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역사] 일본이 기억하는 8월 15일
1945년 8월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였고, 소련은 본격적으로 참전하여 파죽지세로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련을 매개로 미국과 협상하고자 했던 일본의 바람은 산산조각났으며, 소련이 일본 본토에 진격하게 된다면 국체호지는 커녕 천황제 그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었습니다. 이에 일본은 미국에 항복하는 것을 결의하고, 8월 15일 히로히토 덴노는 사상 처음으로 전국민에게 라디오 방송을 통해 “종전”의 소식을 알리게 됩니다.
종전, 전쟁을 끝낸다는 의미입니다. 패전과는 뉘앙스가 다릅니다. 종전은 능동적으로 전쟁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고, 이는 누군가에게 강제된 것이 아닙니다. 일본은 마지막 순간까지 굴욕을 피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결국 9월 2일 일본은 미국 군함 위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게 되었지만, 일본인 중 9월2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1945년 8월 15일의 종전이 남긴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3백만명의 사망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포함한 66개 도시의 파괴
9백만명의 이재민
그리고 고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650만명의 파병군인과 교민
이 중 상당수는 귀국하지 못하거나 귀국도중 사망하게 됩니다.
일본이 항복한 순간에 중국에 260만명이 있었고
만주에 110만명이 있었고, 대만에 50만명, 조선에 90만명
그리고 동남아에 90만명이 남아있었습니다.
1945년 만주에서는 민간인 18만명이 사망하였고, 군인 7만명 가까이 사망했습니다. 소련군의 진격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1946년이 되도록 여전히 200만명이 넘는 일본인들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일본인 7만명 가량 중국 공산당이나 중국 국민당의 포로가 되어 1-2년 간의 강제노역에 종사했고
소련의 경우 76만명의 일본인을 강제노동소로 보내 국가재건에 동원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소련은 세계대전 중 2천만명이 넘는 희생자를 내어 노동력이 극도로 부족한 상황이었고, 따라서 점령지로부터 대규모 노동력 징발을 했던 것입니다. 한편 이 중 35만명 정도가 노동수용소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여담이지만 중국이나 소련 케이스를 생각하면 조선에 거주 또는 주둔한 일본인들은 정말 세상 태평하게 귀국할 수 있었네요...보편적 인륜을 생각하면 곱게 보내주는 게 옳은 일이겠지만 어떻게 보면 씁쓸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일본은 전대미문의 파괴와 피해를 경험했고, 이에 더해서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의 직할점령을 무려 7년이나 경험하게 됩니다.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은 서양열강의 식민지가 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왔는데 그 종착지는 서양열강에 의한 직할통치였습니다. 미국은 일본에 누적 100만명에 가까운 병력을 동원하여 점령정책을 수행했고, 모든 결정은 미군사령부(GHQ)의 결재를 받아야 했습니다. 심지어 검도와 같은 활동 또한 불온한 것으로 지정되어 금지되었습니다. 이로써 일본은 점령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구체제의 기득권자들을 그대로 기용하면서 정책을 순조롭게 수행했고. 이들에게 힘의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각인시켜 감히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실 일본의 헌법 또한 미국이 대신 만들어준 것이었고, 조율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수정한 헌법수정본은 GHQ가 거부했었습니다. 미국은 그 정도로 일본은 철저하게 개조 내지 종속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일본인의 우파 주류는 종전이라고 하면 일본이 당한 피해만을 떠올리며, 미국에 의한 철저한 점령만을 떠올립니다. 그 이전에 있었던 아시아 이웃국가들에 대한 침략 행위는 잊혀졌습니다. 혹은 아시아해방의 일환으로 불가피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인 전체가 동의하는 관점은 아닙니다. 우파 쪽에서 계속 통념을 깨기 위해, 또는 자학사관을 극복하기 위해서 책을 계속 낸다고 주장하는데, 그 말은 즉 일반적 통념은 일본은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본의 정치권은 비록 극우의 바람에 휘둘리고 있지만, 민간에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국의 과오를 인지하고 반성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이웃국가들에 대해 오해하는 것도 많습니다. 우리 한국은 “일본”이라서, “일본인”이기 때문에 이들은 악하며 비뚤어졌다고 하기보다 보편적 정의의 관점에서 서로 비슷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발굴하면서 이웃간의 우호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로보트인 것도 아니고, 반대로 한국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무조건 반일인 것도 아닙니다.
민족운동가 여운형은 그 자신이 독립운동에 매진하면서도 일본인들과 깊은 친교를 맺었습니다. 이 둘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향후 양국의 젊은이들이 서로 상호보완적이고 긍정적이며 생산적인 관계를 맺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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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팔이하는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힘들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