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큰 딸이 핀란드로 대학을 간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 1
- 2
안녕하세요. 가끔 공연 후기 남기는 좀 오래된 회원입니다.
두 딸들 태어나기도 전에 가입했는데, 벌써 큰 아이가 대학을 갈 나이가 되었네요.
그 큰 아이 이야기입니다. 꽤 긴 이야기입니다.
저는 요새 아이들이 학원 전전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제 친구들 보면 학교 다닐 때 공부 좀 못 하던 애들도 자기가 나중에 필요성을 느껴 공부에 빠져 박사가 된 친구들도 있고, 자기가 잘 하는 분야에서 다들 잘 살아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러기도 했고요...
큰 아이는 아토피가 있어서 아이의 식단을 좀 챙겨줄 수 있는 유치원을 찾다가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유치원에 다녔지요. 한글, 영어 이런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그냥 놀기만 하는 유치원이었어요. 그래도 입학할 즈음 되니까 본인의 관심에 의해 결국 한글은 익히고 가게 되더군요. 우리도 어릴 적에 다 그 정도로 익히고 학교 갔잖아요. 딱 그 정도였던 것 같아요. 다행히 아내와 아이 키우는 것에 대해 보는 방향이 비슷합니다. 요새 아내 말로는 제 의지가 너무나 확고했다고 하긴 합니다. ㅎ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방과 후 수업 좋아하는 것 맘껏 수강하게 하고,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도록 했습니다. 수학은 좀 어려워할 수 있을 것 같아, 매일 일정양을 문제집을 푸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고 제가 좀 도와줬고요. 영어는 방과 후 원어민 영어 선생님 수업을 좋아해서 몇 년간 듣더군요. 이 때 친해진 원어민 선생님은 지금도 SNS로 교류하며 지냅니다. 중학교 들어가서는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좋아해서 시리즈 전체를 한 서른 번쯤 봤다 더라고요. 대사가 잘 안 들리는 게 있으면 인터넷 찾아보고, 해리포터도 많이 보고 하면서 듣고 말하기를 곧잘 하더라고요.
이렇게 해서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던 중3 초에 외고를 간 선배들이 학교 와서 자기네 학교 소개하는 걸 보더니, 자기는 외고를 가야겠다면서 영어 시험에 좀 더 신경 써서 점수도 잘 받고, 자소서도 혼자 엄청 열심히 준비하고 면접 준비도 예상 질문을 친구들과 준비해 가면서 응시해서 외고에 합격을 했습니다.
외고에 가서는 원어민 (특히 전공인 프랑스어) 선생님과의 수업은 토의도 하고 대화도 하고 재밌는데, 그 외에 대학 진학 만을 위한 학과 수업과 인간미 없는 교우 관계에 학교 생활을 너무나 힘들어 했습니다. 스트레스 풀 수 있는 체육, 미술 이런 과목이라도 제대로 운영되면 좋으련만, 특성화고라 그런 게 제대로 운영이 되질 않기도 했고, 점심 시간이면 나가서 철봉 같은 데서 놀기도 하고 그러던 애가 그리 답답한 환경을 견디기 힘들었나 봅니다. 기숙 학교가 아니어서 매일 밤 집에 와서는 힘들다고 울고 그랬어요. ㅠㅠ
결국엔 2학년 초에 학교를 그만 두고, 일반고로 전학을 갔으나 뭐 그리 다르겠어요. 그러다가 어릴 적부터 다니던 태권도장에서 대학생 언니가 고등학생도 해외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있다는 얘길 듣고 알아보다가 핀란드 교환학생 자리가 하나 생겨서 지원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게 되었습니다.
약 10개월간의 핀란드에서의 교환학생 생활은 너무나 즐거워했습니다.
좋아하는 과목으로만 수업을 짜서 수업 듣고, 음악 시간에 밴드 음악 하는 수업으로 악기 좀 배우더니 저렴한 통기타를 하나 사서 저녁에 혼자 심심할 때 기타도 치며 시간 보내고, 좀 즐겨 듣던 뮤즈의 헬싱키 공연을 제일 앞 줄에서 봤고, 제가 종종 듣던 핀란드 메탈 밴드 나이트위시의 투르크 공연을 보기도 했고, K-팝은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무대 감독하는 제 친구가 데리고 간 K-팝 밴드 공연에 K-팝 좋아하는 친구들 데리고 가서 보여주기도 했지요. 돌아오기 직전엔 혼자 노르웨이 여행도 다녀왔네요.
(노르웨이 드리마 스캠을 좋아해서, 노르웨이 관광청 공홈에 올라온 드라마 주요 장면을 투명 포토 카드로 만들어가서 이렇게 인증샷 찍고 다녔다 합니다. 나중에 노르웨이 관광청으로부터 DM도 받았대요. 자기네 사진으로 만든 거냐고...)
핀란드 교환학생 기간에 몇가지 이벤트에 대해서는 유튜브에 영상 만들어 올리기도 했고 그 중 하나는 제가 소개한 적도 있었네요. 큰 애가 요새는 거의 안 만들지만, 교환학생 시절 만든 유튜브 채널 링크
https://www.youtube.com/channel/UCDGm0VGlgM0xhQxSHcty6jw
비록 호스트 가정과는 아주 잘 지내지 못했지만 학교에서의 생활이 너무나 즐거웠고, 대학을 핀란드로 가겠다고 마음 먹게 되었습니다. 원래 교육에 관심이 많아서 중학교 때도 핀란드 교육과 관련된 것들 TED 영상도 찾아보고, 관련 책도 보고 그러더니 현지에서 지내면서 느낀 게 많았나 봅니다. 그래서, 다니던 학교 선생님과 함께 핀란드에서 외국 학생이 갈 만한 교육학과를 함께 검색해보고, 학교 검색하는 법 등 관련 사이트 정보를 알아봤더라고요. 많아진 짐을 다 들고 올 수가 없어 고민을 하니, 평소 아이를 아끼던 프랑스어 선생님이 "네가 1년 후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면, 내가 네 짐을 일부 맡아주겠다"고 하시면서 기타를 맡아 주셨대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동기들 다들 수능 준비할 때, 토플 시험 보고, 고등 검정고시를 봤고 이후엔 하루에 너댓 시간 식당 알바를 했습니다. 학교도 알아보면서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초등 교육학과 두 군데를 지원하기로 했고요, 알바 끝난 시간엔 대학 진학을 위한 자소서 준비를 했습니다. 식당 알바도 나름 잘 해서, 처음 했던 곳에서는 한 달도 안 되어서 캐셔를 맡기도 했고, 넘 멀어서 출퇴근이 힘들어 옮긴 동네 식당에서도 잘 해서 출국하기 한달 전까지 귀여움 받으며 일했습니다.
오울루 대학과 투르쿠 대학에 지원을 해서 두 군데 모두 서류 전형은 합격을 했고, 2월 말에 오울루 대학교에 화상 면접을 봐서 3월 초에 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그 상태에서 3월 말에 투르쿠 대학 온라인 면접을 봤고 그것도 합격을 했습니다. 오울루 대학은 75% 장학금 지원을 받게 되었고, 투르쿠 대학은 100% 장학금 지원을 받게 되었지만, 학부가 좀 더 큰 도시에 있는 오울루 대학으로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투르쿠도 큰 도시이고 익숙한 도시지만, 교육학부는 좀 외진 작은 도시에 있다더라고요.
코로나 사태로 핀란드 대사관 업무가 중단되어 학교를 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가, 7월달에 진정이 되면서 비자 업무가 재개되고 학생 거주 비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핀란드 대학교는 기숙사가 없이 대학과 지역 시회의 협력으로 방을 구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방도 좀 알아보더니 구했고, 8월 초에 핀란드로 가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제가 따라 가서 가구도 좀 옮겨주고 그러려 했는데, 비자 없으면 입국이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갔다 와서 2주간 격리도 쉽지 않아서 혼자 떠났네요.
좀 낯선 도시지만 핀란드가 처음은 아니어서, 혼자 중고 매장 돌아다니면서 침대도 사고, 책상도 사고, 동네 마트 다니면서 필요한 거 잘 사고 준비했네요. 침대, 책상만 준비해 놓고는 2주간 투르쿠로 기차 타고 내려가서는 교환학생으로 지낸 고등학교 친구들도 만나고, 자기가 즐겨가던 곳에 가서 살림살이도 좀 사고, 맡겨 놨는 짐들도 찾아서 다시 오울루로 돌아왔네요. 그리면서 학교 오리엔테이션도 참여하고, 지금은 수업도 듣고 학교 행사도 쫓아다니면서 바쁘게 지내고 있네요. 중고로 산 거울장도 페인트 사다가 원하는 색으로 칠하는 등, 방도 원하는 대로 꾸미고 있네요.
중고 자전거도 하나 사서, 장보러 다닐 때 타고 다니고 있어요. 모르는 건 카톡으로 사진 찍어서 의견도 물어보고 하면서요.
핀란드는 한국에 유학원도 없고, 검정 고시로 핀란드 유학은 정보가 더 없는 지라 모든 과정을 혼자 찾아서 했는데, 그 과정을 블로그를 하나 만들어서 과정을 남기기 시작했더라고요. 관심 있는 분들은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핀란드로 대학 가는 법 (검정고시 가능) https://bonasera.tistory.com/3
핀란드 초등교육학과 지원하기 (검정고시 가능) https://bonasera.tistory.com/4
핀란드 대학교 초등교육학과 합격 수기 https://bonasera.tistory.com/5
(제일 마지막 글에 자소서 쓸 때 조언해준 핀란드 언니는 교환학생 주선 단체로 한국에서 1년 고등학교 교환학생을 하고 대학교를 한국으로 온 아가씨인데, 출국 전 주선 단체 모임에서 만나서 알게 되었었죠. "77억의 사랑"이란 프로그램에서 핀란드 대표로 나왔던 줄리아(율리아)란 아가씨입니다. ㅎㅎ)
어제는 신입생 올림픽이라고 무슨 체육대회 비슷한 걸 했나 본데, 얘네 학과가 우승했다고 학교 공식 홈페이지에 사진도 올라왔네요. 동기들 나이도 다양해서 애 엄마도 있고 대부분 자기보다 나이도 많다 하고요, 사람들이 너무나 좋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언어 소모임에 참석하면서 자기는 핀란드어 배우면서 한글은 가르치기 시작했고, 태권도가 3단인데 태권도 소모임도 하나 만들어볼까 하나 봐요.
걱정 반 기대 반 하면서 보낸 지가 벌서 한 달이네요. 매일 자기 전에 몇마디씩 가족 톡방에 남기고 그러더니, 요 며칠은 바빠서 피곤한지 좀 뜸합니다. 하하
고등학교 때 힘들어 할 때엔 가족 모두 너무 힘들어서 그냥 좀 참으면 안 되나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결국엔 아이가 하고 싶은 거 하도록 한 게 잘 된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요. 알바해서 모았던 돈으론 틈날 때 주변 국가 여행할 거라 하네요. 추위를 좀 많이 타는 애가 세상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종합 대학에 다니느라 겨울에 좀 고생은 하겠지만, 그 또한 본인의 선택이니 잘 극복하겠지요.
이렇게 큰 딸이 멀리 대학 간 이야기 써봤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는데, 우리네 교육은 그닥 좋은 방향으로 변한 것 같진 않아 주변에 힘들어 하는 가족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저희 큰 애 같은 경우도 있다는 것 소개 차원에서 글 남겼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쓰기 |
정성스런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드립니다.
북유럽은 한 번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 입니다.
코로나가 빨리 종식되어 다시 여행 하고 싶습니다.
따님이 참 든든 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