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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베트남-일본 관계에 대한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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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6-10 15:45:03

일본이 우리나라더러 베트남전에서 여성 학살한 것에 대해 왜 위안부상 같은 것을 세워 위문하지 않느냐고 조롱한 것을 보니 떠오른 기억이 있습니다. 

일본이 베트남을 점령했던 불과 1년동안 가혹한 식량수탈로 2백만명이 사망했었습니다. 북 베트남 인구의 1/5을 굶겨죽인 사건이라고 그러죠, 아마?

 

제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티끌을 찾는다고 하더니, 일본이 딱 들어맞습니다.  

한국이 베트남전에서 죽인 군인과 민간인을 다 합쳐도 일본이 한 짓 백분지 일도 안될 겁니다. 

(한국군 베트남전 사망자수가 5천명입니다. 교전비 감안하면 월맹군측 사망자 수가 5천~만명 사이일 겁니다.) 

 

굶겨죽인 것을 감추고 자국민들에게 교육 안시키는 것이라든가, 일본 정부 당국자들이 베트남 아사자 30만명까지는 인정하나 1~2백만명은 과장된 것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마저도, 그 와중에 베트남전 특수로 돈을 벌자고 했던 것 마저도...  변함없는 일본식 스타일이죠. 

 


 

 

처음 읽는 베트남史 - 송정남 한국 외대 베트남어과 교수 - 월간 조선(2016. 5월호)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print.asp?ctcd=I&nNewsNumb=201605100054

 

 

"일본의 점령기간 중 베트남인 200만명이 굶어 죽었다. 필자는 베트남 유학 시절 베트남 사학자들로부터 “일본 역사가들을 비롯해 많은 일본인이 일본 점령기간 중 200만명 이상의 베트남인이 아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그런 얘기를 하면 일본인들은 오히려 무슨 근거로 그러느냐고 되묻는다고 했다.

  

  대량 아사는 1944년 말부터 이듬해 7월까지 약 10여 개월 동안 ‘꽝찌’를 포함한 32개 성(省), 특히 북부 베트남에서 많이 발생했다. 이 중 인구가 가장 많은 ‘타이빈’성에서는 전체 인구의 25%인 28만명이 아사했다. 아사가 가장 극점에 도달했던 기간은 1945년 3~6월이었다.


아사자 200만명은 당시 북베트남 인구 1000만명의 1/5에 해당된다. 농촌은 물론 도시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병사였던 경제학자 고바야시 노보루는 《내 속의 베트남》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농민의 가족들이 문자 그대로 뼈와 가죽만 남은 상태로 길거리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영양실조로 인한 죽음이 아니라 아예 굶어 죽는 것이었다. 거리에는 숨을 거둔 남편의 시체 옆에서 통곡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즐비했다. 몇 시간 지나서 다시 돌아와 보면, 아내 또한 죽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홍강(紅江)에선 끊임없이 시체가 떠내려 오고, 강둑에는 들개들이 무리지어 다녔다.

  

  베트남 북부에서 1945년 발생했던 아사사건의 요인은 복합적이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 요인은 일본에 있다. 보호국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1940년 이후 일본군에게 협력한 프랑스 당국에도 책임은 있다.

  

  1959년 일본은 남베트남과의 전쟁 보상 협상 과정에서 “전쟁 중 많은 물자를 징발하는 바람에 베트남인 30만명이 아사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남베트남과 일부 일본인 그리고 북베트남이 주장하는 100만명과 200만명은 과장한 것이다. 하지만 만약 아사 이전의 영양이 결핍된 사람들까지 감안한다면 그럴 수 있다”는 내용의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협상 결과 1960년 일본은 남베트남에 3900만 달러의 전쟁보상금을 지불했다. 이런 식으로 1955~1977년 일본은 전쟁보상금(준배상금 포함)으로 미얀마 등 11개국에 총 15억 달러를 지불했다.

  

  일본이 남베트남에 배상금을 지불한 것은 베트남전 특수(特需)를 노린 것이기도 하다. 나카무라 마사노리는 《일본 전후사 1945-2005》에서 “베트남 전쟁은 한국 전쟁만큼은 아니나 일본 경제의 또 다른 약진을 가능하게 했다. (중략) 베트남 전쟁이 없었다면 이 정도의 규모와 속도로 제2의 고도성장이 진행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베트남전쟁과 미국, 일본, 한국 - 동북아 역사 넷

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edeah.d_0006_0020_0030_0030

 

"베트남전쟁의 특수로 일본은 고도경제성장 국가로 발돋움하였다. 일본의 직접적인 특수는 통산산업성 발표에 따르면, 1965년 3억2천만 달러, 1966년4억7천만 달러, 1967년 5억 달러, 1968년 5억9천만 달러, 1969년 6억4천만 달러, 1970년 6억6천만 달러에 이른다. 또한 한국과 같은 베트남 특수를 누렸던 파병국에 대한 수출이나 대미수출(간접특수)도 급증하였다. 일본의 대미무역은 1965년 수출초과로 바뀐 이후 1975년까지 연평균 21%로 급속히 성장하였다. 일본은 패전 직후 한국전쟁 특수로 단기간에 전후복구를 할 수 있었고, 곧 이어 찾아 온 불황과 미일안보투쟁 등의 정치적 혼란은 베트남전쟁특수 등을 통해 극복하고 고도경제성장 국가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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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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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0 01:28:31

 미국과 일본, 미국과 일본..

 

우리가 대외적으로 동맹이라 외칠 수 밖에 없지만.. 과연... 이들을 협력으로 이해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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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0 01:47:08

일본 저것들도 태평양전쟁떄 동남아에서 위안부다 뭐다 하며 패악질 저지른것을 생각하면

남 비난할 처지도 안 되는 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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