늄 샷시문을 열고 3계단 쯤 내려가면 부엌 겸 거실이 있는 그런 작은 전형적 반지하방이었지요.

98, 99년 어느 핸가 확실친 않지만 다행히 어찌어찌해서 상계주공을 전세로 구해 이사 갈려고 집을 내 놓았던 때 입니다. 그해 여름 장대같은 장맛 비가 골목을 넘어 샷시문 틈 사이로 쏟아져 들어와서 거실 바닥에서 팬티만 입고 쓰레받기로 물을 떠서 골목으로 퍼 올리고 있었습니다. 골목으로 퍼 올리면 다시 내려오는 무한반복 노가다를.......... 머 하여튼 그러고 있는데 누군가 샷시문을 막아 서더군요. 집을 보러 온거지요. 그 폭우를 뚫고....... 아빠, 엄마. 그리고 딸인지 아들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초등 저학년생 한명 그렇게 한 가족(?)이......

골목에서 넘쳐나는 빗물이 집안으로 개울이 되어 쏟아지고 있고 팬티만 입은 저는 정신없이 그 물을 퍼 내다가 얼떨결에 일어나 어색한 웃음을 보였고 그 가족과 중개사, 그렇게 네명은 무표정하게 저를 내려다 보시다가 별 말없이 돌아서 가셨습니다. 물론 집 안에는 들어 와 보시지도 못했지요.

전세가 빠져야 저도 무탈하게 이사를 갈텐데 하필 이런 날, 이런 꼴이라니... 그런 이야기를 와이프랑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그 분들이 그 집을 계약하시더군요.  그 꼴을 보시고도..... 생각컨데 그 분들은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 상황을 보고도 그 집을 계약을 했을까요.  아마 비용 문제였겠지요. 아직도 이리 비가 많이 오면 그 집, 그 물난리 그리고 그 가족 생각이 나고 그 아이의 처연한 눈매가 어른거립니다. 

이제는 저도 거기서 나와 높은 아파트 살듯이 그 분들도 그 이후 잘 풀려서 더 높은 집에서 사시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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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2-08-09 17:45:14

처음 입사했을때 핸드폰도 없던 시절

이렇게 비오고 같은 사무실에 직원 출근안하면

약도들고 집에 찾아갔던 기억이 나요

반지하에서 혹시나 변고를 당한건 아닌가 해서요

WR
1
2022-08-09 17:49:38

네, 그래도 예전에는 반지하방에 많이 살았어요. 

돈이 없어서.....

2022-08-09 17:53:56

네 저도 반지하 살았는데
겨울에 사수가 찾아온 적 있어요
연탄가스 마셨나 해서요
그냥 술먹고 못일어 난거 였는데..

WR
2022-08-09 18:01:53

ㅎㅎㅎㅎ, 그런 것도 젊은 한 때 잼나는 추억이지요. 


2
2022-08-09 17:45:46

잘 풀리셔서 다행입니다. 전 어제 반지하 사망사건 기사 보고 너무 가슴이 아프더군요. 영화 기생충 생각도 나고... 누구의 잘못이라고 비난하기보다, 그저 누군가는 그런 곳에서 살아야 하고 그런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슬펐습니다. 

WR
2022-08-09 17:47:16

네, 저에게는 이제 그저 추억이 되었지만 그 가족분들 잘 되셨기를 바랍니다.

2022-08-09 18:11:22

2000년 초반에 서울상경해서 중화동 반지하에서 산적이있습니다.
어느해 더운 날 퇴근하고 집에왔는데 열어놓은 창문으로 길고양이가 들어와서
화장실에 죽어있어서 식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옆 단칸방에 아빠,엄마,대여섯살난 남자아이와 갓난쟁이 4인 가족이 살았는데
그 가족들은 지금은 좀 너른 집으로 이사하고 잘 사는지. . .
저도 본문글을 읽으니 생각이나네요.

WR
2022-08-09 18:47:53

당시 와이프가 바퀴벌레 때문에 엄청 힘들어했었습니다.

애피소드도 많고... 추억이네요.

2022-08-09 18:35:20

글을 잘 쓰셔서 상황이 눈에 들어오네요 ㅠ 그분들도 잘 되셨길 바래봅니다.

WR
2022-08-09 18:49:31

네, 그 집을 계약하시다니 형편이 않 좋다는걸 가늠할 수 있죠.

잘 되시기를..... 그 꼬마 얼굴은 생각 안하고 눈빛만 생각납니다.

2022-08-09 19:09:24

 너무 마음 아픈 얘기네요. 

2
2022-08-09 20:40:44

아.. 계약했다는 사실이.. 참.. ㅜㅜ

2022-08-10 02:48:53

 그 아이가 잘되서 잘살고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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