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아내를 10여년간 짝사랑한 친구
결혼 전 아내와 연애할 때였습니다.
저녁에 저랑 약속이 있었는데, 다른 약속이 생겼는데 저와의 약속을 미루고 다녀와도 되겠냐고 묻더군요.
당연히 그러라 그랬습니다. 연인 관계야 하루가 멀다하고 자주 만나지만, 다른 인간 관계는 그리 자주 만남을 가지지 못 하잖아요.
그리고 그 다음날인가, 통화하면서 저한테 그러더군요.
"자기랑 약속 괜히 취소했어."
왜냐고 물으니, 그게 사실은 질투 유발 작전이었답니다.
저만 항상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니 아내도 저를 애태우게 하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괜히 저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친한 친구에게 연락해서 약속을 잡았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란 놈이 애태우기는 커녕 좋다고 다른 친구랑 술약속 잡더란거죠.
그 당시 아내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푸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더랬습니다.
그리고 그 때 만난 그 친구의 정체를 결혼 상견례할 때 즈음 알게되었습니다.(아내와의 연애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남자사람 친구인데, 아내는 그냥 친구라 그랬지만 얘기 들어보고 남자 입장에서 보건데, 그 남자는 아내를 짝사랑해온 거더군요.
그러니까 당일날 아내가 불렀는데도 5분대기조처럼 바로 달려나갔던거죠.
아내는 그냥 동성같은 친구라고 극구 부인했지만, 자기가 손만 뻗으면 그 친구는 언제든 아내옆으로 달려올 거라는 정도는 느꼈을 겁니다.
그 약속취소 사건 후로도 아내와 몇 번 더 봤고, 결혼식 당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식장에 와서 신부화장하는 아내 옆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말동무가 되어 주었습니다. 저한테는 형님, 형님~ 하며 깍듯이 대하구요.
같은 남자로서 애잔한 마음이 들더군요.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 실사판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손톱만큼도 내색은 하지 않았습니다.
결혼 후에도 아내는 몇 번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저희 결혼하고 1~2년 후 그 친구도 결혼하였구요.
결혼 생활 불만 등 시시콜콜한 얘기도 아내한테 털어놓고 그랬나봐요.
그래도 저는 아내가 그 친구 만나러 가면 내가 애기 잘 보고 있을테니 편히 다녀오라고 그랬습니다.
요즘은 서로 바쁘고 사는 지역도 달라 거의 연락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연을 우연히 술자리에서 얘기하면,
무슨 자신감이냐?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냐?
뭐, 이런 반응이었는데요.
결혼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과정 같습니다.
어쩔 때는 내가 아내를 더 좋아하고 아내는 저한테 무심하게 굴고, 어쩔 때는 아내가 저한테 많이 기대고...
부부싸움할 때는 꼴도 보기 싫다가 또 어쩔 때는 아내가 불쌍하고 안쓰럽고 짠하고 고맙고...
그래서 저는 아내도 똑같은 심정일 거라 생각합니다. 사랑은 개뿔, 어쩔 때는 꼴도 보기 싫을 거에요.
아내가 나를 사랑해주길 바란다면 내가 사랑받기 위한 행동을 해야되더라구요.
만약 내가 더 이상 아내에게 사랑받기 힘든 남자라면 그 땐 보내주는 게 도리인 것 같구요.
정치는 생물이라지요.
부부사이도 그런 것 같습니다.
매순간 새롭게 바껴요.
지난 시절 중 가장 좋았던 순간 딱 박제해놓고, 왜 지금은 저렇지 못 하니? 하고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래서 결국 뭘 말하고자 하는 것이냐...
결론 없습니다. 당연하죠. 인생에 정답이 있을 리가요?
그냥 저는 그렇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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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자신의 가차관대로 사는거죠.....
저는 직선적인 성격이라 (여친 포함) 괜히 저를 떠보려고 하면 그냥 보내버립니다.
그렇잖아도 골치 아픈 세상에 이따위 신경전으로 제 인생을 소모하기 싫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