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미국 일상 47 - 극장에서 한국 영화보기 (ft.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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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1-20 12:41:03
미국생활
영화게시판에 올려야 하나 생각하다가, 영화 감상보다는 기생충으로 인해서 몇가지 새롭게 경험한 일상 이야기라 프차에 남깁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장기 출장 혹은 체류를 하던 때는 (2002년~), 한국 영화 보기가 쉽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특히 극장에서 상영되는 한국 영화를 보는건 쉽게 경험하기 힘든 일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한인 슈퍼에 가면 비디오 테이프나 CD에 구워진 영화를 빌려서 보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점 한국 영화가 미국 극장에 걸리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한인 타운이 있는 대도시에서는 한국의 인기 작품들은 거의 다 볼수 있는것 같고, 한인들이 좀 있는 작은 도시들에서도 정말 인기 있는 영화들이 몇일동안 특별하게 상영되기도 하구요. 그렇지만 이번 기생충은 기존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고, 덕분에 새로운 경험들도 하고 있습니다..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영화도 보고 싶고, 과연 미국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궁금해서 작년 10월에 미국에서 상영을 시작했을때, 근처 극장에서 상영중인지 찾아봤더니 없다가 11월 중순쯤에 되었을때 집에서 가장 가까운 극장에서도 상영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그런데 하필 그때부터 연말까지 계속 집에 손님이 오고 바빠지면서 보지를 못했더랬습니다.
1월초에 좀 바쁜 시간이 지나고 검색을 해보니 시애틀 다운타운 세곳에서 상영중이더군요. 운전이야 시간을 잘 피해가면 30분이면 갈수 있지만, 복잡한 곳에서 운전하기도 귀찮고 주차도 번거로울것 같아서, 정말 보고 싶었지만 한두달만 더 스포일러를 피하고 있다가 블루레이나 스트리밍으로 봐야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생충을 봤다는 동료들도 생기고 기생충 영화에 대해서 저에게 물어보는 동료들이 생겨나더군요. 영화를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로튼 토마토지수가 99%라고 알고 있고, 칸 영화제와 골든 글로브를 받은지도 아는 동료도 있구요. 미국 생활 총 15년만에 울 나라 영화에 관한 질문을 받고 대화를 나눈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왠지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더 질문을 받기전에 제가 영화를 봐야겠다 싶어서, 다시 검색을 해보니 집 근처 극장에 다시 상영을 하네요.
박스 오피스 기록을 찾아보니, 개봉할때는 3개 극장에서 시작해서, 33 -> 129 -> 461 -> 603 -> 620 으로 늘어났다가 433 -> 382 -> 333 -> 306 -> 227 -> 155 로 주는 추세를 보이다가 222 -> 345->847 로 다시 늘어났네요. 아마도 골든글로브 수상과 아카데미의 후보가 된 소식과 유투브와 여러 매체를 통해서 호평이 이어지고 있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지난 금요일에 봤는데요. 금요일 오후 2시반, 밤 9시에 두번 상영을 하더군요. 전날 확인을 해보니, 128개 좌석중에 표가 한장만 판매되어 있어서 시간 맞춰서 가서 보면 되겠다 싶었는데, 금요일 오후에 확인을 해보니, 거의 40장 정도가 팔려있더군요. 늦게 가면 좋은 자리에서 못보겠다 싶어서 영화 1시간반 전에 가서 표를 일단 끊고 시간을 좀 보내다가 입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표를 확인하는 알바생으로 보이는 친구가 제 표를 확인하면서 아직 자기는 기생충을 보지 못했는데, 조만간 볼거라는 이야기를 먼저 건네더군요. 아마도 제가 한국인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극장에 가서 표를 확인하는 사람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걸어온건 처음이었습니다. 왜 볼려고 하냐고 물어봤더니, 본 사람들이 다 추천을 했다고 답을 하더군요.
예고편들을 거의 30분 정도 본후에 영화가 시작했는데 기생충이 미국에서는 R등급의 외국영화여서 그런지 R등급이고 외국영화들의 예고편이 주로 나오네요. 대략 좌석수의 50%를 살짝 넘게 관객이 들어온것 같았습니다. 미국에서 몇십번 극장을 간 제 경험에 의하면 어벤져스나 스타워즈 같은 대작 흥행작들이 상영한지 얼마되지 않는 시점을 제외하고는 극장이 반 이상 차는 경우는 거의 본 기억이 없습니다. 작년 10월 11일에 현지 개봉을 했으니, 제가 개봉후 99일째 본셈인데, 3달을 넘긴 영화에 그것도 자막이 들어간 외국 영화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미국에서는 아주 색다른 기록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종별로 구분해 보자면 저랑 한국 (아님 중국?) 커플로 보이는 한쌍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백인이었습니다. 아시안이 많이 사는 동네여서 아시안들이 많을줄 알았는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더군요. 나이대는 2~30대부터 70대정도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다양했구요.
미국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신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미국 관객들의 리액션은 참 큽니다. 웃기는 장면이 나오면 박수를 치면서 큰소리로 웃는것이 흔하고, 무서운 장면이 나올때도 우리나라 관객에 비해서 놀라는 소리나 동작이 훨씬 큽니다. 이 영화 상영내내 큰 웃음이 정말 자주 터져나왔고, 놀라는 소리도 많이 들렸습니다. 바로 옆에 앉은 50대로 보이는 미국 부부도 정말 깔깔대고 두명이서 영화보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누더라구요.
같이 웃음이 터진 경우도 (아이 그림을 감상하는 장면) 있었지만, 웃음의 포인트가 우리와는 조금씩 다른것 같더군요. 저는 별로 크게 웃기지 않거나 (조여정을 속이는 장면이나 독도는 우리땅 노래를 부를때), 웃기기 보다는 전 놀랐던 장면인데 (아들의 트라우마가 생긴 장면) 미국관객들은 오히려 웃음이 빵 터지더군요. 이 경험이 신기하면서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회사 생활중에도 제가 말자체는 이해를 했는데도 혼자 웃음이 터지지 않는 유머들이 있었는걸 기억해보면 확실히 웃음 코드가 다른가 봅니다.
방탄 소년단으로 대표되는 K팝의 인기때문에 색다른 경험을 한 이야기를 예전에 올린적이 있는데, 이번 기생충 덕분에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아카데미까지 수상해서 기생충의 더 오랜 상영과 흥행은 물론이고 좋은 한국 영화들이 미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이번처럼 동네 근처 미국영화 극장에서 우리나라 영화를 보는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고 다른 우리의 독특하고 멋진 문화들도 세계로 퍼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집중하지 않아도 대사가 또렷하게 들려서, 정말 오랜만에 편안하게 영화를 감상해서 정말 좋더군요. 모국어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고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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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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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히어링인 된다는게 얼마나 좋은일인지...
보시기에 대사의 번역이 어떠시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