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전북 군산에서 43사건이 벌어질 뻔 했다?
전북 군산 인근에 옥구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해안에 위치한 마을이고, 우리가 아는 새만금이 있는 곳입니다. 지금은 군산공항이 위치한 마을이며, 군산공항은 미공군기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군산비행장'은 미군기지이며, 군산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옥구쪽에 위치한 거죠.
군사독재시절에는 이 기지에서 핵배낭을 보유하고 있다... 소문도 종종 들려나왔던 곳입니다.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대대로 살아오셨던 동네인데요, 어릴적 할머니집에 놀러가서 몇달씩 지내다 오곤 했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굉음을 내는 제트기들의 소음이 기억납니다.
어제 아버지 생신을 맞아서 모여서 식사를 하는데 옛날 생각을 하시다가...
"야, 군산에서도(아버지는 옥구를 군산이라고 부르십니다) 43이 날 뻔 했다."라고 하시더군요.
내용인 즉 이렇습니다.
같은 마을에 사시던 작은 할아버지(아버지께는 작은 아버지)댁에서 미군 병사가 사고를 친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작은 할아버지 댁 근처에서 작은 할머니(아버지께는 작은 어머니)를 보고 미군 병사가 덮친겁니다. 작은 할머니께서는 미군 병사를 밀어내고 집으로 도망가셨고, 미군병사는 집으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작은 할머니는 부엌으로 피신하시고, 미군병사 역시 부엌으로 따라들어가는데... 예전 시골집 나무로 되어있는 부엌문이었는데, 이 문에 줄을 달아서 안쪽에서 당길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였답니다. 작은 할머니께서 부엌으로 피신하시면서 이 줄을 당기셨고, 미군 병사는 문 틈에 손이 끼어서 부상을 입습니다. 피가 흐를정도의 부상이었다는데요...
이 광경을 근처에서 보셨던 작은 할아버지가 달려오셔서 미군과 격투, 이 광경을 목격하신 고모부(아버지 기준)가 달려오셔서 합세했고, 당시 9살이던 아버지도 합세해서 짚으로 만든 끈으로 이 병사의 손발을 묶으셨답니다. 용감도 하시지...
병사를 묶어놓고 주민들이 모여서 미헌병대에 신고하려다가... 뭔가 쎄- 하셨봅니다. 일단 우리 경찰에 신고한 후에 미군에도 연락.
소총등으로 무장한 미헌병들이 들이닥치고, 군산시내에서 트럭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오고...
미군들은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답니다. 해당 병사는 "한국사람들이 나에게 껌둥이라고 놀려서 싸웠다"라고 주장했답니다. 영어를 할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아버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교감선생님이 오셔서 겨우 대화...
무장한 미군들에 의해 험악한 분위기까지 벌어지고, 마을 주민들은 흥분하고... 대치상황까지 발전했는데...
문틈에 손을 다친 병사에게 부상의 이유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납득이 되는 해명을 듣지못해서 작은할아버지, 아버지의 고모부, 아버지의 무고가 증명이 되면서... 사고친 병사는 끌려가고 사건이 일단락 되었답니다.
만일 당시 작은 할머니께서 문고리를 당기지 않으셨다면... 국방부로 차를 돌리 미군에게 먼저 연락했다면... 큰 비화가 될뻔했다는... 제 집안 어르신들의 이야기지만, 우리 민족이 겪은 슬픈 역사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 이미 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에서 "껌둥이같은 표현 하지 마라"고 배우셨답니다. 참 대단하죠. 물론 당시는 인종차별을 반대해서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교육이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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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잘 마무리되어서 그렇지 실제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네요. 먼동네 이야기 아니었네요.
군산비랭장에 전술핵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정설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군산 근처 고군산 군도 끄트머리 섬이 폭격 훈련장잉었었죠.
군산 지나갈때마다 옥구라는 지명이 생각납니다. 예전에 비옥한 토지에서 나온것이 확실한 이름도 좋았는데 군산에 통합되면서 고유한 지명을 잃어버렸죠. 채만식의 소설의 무대였던걸러도 기억합니다. 그리운 이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