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전문대 전산과 나온 꼰데입니다.
학교 등록금은 아버지가 마련해주셨고
부산 영도에 있는 나무로 된 옛날 일본식 주택에 자취하면서
나머지 생활비는 제가 알바 뛰면서 벌었습니다만 ,
그 시절 알바가 자갈치 시장에서 비린내 뿜뿜 풍기는 생선 상자 나르거나
공사판 노가다 알바 , 아니면 술집 서빙, 식당 주방 보조였습니다.
지금 같은 편의점들이나 프랜차이즈 커피숍 , 식당들은 거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97년 2월에 졸업하고 나와
친구, 선배들 있는 컴퓨터 상가에 눈치밥 먹으며점심, 저녁만 먹는 무임금 알바 뛰었구요 ,
모 소프트 회사 개발팀 들어가서
월급 50만원에 야근 , 주말 특근해서 70만원 받다가
97년 11월 IMF 터졌고 납품할데를 못찾아서 회사에서 98년 반강제 퇴사합니다.
손바닥만한 회사인데도 대놓고 해고하는 배짱은 없어
사람 쫓아낼려고 별의별짓을 다 하더군요.
참 눈치 없다는 핀잔 한마디에 두손 두발 다 들고 나왔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실업자 재취업교육 마련해줘서 낮에는 그거 들으면서
밤에는 새벽 5시까지 알바 뛰었습니다.
해고가 아닌 자진 퇴사라서 실업급여 대상도 아니었기 때문이죠.
일요일에 자고 있으면 너무 피곤해서 눈물이 펑펑 흘러나오던 시절이었고
어쩌다 돈 아껴서 X데리아 데리버거 하나 사먹으며 참 좋다~ 했었죠.
알바 자리가 끊기면 배가 너무 고파 눈을 허옇게 뜬 채로 길에 동전 떨어진게 없나
살펴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년 반 정도 버티다 운좋게 대학교 입시. 학사 프로젝트하는
모 업체에 들어가서 전국을 돌며 프로젝트 개발을 합니다.
하지만 ...
1년반 정도 지난 2001년 5월부터 회사 돌아가는 낌새가 수상하더니
한달씩~ 월급이 밀리더니 결국 2002년 1월 사장이 돈 없다고 배째라 시전합니다.
결국 본의 아니게 제가 앞장서서 체불임금 회수 위원회 만들어서 총 73명의 체불임금을
받기 위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그나마 괜찮은 노무사님 만나서 3년 동안 싸워 다 받아냈습니다.
그런데 , 3년 동안 체불임금 회수에 앞장서는 과정에서
반지하방 방세를 비롯한 생활비가 없어 마이너스 통장에 빠져 허우적대었습니다.
또 그 3년 동안 다시 들어간 회사에서 체불임금 터지고 , 또 터지고 ...
2000년대 중반 까지 악착같이 싸우고 따지면서 살아왔습니다.
3년 동안 싸운 끝에 체불임금은 다 받아냈지만 마이너스 통장 갚고나니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부모님댁에 같이 살며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던때 였습니다.
악착 같이 성실히 살다보니 모 대기업에서 제 실력을 좋게 봐주시게 되고
운좋게 거기서 정직원으로 7년 정도 일했습니다만 ,
대기업에서는 받는것만큼 제가 포기해야할것은 시간과 에너지였습니다.
평균 퇴근시간이 새벽 2시, 3시였고 기본 운영 업무에 프로젝트까지 두세개 맡게 되면
6개월동안 10 키로 이상 빠지는건 기본이었습니다.
거기다 고생한만큼 보상도 오는게 아니었던지라 불만만 쌓여가서
얼른 혹성탈출하자는 심정으로 결국 정리하고 나왔습니다.
지금은 모 중소 SW 업체다니며 국산 중대형 세단 굴리고 있습니다만 ,
이렇게 살아온 꼰데도 있다는 점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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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라니여..여튼 훌륭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