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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군시절 중대장님이 지금은 청와대에 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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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1 17:08:22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를 하고도 정말 정말 끔찍하게 싫었던 군대였지만,  

 

유일하게 낙이 있었다면, 중대장님을 보는 거였습니다.   

 

군대에 있으면서, 정말 사회에서는 전혀 보지 못하던 온갖 부정부패, 비리,사건사고은폐 등등.... 상상할 수도없는 일들을 많이 겪었죠.  물론, 구타도 있긴 했지만...  그런 육체적인 스트레스보다는.. 

저 같은 경우는 사회에서라면, 전혀 만날 일 없는 쓰레기같은 인간들과 같이 지내야 한다는게 정말 너무나도 스트레스였습니다.  

 

제가 철원 3사단에서 복무를 했는데요. 철책경계근무 부대로 자대배치를 받아서, 이등병때 바로 경계근무부터 서기 시작했죠.  그런데, 신교대때 철책경계 초소 견학 코스가 있었는데, 그 때 방문했던 부대로 배치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중대장님이 계시던 곳이었죠. 

 

기억에 남는 중대장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저는 바로 3사단 신교대로 배치를 받고 앞으로 이 군생활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라는 좌절감에 헤매고 있을 때였거든요.  

 

그런데, 그 때 신교대에서 견학코스로 잡았던 부대의 중대장님이 신병들에게 해 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 너희들은 군대에서 딱히 배워갈 건 없다.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걸 배워 갈 건 없는데, 다만,지금은 새끼 독수리에 지나지 않은 너희들이 제대할 때 쯤이면, 어른 독수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튼튼한 두 날개를 갖게 될 것인데, 그 두 날개중 하나는 인내심이고, 나머지 하나는 독립심이다.  이 두가지 날개를 갖고 제대를 하면, 너희들의 군생활은 성공한 군생활이 될 것이다. " 

 

음.. 지금 생각하면, 뭔가 손발이 오그라들만도 하지만, 그 때의 저는 이 말에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 나도 군생활에서 배워 갈 수 있는 것이 있구나. 마냥 버리는 시간이 되지는 않겠구나하고 위안을 받았죠. 

 

신병으로 자대배치를 받고, 중대장님과 면담을 하는데, 예전에 중대장님께서 신교대 훈련병이던 저희에게 이런 얘기를 해 주신 적이 있어서 저는 그 말로 크게 위안을 받았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신병이 없었나 봅니다. 중대장님이 놀라시더군요.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그 말로 위안을 받았다는 것도....

 

그 계기로 나름 중대장님과 친해지게 되었는데요. 철책 야간 경계 근무를 서다 보면, 가끔 중대장님이 순찰을 도시는데, 제가 근무하는 초소에만 오시면, 거의 한시간 가까이 썰을 풀다 가시곤 하셨죠.  철책 경계근무를 서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수는 정면의 철책 방향을 경계하고, 부사수는 측후방의 간부를 경계하니까요.(?) 

 

알고보니, 이 분이 대대로 내려오는 군인 집안의 엘리트이셨더군요. 육사 출신에 청와대 경호실에 있다가 오신 분이셨습니다.    

 

혹시나 해서 자세한 얘기는 못 드리지만, 청와대 근무시절 이야기, 육사 입학을 위해 공부할때 이야기 등등...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셔서 나름 은근 중대장님을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싫은 군대이지만, 같은 군인이 봐도 멋있고, 작은 키로 인해 다소 왜소해 보이는 체격이지만, 나름 자세 나오는 군인이셨습니다.   엄청 똑똑했고, 아는 것도 많고, 교육 시간에는 여러가지 전쟁사를 비롯한 역사이야기부터 일화를 많이 얘기해 주셨죠. 쉬는 시간에는 늘 책을 끼고 사셨고요. 

 

경계 근무 기간이 끝나 후방으로 빠진 후에는 각종 훈련 시범에서도, 전략적으로 접근해 상 타는 법을 잘 아셔서 준비하는데 좀 힘들긴 했지만, 늘 부대 훈련,시범 등에서 상을 많이 타 부대원들이 휴가도 많이 나가기도 했습니다.  

 

군대 시절 모든 기억은 다 잊었지만, 유일하게 기억하는 중대장님이름이어서, 간혹 인터넷에서 찾아 보고는 하는데, 그동안 주요 요직을 거치시더니 최근에 보니, 5월말에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으로 진급하셨더군요. 조만간 중장 진급을 앞두고 있다는 기사도 나오네요.  

 

이상 제가 아는 군대에서 제일 계급 높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분은 저를 기억 못하실지 모르지만, 언제 시간이 되면, 한 번 찾아가 보고 싶네요. 

 

온통 부정적인 것들만 가득한 군대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던 분의 이야기입니다.  

님의 서명
- 비아냥, 빈정대지 말고 직접 얼굴 마주보면서 할 수 있는 말만 글로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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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1-06-11 17:15:21

저만 만나면 "야 3소대장. 담배하나만 주라." 하던 중대장님이 생각나네요.

군대에 안어울리는 참 착한 사람이었는데... 진급은 잘 하고 계신지 모르겠네...

WR
2021-06-11 17:32:31

저 중대장님은 군대에도 정말 잘 어울리셨지만, 다른 곳에 계셔도 참 잘 어울릴만한 분이셨습니다.  중대장님 덕분에 유일하게 남은 군시절 긍정적인 기억을 가질 수 있죠. 

2021-06-11 17:29:28

좋은 중대장을 만나셨군요.
제 중대장은 제대한지 7년정도 지나 연락이 되서 만났는데 다단계쪽에서 같이 일해보자고ㅋㅋㅋ
일만 죽어라 부려먹고 해준것도 없더니 참내.

WR
2021-06-11 17:35:07

막상 그 당시에는 그 분이 그렇게 좋은 분인지 몰랐습니다. 다들 그렇겠지만, 군대가 처음이다 보니 대부분의 중대장님은 다 그런 스타일이신 줄 알았죠.   저 중대장님이 다른 부대로 가시고, 후임으로 온 쓰레기 중대장을 만나고 나서 아... 그 분이 엄청 좋은 분이셨구나 하고 나중에 깨달았죠. 

1
2021-06-11 17:39:56

누구신지 대번에 알겠네요. 저 복무할 때 옆사단 사단장이셨는데 그 인품이 옆 사단 여하 대대들에까지 널리 퍼질 정도였으니... 저도 군단에서 몇 번 뵌 적 있는데 기품이 대단하신 분이셨습니다. 진정한 지휘관, 참군인이라는 느낌이었어요ㅎㅎ

WR
1
2021-06-11 17:46:33

혹시 강ㅅㅊ 소장님 맞으시나요 ?  

1
2021-06-11 17:53:52

네 맞습니다ㅎㅎ

WR
1
2021-06-11 17:59:14

오.. 이런 우연이... 그 분을 아시는 분을 여기서 또 만나게 되다니... 참 세상이란게 좁네요.  좋은 분에 대한 좋은 기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 기분이 너무 좋네요. 역시나 어디에 계시든 그 인품과 명성이 자자했나 보군요. 

1
2021-06-11 18:05:25

부럽네요.
전 복무시절 제대로 된 장교나 부사관을 보지 못했네요 ㅎㅎㅎ

WR
2021-06-11 18:13:54

ㅎㅎ   아마도 대부분이 그렇죠. 제가 특히나 운이 좋았나 봅니다. 

2
2021-06-11 18:21:00

 namu.wiki/w/국방개혁비서관

WR
1
2021-06-11 19:10:49

네. 이 분 맞으십니다. ㅎㅎ

2021-06-11 18:44:05

지금 생각해보면 존경할만한 은사나 군대 장교 저는 전혀 없습니다.
특히 군시절 장교들은 진상들만 모아 놓은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WR
2021-06-11 19:11:28

쓰레기장이었죠. 저도 이 분 외에는 딱히 기억나는 사람이 없습니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요. 

2021-06-12 05:34:47

아마 백퍼 기억하실 겁니다.

WR
2021-06-12 11:20:49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이미 20년도 더 된 일이라...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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